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연재1
18년만의 해후⑴
분다.
매서운 바람이다.
열흘하고도 나흘째 걷는 동안 바람은 끝내 그치는 법이 없었다.
눈바람이 부는가 하면 고추바람도 불었고, 북새바람 먼지바람 맞바람도 맛보야만 했다. 왜바람 용수바람 때문에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힘들었는데, 어쩌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엔 눈이 내렸다. 눈이 오는 날엔 겉옷이 비에 젖은 듯 축축했지만 바람 부는 날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린 날은 걷기가 배나 힘들었다. 땅바닥이 질퍽거렸기 때문인데 그나마 마른눈이었기 망정이지 싸라기눈이 내리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열나흘 동안 걸어오면서 그는 몹시 외로웠다. 길동무도 말동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길손이 말을 걸어와도 한 두 마디로 대꾸해버리기가 일쑤였다. 외로웠지만 길손과 노닥댈 만큼 여유가 없었고 그만큼 그의 걸음은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빨랐다,
산모롱이 양지바른 곳이 나타나도 쉬는 법이 없이 종일 걷고 또 걸었던 것은 한 시라도 빨리 스승 다산(茶山)을 뵙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이미 남들이 다니는 길을 버리고 지름길을 택하다 보니 논틀길, 푸서릿길, 호젓길, 오솔길, 후밋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거친 돌서더릿길이며 나무꾼이 간신히 다니는 희미한 자욱길도 마구 걸었다. 때로는 지돌이며 안돌이 길도 거침없이 갔던 것은 한 마디로 지름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험한 산줄기를 넘는 일이 다반사여서 전국 팔도를 다니는 보부상 걸음 보다 곱절 빨랐던 것이다.
그러나 일각이 여삼추 같은 마음이라고 해도 해 지고 깜깜해지면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갓밝이부터 해거름까지 종일 걸은 탓으로 온 몸이 녹작지근해지면서 두 다리의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밤 추위가 심해서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펄펄 끓는 봉놋방에서 하룻밤 노골 노골 지지고 나면 어느 틈에 몸은 새처럼 가벼워지곤 했다.
황상(黃裳)이 남녘의 끄트머리 강진(康津)에서 한양(漢陽)을 지척에 둔 두릉 땅까지 걸어오면서 마주치거나 바라보이는 물체는 나무꾼들이었다. 하늘도 얼어붙어 있고 땅도 얼어붙어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없었지만 유독 나무꾼들만이 눈과 바람을 마다않고 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무꾼들은 대부분 떼를 지어 깊은 산으로 들어가거나 깊은 산에서 빠져나왔다. 마을 가까이에는 민둥산이다 보니 먼 곳까지 나무를 하러 다니는 나무꾼들은 구절양장의 고갯길을 내려오는 모습도 보였고, 나룻배로 강 건너까지 다녀오는 모습도 보였다. 나무꾼들이 짊어진 지게에는 각양각색이었다. 푸나무나 갈퀴나무를 나락 등짐처럼 지고 오는 나무꾼들이 있는가 하면, 바지게에 가다귀나 등걸나무를 수북이 담아 올린 나무꾼들도 보였다. 이 땅의 온 백성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불땔감을 구하느라 겨우내 산을 타고 있었다.
그렇다고 천지사방 간에 움직이는 물체가 반드시 나무꾼들만은 아니었다. 간혹 놀란 산꿩들이 푸드득 길섶에서 날솟기도 하고, 노루나 고라니가 자드락밭을 뛰어다니는 모습 또한 보였다. 그러므로 열흘하고도 나흘 동안 걷고 또 걸어갈 때 녀석들은 심심파적으로 눈 앞에 나타나곤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두릉이 보였다. 두릉땅이 가까워질수록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한 두물머리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칼끝처럼 매웁기가 이를 데 없었지만 이제 목적지에 도착한 이상 두려워할 바람이 아니었다.
황상은 나룻배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잡은 뒤 다산의 대문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못되어 떠꺼머리 하인 녀석이 대문을 열고 물었다.
“뉘신지 찾아왔수?”
하인 녀석은 황상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허리는 굽어서 두 동강이 난 것 같고 행색이 몹시 추레했으며 추위에 잔뜩 얼린 얼굴 때문이었다.
“여그가 다산 선생님 집 맞느냐?”
“예, 그렇소만······.”
“그럼, 강진에서 온 사람이 선생님을 뵈러 왔다고 전해 줬으면 쓰것다.”
“잠시 기다리슈.”
하인 녀석이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정학연(丁學淵)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 나왔다.
“산석(山石)이 아닌가? 이 얼마만인가?”
산석은 다산이 지어준 황상의 아명(兒名)이었다.
정학연이 황상의 두 손을 꼭 쥐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두 사람은 우선 사랑채로 들어갔다. 정학연이 뜨뜻한 아랫목에 앉을 것을 권하며 이불로 아랫도리를 덮어주었다.
