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만햇발<세상에 좋고 나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종근
동신대교수, 국제선무학회부회장, 저서: 실크로드에부처는 있어도 부처님은 없다(2006)외다수
불교의 용어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사물은 내 마음이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은, 우리 속담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진의를 알기 위해서란다.
대개, 시간이 많은 사람이 외국서적이나 불교서적을 탐독해도, 불교대학 강의를 들어도 삶의 보람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살아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결심할 만큼 괴로운 것도 아니다. 혹시나 재미있는 일이 앞으로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대 또는 삶의 대한 미련이 있어서 죽을 용기도 내지 못한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을 따라, “나는 잘 살고 있다. 행복하다. 만족하다, 후회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가 마찬가지다.
어느 경전에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만물을 멋대로 지어서 그린다“는 취지의 말이라든지, 원효 대사가 중국 유학을 가려고 할 때, 깜깜한 밤에 물을 맛있게 마셨지만, 밝은 낮에 그 물을 담은 그릇이 해골바가지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 역겨워하는 자신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등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문제는 나의 문제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직장일, 학교 일, 사업 일 때문에 또는 마음이 끌리는 다른 일 때문에, 삶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를 묻어두고 사는 것이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즉 ”일체유심조라는데 어쩌란 말이냐?“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오로지 하는 마음(唯心)의 뜻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無) 또는 공(空)과 일치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것, 나쁜 것, 큰 것, 작은 것, 영원한 것, 순간적인 것 등에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실체가 없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수입한 비싼 재료로 만든 음식은 좋고, 보리개떡은 나쁘다거나, 대통령후보는 대단하고 나는 너무 초라하다거나, 소나무는 몇 백 년을 사는데 하루살이의 삶은 너무 짧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모든 것에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는 무사상과는 배치된다.
눈 나쁜 사람들이 모여서 깨알처럼 작은 글씨를 읽는다고 할 때, 각기 원시, 근시, 난시 등에 맞추어 안경을 쓰되, 어떤 이는 휴대용 작은 안경을 쓴다고 치자, 한 사람은 철 테 안경을 쓰고, 다른 이는 뿔 테 안경을 쓰고, 또 다른 이는 황금 테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것을 쓴다고 하자. 크고 값비싼 안경을 쓴 사람은 같은 책에서 더 좋은 내용이 읽혀지고, 값싸고 작은 안경을 쓴 사람은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같은 내용을 각기 인연에 따라 다른 위치,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읽을 뿐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마음으로의 지음”을 보거나 “행복한 쪽으로 마음지음”을 행하려면, 마음을 담는 그릇, 마음의 안정, 그리고 그 마음에 관찰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행복한 마음지음”이나 “마음으로의 지음” 등을 행할 수가 없다. 깨지거나 흔들리는 그릇에 안정된 마음을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이고 훔치고 삿된 쾌락에 빠지고, 거짓말이나 일삼고, 술이나 마약이나 또는 잡기에 취해 있으면서 안정된 마음과 바른 지혜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 그릇은 안일이나 허무주의에 취해서 몽롱하고 삐뚤어지고 흔들린다면, 세상을 여실하게 읽을 수 없다. 고요한 마음의 평화와 바른 삶의 지혜가 떠오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심은 자기 마음의 관리와 수행을 요구한다.
그래서 옛날 조사(祖師)들은 일체유심조에서 “일념 속에서의 염원”,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 속에서의 우주”, “진리와 현실사이의 무애”, “재료와 완성된 것의 원융” 등이라고 풀어내고 있다. 즉 김정일, 부시, 푸틴 등과 직접 대면할 위치가 아니면서도 철 테 안경으로도 세상을 읽을 수 있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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