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백의 시 ‘청효종’을 대문 바람벽에 붙여놓고 있는 박기홍 옹 |
치매 걸린 아내 위해 ‘시조 읊는 박기홍 옹’
손수 밥하고 반찬 만들고 세탁하고 군불 때는 생활
아내 위한 일 “즐겁게 생각하고 지내지요“
2년 전부터 치매 걸린 아내를 위해 황혼의 사랑을 시조 읊는 일로 보내는 박기홍(82세)옹은 군동 석교마을에서 살고 있다. 38년 2개월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3남 5녀를 키웠다.
“내 아내는 8남매를 키우느라 구정물이 마른 날이 없었지요. 양친 모시고 기제사 다 지내면서 밤낮으로 길쌈을 했으니 걸어 다니면서 잠을 잘 정도였습니다. 내겐 얼마나 고맙고 고생만 해온 아내였겠어요”
자식들이 8남매나 되다보니 대학은 못 보냈지만 고등학교는 다 마쳤다. 박 옹은 “자식을 가르치지 아니한 것은 애비의 죄요, 스승이 엄하게 가르치지 아니한 것은 스승의 게으름 탓이다”하며 주자의 권학시를 읊조리며 잠시 회한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아내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치매 증상은 헛소리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는데, 특히 혼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가장 큰 고통이었다. 어쩔 때는 파출소 순경들이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최필님 82세’라고 적힌 목걸이를 걸어주는데도 떼어버리곤 했다.
“강진군보건소에서 치매 판정을 받아 매일 오전 9시에 강진읍 복지회관에서 데리러 오고 오후 4시 반 내지 5시에 데리고 옵니다. 자식들은 주야간을 돌보는 양로시설에서 지내도록 권하지만 차마 그럴 수 있나요? 밤에라도 내가 곁에 있어야지요.”
언젠가는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남의 물건을 슬쩍 집어 드는 바람에 “도둑놈 잡았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 옹은 치매 걸린 사람이라며 손이 발이 되게 빌 수밖에 없었다.
치매는 기억력이 전혀 없는 무서운 병이다. 망각 증세 때문이다. 그래서 설거지도 밥 짓는 일도 할 수 없다.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모든 일을 박 옹이 손수 해내고 있다.
“막내가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를 왔어요. 일주일에 한 차례씩 반찬을 해가지고 다녀가곤 하는데 서울에서 다니려면 너무 멀어서 이사를 온 것이지요”
막내의 효도 때문에 반찬 걱정은 덜하지만 매일 밤이면 아내가 화장실 가는 일로 밤잠을 설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서 지내기 때문에 삼시세끼를 챙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매주 한차례씩은 목욕시키는 일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다. 그러나 박 옹은 양로원에 보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자식들이 보챌 때마다 “한 달 후에 그렇게 하겠다”며 미루기를 1년간 해온 박 옹은 “자식들 집에 어쩌다 갈때에도 집에 가자고 말도 못하게 보채지요. 복지회관에서도 집엘 가려고 창문을 넘을 정도인 내 아내를 혼자서 지내게 할 수는 없지요. 한평생 고생만 해온 내 아내인데······.”
황혼의 아내 사랑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박 옹은 그런 아내에게 자주 시조를 읊조리는 일로 사랑을 노래한다. 두보의 시, 이태백의 시, 왕유의 시, 도연명의 시인데, 가끔은 한용운의 시를 읊조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붓글씨로 쓴 한시가 천정 빼곡히 붙어 있고, 부엌에도 대문에도 거실에도 단정하게 쓴 붓글씨의 한시가 붙어 있다.
“한시를 좋아하는 것은 아내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이고, 아내와 함께 지내다보니 바깥출입이 어려워 심심파적으로 자주 읊으고 있지요”
아내가 집으로 올 시각인 오후 4시 30분. 박 옹은 군불을 지펴야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군불을 지핀 후 박 옹은 저녁을 또 준비할 요량이어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송하훈 기자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