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 남의 속을 모르먼 청산으로 시집을 가지마오.”
성전면 대월리 장차순 할머니(93)
“의지가 되아? 아이고나 어미가 살아서 있응께, 지가 의지되고 좋제.”
장할머니는 큰 딸 조홍춘(71)씨와 둘이서 산다. 딸이 함께 살고 있어 의지가 되겠다고 했더니 장할머니는 혀를 차며 딸을 힐끗 바라본다.
“어려서 아파 뒤질라헌 놈 포도시 살려놨더니 저모양이요. 나나 된께 아조 병신 안 만들고 설렸지.”
“누가 살리라혔간디·····, 그때 냅둬 버렸으면 뒤졌제.”
딸 조홍춘씨의 목소리는 오히려 기어들어간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딸과 평생을 함께 살았다.
“누가 저런 사람을 보겄소. 짜잔한 어매나 보재. 저런 사람을 누가 며느리라고 보겄소? 밥도라는 소리하고, 말은 아조 일등 명창이여, 애미 속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고·······”
할머니가 또 딸을 비꼰다. 딸은 할머니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또 대꾸한다.
“누가 살리라고 혔간디·······”
“상우를 보소, 내 가슴에 불 안되겄는가, 대강 보먼 알제.”
장할머니는 딸에게 단 한마디도 좋은 소리를 안 하신다. 그러나 딸은 그런 할머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다 받아넘긴다.
“퍽도 좋겄소. 저는 좋제 내가 오래산께로. 저는 의지허고 산께······· 월척없제.”
“몸도 아프고 배운것도 없고 이렇게 짜잔하게 생겼소.”
그래도 딸이 있어 함께 잠도 자고 도란도란 애기도 할 수 있어 다행이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사람 똥 싸고 벼락 맞겄네, 입만 살어서 거시기제, 날짜 간 줄도 모르고 범벅이요, 이시상을 둘째아들이 먹여 살리요. 내 그늘로 그라제. 아무것도 몰라, 그라도 말은 또 잘해.”
“어매가 귀가 좀 먹었어.”
장할머니는 군동 풍동마을에 살다가 어려서 친정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18살 되던 해에 21살된 남편과 중매결혼을 했고 7남매를 두었다. 시부모도 일찍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로 성전 대월리가 고향이었다. 일본에서 공장생활을 하다가 해방이 되어 29살에 시댁 식구들과 함께 시댁의 고향인 성전 대월리로 돌아왔다.
“풍새가 사나가고 열흘 넘게 물 욱에서 잠을 잤어, 겁나게 고생허고 돈 쪼까 벌은거 다 잡아먹어 버렸제, 그래도 안 굶어죽고는 살것습디다.”
열흘이 넘는 배 생활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 먹고 살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원래 약하디 약해가고 힘든 일을 못해, 항상 해수가 있어가고 사십 넘어가고는 바람만 나도 못 나댕겼어.”
몸이 약한 남편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몸이 약한 남편 때문에도 할머니가 집안일을 헤쳐 나가야 했기에 살아온 생활이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에게 혹시 든든한 남자 있으면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냐고 기자가 물어보았다.
“아따 꼭 벨 소리를 다하네, 아 마음은 있지만은 마음만 그라제 가땅도 없지······ 아따 꼭 벨 소리를 다하네, 좋은 남자 따라가서 살먼 좋제, 친정 낯 부모 낯 남매간 낯 안 더럽힐라고 잘나나 못나나 죽도록 살은 것이 인제까지 사요. 고생이 징혀.”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색을 하며 대답한다.
“뭣이 보고잡돨? 내 절개로 살었제, 보고잡도 안해, 내가 산 것이 모지라 밥통이제.”
장할머니는 본인의 나이를 자꾸 100살이라고 말한다. 땅 한 평 없이 소작농을 하며 살았으니 그 고생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장할머니의 얼굴은 아직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 자신 있고 당당한 여장부의 모습이다.
“나는 술을 젤 좋아허요. 인천사는 셋째 아들이 와가고 소주 한 박스 사놓고 갔소. 저그 담배는 요 아래 사는 둘째아들(조형춘)이 늘 사다 쟁이요.”
텔레비전 아래 장 속에 담배보루가 가득 쌓여있다.
“술친구가 다 죽어불고 없어, 그랑게 시방은 나 혼자 반주로 한잔씩 묵기도하고 딸하고 한잔씩 들제.”
장할머니는 서른 살쯤에 소화가 안 되면서 물만 먹어도 넘어와 버리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담배를 피우면 괜찮아진다는 말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속에서 천불나면 담배만 죽고살고 피요, 화나면 담배피고 술도 마시고 그렇게 살어야제.”
기자가 생각하기에 장할머니의 장수비결은 낙천적인 성격과 자기만의 방법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풀어버리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귀가 큰게 오래살어, 젊어서 장사꾼들이 말허기를 아따 할머니 귀는 겁나게 커요 험서 귀 큰 사람이 오래 산다고 허더니 영락없이 오래사요.”
기자는 다시 한번 물었다. 딸이 함께 살아주니 외롭지도 않고, 딸이 때 되면 밥도 차려주고 할머니의 손발이 되어주니 얼마나 좋으냐고.
“아, 지 배고픈게 밥묵을라고 움직이제, 덕? 징하게 많이 보요.”
“엄니가 고집이 세.
“외로와? 뭣이 성가시돨? 남의 속을 모르먼 청산으로 시집을 가지마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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