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없이 급조된 복지정책들
한형서(중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한 나라의 복지정책은 국가가 지향하는 방향과 국민 삶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국가재정 능력과 국민소득을 고려해 체계적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또한 장기적인 국가재정계획의 틀 속에서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선심성 복지정책들을 보면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러한 정책들이 과연 실천 가능한 것인지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선거만을 의식해 백화점식 복지정책을 내놓는 것은 아닌지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한구 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2011년 말 현재 1848조원을 초과한 것으로 알려져 심각한 재정상황에 빠져 있다. 또한 국가의 대외적인 수출환경도 상당히 악화되고 있고, 세계경제도 단기간에는 회복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야 정치권에서는 다가올 선거를 의식해 복지정책 확대 경쟁으로 들어갔다. 물론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고, 경제 규모에 비해 복지정책이 소홀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성장 위주에서 분배 위주로 전환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재원도 없이 급조된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와 정당들이 공약한 여러 복지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집행하려면 천문학적인 재원조달을 필요로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과 국가재정계획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거철만 되면 급조해 발표했던 선심성 정책들이 얼마나 잘 집행됐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추진 혹은 검토되고 있는 일부 보육정책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정부가 추진하는 보육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보육정책들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투입될 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데 유기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201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이 전국에 모두 3만8021개 설치돼 있다. 반면 지자체가 지원해 운영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민간보육시설, 직장보육시설, 가정보육시설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큰데, 이들 시설은 국공립 시설과는 달리 감독과 관리가 제대로 안돼 시설이 열악하고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셋째, 무상보육 지원은 보편적 복지를 유지하되 선택과 집중으로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무상보육 지원 확대는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가정과 이용하지 않은 가정에 차등을 두면서 수혜를 받지 못한 가정에서 불만이 많다. 정부는 소득수준에 따라 보육지원에 차등을 둘 수 있으나 보육시설 이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보편적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무상보육 지원은 정부가 지자체의 재정상황을 고려해 정부의 부담비율을 차등화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재정자립도가 다르기 때문에 보육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많은 한계가 따른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차등지원을 함으로써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균등화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본 기고문은 매일경제(2012.2.16)신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희망에 따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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