황상이 처음 학연을 처음 만난 것은 1805년 12월 고성사(高聲寺)에서였고, 한 겨울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서른 해 하고도 한 해 전의 일이었으므로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광음(光陰)이 지나 만난 셈이었다. 젊고 혈기 있던 때를 다 보내고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 만났으니 세월의 무심함을 두 사람은 얼굴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선생님께서는 용태가 으짜신다요?”
“그만그만 하시네. 일단 아버님께 인사부터 하는 게 순서일 것 같네.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학수고대 하셨는지 알기나 하시는가? 참으로 산석은 무심한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으이.”
“송구스럽구만이라.”
두 사람은 안채에 있는 다산에게 갔다. 다산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아버님, 산석이 왔어요. 산석이 말입니다.”
정학연이 다산의 귀에 대고 말하고 나서 다산을 일으켜 세웠다.
“산석이 왔다구?”
다산은 이미 기력이 다 한 모습이었다. 그리도 제자 황상이 보고 싶어 8년 전 간곡한 내용의 음신(音信)을 보냈던 다산이었다. 그런데도 이제야 나타난 황상이 얄밉기도 하련만 다산은 반가운 마음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다산은 8년 전 편지글에서 “너와 헤어진지도 10년이 지났다”며 “네 편지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마도 이생에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암을 만나 보니 마음이 서글퍼서 몇 자 보낸다”며 “기력이 금년 들어 전만 같지 못하니 그 괴로움이 앞에 말한 바와 같다”고 마음의 울적함과 외로운 심정, 그리고 황상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 정황은 연암을 만나게 되거든 알 수 있을 것이다”며 “아침저녁으로 아프다”고 거듭 심신이 여의치 않음을 강조한 다산은, 마지막으로 “부고를 듣는 날에는 연암과 함께 산중에서 한차례 울고 지난 일을 얘기하며 함께 그치도록 해라”는 내용이었다. 그 때가 무자년 12월 12일이었으니 10년 전 일이었지만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보낸 유서와도 같은 편지였다. 다산의 나이 예순 일곱으로 강진으로 귀양살이 하다가 해배가 되어 10년 만에 편지를 보냈는데도 황상은 8년이 더 지나 찾아간 것이었다. 그것도 다산의 회혼일에 때를 맞춘 것인데 거기에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이제야 나타났으니 스승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 절 받으씨요이.”
황상은 다산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다 말고 그대로 포삭 주저앉아 어깻죽지를 흔들며 꺽꺽 울기 시작했다. 어찌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있으랴. 10년 전 편지를 받고도 곧장 올라가지 못한 못난 자신이 서러웠고, 막상 다산을 뵈니 초췌한 안색이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서러웠으며, 열나흘 동안 걷고 걸어서 이렇게 찾아뵈면 뵐 수 있었다는 안도감에 또 울었다. 다산도 한 줄기 눈물이 솟구쳐 양 볼에 흘러내렸다.
“고맙구나. 네가 예꺼정 찾아와 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다산은 18년 만에 본 제자였지만 바로 엊그제까지 함께 지낸 것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와병 중임에도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면서 미소가 물수제비처럼 번졌다.
창 밖에서는 밤바람이 부는지 문풍지가 파르르 떨어댔다. 마을의 개가 간헐적으로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화롯불의 재가 차츰 사위어갈 때까지 두 사람은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산초당은 별 일 없이 그대로 있다지?”
다산은 풍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네. 가끔 가봅니다만 암시랑토않구만이라. 스승님 계실 때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구만이라.”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구나.”
“저도 마찬가지구만요. 탐진바다를 건너서 다산초당을 갈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곤 했는지 몰랐구만이라.”
황상의 말에 다산이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정석(丁石 )이란 글씨도 그대로더냐?”
하고 물었는데 잠시 다산초당에서 지냈을 때의 일을 되새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다조(茶竈)며 약천(藥泉)이며 연지(蓮池)도 여여하구만이라.”
“그럴테지. 네가 막상 이곳엘 오니 강진의 산천이 그립구나. 아름다운 곳이 아니더냐? 그 푸른 탐진바다가 보고 싶구나. 백련사 동백꽃도 보고 싶고······.”
다산은 참으로 오랜만에 제자 황상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 몹시 좋은 모양이었다. 처음 뵈었을 때에는 매양 누워만 계시던 분이 밤이 이슥해서 화롯불의 불기가 가셨는데도 허리를 눕히지 않고 묻고 또 묻는 다산이었다.
“그래, 유인(幽人)의 삶이 어떻더냐?”
“그저 저는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따름 뿐이지라.”
유인의 삶이란 숨어서 지내는 일이었다. 이 땅에 사내라고 태어나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못할망정 남의 눈을 피해 숨어사는 인생이라니······. 그러나 다산은 유인이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청복의 삶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스승님께서 친히 써 주신 ‘제황상유인첩(題黃裳幽人帖)’대로 살다 보니께 말도 못하게 스승님의 은혜를 느끼고 있구만이라.”
