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영랑백일장 수상작
대상 (대학,일반부)
귀농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
이유종
추석에 고향을 가는 것은 한여름에 등목을 하는 것처럼 시원한 일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 초록의 향연으로 달아오르는 벌판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수 백년은 족히 살았을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데 몇 년전부터 말라죽어 가고 있어 처연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형제들이 모여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나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온몸으로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고 있으려니 어머님이 들어오셔서는 “이거 성환이 아제 가져다 줄란다.”하신다.
돌아보니 아내가 가져온 홍삼선물세트를 들고 서 계신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더니 최근에는 자주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셔서 아내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구입한 제품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성환이 아제가 누군데요?”
약간은 퉁명스러운 내 질문에 불편한 감정이 묻어났다.
“올 봄에 인천에서 살다가 간생이네 빈 집으로 들어와 한 동네 살게 되었다.”
불편한 마음을 지긋이 누르고 어머님 말을 들어보니 50대 초반인 성환이 아제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았다고 한다.
부인과 딸은 인천에 있는데 무슨 사연인지 아제 혼자 우리 마을로 들어와 간생이네 논밭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떠나버려 상노인들만 남은 동네에서 아제는 젊은 축에 속한다.
늙어서 농사를 짓다보니 어머님 힘에 부치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성환이 아제가 밭갈이도 해주고 무거운 짐도 트럭으로 날라다 주고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당이야 줬겠지만 필요할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우리집 일을 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며느리 마음도 몰라주고 선뜻 비싼 선물을 남에게 주겠다는 어머니 말에 섭섭했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아내를 조용히 불러 어머님 뜻을 전했을 때 아내도 발끈했으나 성환이 아제가 우리집에 한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은 감정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으나 못재 섭섭함을 다 감추지는 못했다.
그 일이 있은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수명을 다한 마을 어른들 몇은 산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동구 앞 소나무처럼 마을도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가끔 처연한 마음이 들어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성환이 아제가 마을에 들어온 이후 시골에서는 그래도 은 축에 드는 부부 몇 쌍이 마을로 들어와 정착했다.
죽은 고목나무처럼 고요하던 마을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도시에서의 고달팠던 삶을 잊고 성환이 아제는 젊은 사람 특유의 감각으로 토마토 하우스 재배를 해 제법 돈을 모았다.
땅을 사서 집도 멋지게 짓고 읍내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여자와 결혼해 새로 가정을 이루고 두 사람이 열심히 산다는 소식을 어머님을 통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에도 푸르게 소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찾아갈 고향이 없어진다는 막막하고 처연한 감정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먼곳에 사는 자식보다 성환이 아제가 백번 낫다는 말씀을 어머님은 입에 달고 사셨다.
시골의 늙은 어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귀농을 했으면 좋겠다.
부모님 새대가 돌아가시면 마을도 사라질 텐데 그들이 귀농한다면 고향도 유지될 것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이 도시에서 사는 것은 벌판에서 겨울 바람을 안고 서 있는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시골로 온다면 도시보다는 살기 좋을 것이다.
이제 성환이 아제는 부모님에게는 든든한 아들 같은 존재이지만 나에게도 또 다른 가족이 되었다. 내가 그의 맑은 눈 속에서 고향을 보는 것은 그가 든든히 고향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눈에 어린 순수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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