“장하다. 내가 해배가 되어 이곳으로 와서 사는 동안 너는 백적동에서 살기 시작했구나.”
“저는 죽을 때꺼정 스승님 말씀대로 살꺼구만요.”
“그래야지.”
갑자기 다산의 고개가 푹 꺾어지면서 호흡이 거칠어졌다. 곁에서 시종 지켜보던 학연이 얼른 다산의 등에 손을 갖다 대면서 눕히려고 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얘길 나눠야겠다.”
한참동안 숨을 몰아쉬던 다산이 손을 내저었다.
“아버님. 밤도 깊었으니 이만 주무시지요.”
학연의 거듭된 재촉에도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난 다산이 한숨처럼 말했다.
“주변에 아는 분들이 하나 둘 떠나가니 이제 나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 일이 큰일이기도 하지.”
“마음 약한 말씀은 하지 마시고 우선 누우십시오.”
다산이 알았다는 듯 자리에 누운 후 손으로 어서 건너가 자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학연이 등잔불을 입김으로 훅 불어 끄고 나자 황상은 밖으로 나왔다.
“스승님을 뵈니 더욱 못난 죄인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구만요. 이렇게 오면 오는 것을 왜 그렇게 18년간 미루기만 했는지······.”
사랑방으로 들어온 황상이 앉자마자 학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아니 또 왜 우시는가?”
“건강하셔 갖고 회혼(回婚)을 잘 치루셨으면 좋컸는디 용태가 저리 하시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당께요.”
“아무래도 회혼 잔치를 미뤄야할 성 싶으이.사람들이 축하글도 보내오고 선물도 보내왔네만 저런 상태에서는 어렵겠어. 18년만에 먼 길을 찾아왔는디 잔치를 미루게 되어 미안하이.”
“건강만 회복하신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지라.”
다음 날 황상은 아침을 마치고 곧장 다산이 묵고 있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얘기를 나눌 정도였는데 다산은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듯 호흡이 거칠었다. 황상은 스승의 곁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릎을 꿇은 채 다산을 내려다보았다. 그 때 홍 부인이 약사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약이니 마십시오.”
홍 부인이 다산의 가슴을 가볍게 흔들었다. 다산은 15살 되던 해 한 살 연상인 홍씨 부인(홍혜완 洪惠婉)과 결혼을 했었다. 두 사람은 금슬이 좋아 6남 3녀를 낳아서 다산(多産)한 부부였다. 다산이 성균관 유생 시절을 보내던 23세 때 일이었다. 그 해 장마로 인해 열흘 만에 집에 들어선 다산은 깜짝 놀랐다. 홍 부인이 어린 종을 회초리로 때리며 엄히 꾸짖고 있었다. 단순한 지청구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진지 오래 되자 어린 종은 이웃 밭에서 호박을 따다가 죽을 끓인 일을 두고 홍 부인은 누가 널더러 도둑질을 시켰느냐며 회초리를 든 모양이었다.
다산은 홍 부인의 고고한 인품에 「남과탄(南瓜嘆)」이란 시를 지었다. 그 일부분이 이랬다.
아아 죄 없는 아이 꾸짖지 마오
내 호박죽 먹을 것이니 두말 마시오
옆집 주인 노인께 사실대로 말하려니
오릉중자 작은 청렴 달갑지 않다
이 몸 때 만나면 출세 길 열리리다
안되면 산에 가서 금광이나 파야지
만 권 서적 읽었으나 어찌 아내가 배부르리
밭 두어 이랑 있었던들 여종은 깨끗했을텐데
이 시를 지을 때 홍 부인은 큰아들 학연이 돌을 넘기지 않은 젖먹이였다. 그런데 여종은 호박을 훔쳐다가 죽을 끓인 것인데 그만 홍 부인에게 들켜 나무라자 다산은 「남과탄」이란 시를 지은 것이다.
다산이 홍 부인의 권유에 간신히 일어나 약사발을 힘겹게 마셨다. 황상은 홍 부인 대신 약탕기가 있는 뜰에서 약을 달이기도 하며 줄곧 다산의 곁을 지켰다. 이따금 정신이 든 다산은 황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고맙구나, 참으로 고맙구나.”
하고 아픈 와중에도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애썼다.
“내가 아침나절에 잠깐 꿈을 꾸었는데 강진의 다산초당이 보이더구나. 죽도와 가우도가 있는 탐진바다도 보았다. 그러더니 내가 어느 틈에 월출산 천황봉에 올라가 있는 것 같더니 동백나무가 많은 백운동과 백련사를 훨훨 날아서 다녔지 뭐냐. 덕룡산(德龍山) 용혈암(龍穴庵)도 다녀오는 꿈을 꾸었다. 산석 네가 고맙다. 네가 강진에서 여기까지 오는 바람에 내가 강진 꿈을 꾼 것 같아서 말이다. 꿈속에서나마 강진의 산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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