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꿈에 그리던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명사산과 월아천

명사산 앞에서 기념촬영

기고

꿈에 그리던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신영호(문화해설사)

이번 중국 역사문화탐방 여행에서 핵심지역은 돈황(敦煌)이다. 돈황에는 막고굴(莫高窟)이 있고 명사산과 월아천이 있기 때문이다. 돈황의 옛 지명은 과주(瓜州) 또는 사주(沙州)라고도 한다.

맛있는 과일이 풍부하고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 붙여진 별명일 것이다. 돈황에서 3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 아침도 쾌청 그 자체다. 어제 막고굴을 본 감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숙소로 가는 버스에서 내일 아침 일정은 7,8,9로 시작한다고 한다.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식사를 마치고 9시에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곳 현지가이드가 정한룰이다. 9시가 조금 지나서 명사산을 향해서 출발하였다. 오늘의 일정은 명사산과 낙타타기 체험 그리고 월하천이다. 돈황의 시내를 버스는 벗어나고 있다. 돈황은 인구 10여만 명의 작은 도시이고 연중강우량이 30㎜미만 되는 사막가운데 오아시스 도시인 것이다. 서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시작된다.

10여분 거리에 있는 명사산에 도착하여 사막에서 낙타타기 체험을 한단다. 처음 타보는 낙타라 다소 불안하게 출발하였으나 막상 타보니 생각보다는 이색적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한시간정도 모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체험이 될 것이다. 모래등성이를 지나서 정상 가까운 곳에서 낙타를 내려서 한 30여분 동안 일망무제의 사막을 조망하고 사진도 찍고 맨발로 모래밭을 걷기도 하고 손으로도 모래를 만져본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정이 새롭게 느껴진다.

낙타는 앉을 때 습성이 두 앞발을 동시에 굽혀서 위에 탄 사람을 내려준다. 상당한 충격에 나는 하마터면 낙타 손잡이를 놓칠 뻔 했다. 우리 일행을 낙타에서 내려주고 여자마부는 우리에게 무어라고 중국어로 말한다. 알고보니 낙타를 타고 오다가 사막 중간에서 디카를 주라고 한다.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는데, 그 수고비를 달란다. 10위안(한화2000원)이라고 해서 가벼운 생각에 잔돈이 있어서 10위안을 건네주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손을 젓는다. 1인당 10위안이라며 1조가 5명이니 50위안을 주라고 했다. 우리나라말에 칼만 안 들었지 순 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10위안만 받으라고 주었다. 여자 마부는 머쓱하니 10위안을 슬며시 받더니 저쪽으로 가만히 가버린다. 중국이 자본주의 나라도 아닌데 자본주의 속에서 자란 우리들보다 더 한 것인지 아니면 관광객을 봉으로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막의 풍경은 단조롭다. 크고 작은 모래산이 사방 연속무늬같이 끝이 없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낙타를 타고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오면서 낙타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낙타는 생긴 것과는 달리 연약한 동물이고 온순하기 그지없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랬다. 평지로 내려와서 모래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는데 앞에 나타난 정경이 월아천처럼 보였다. 오아시스 같은 풀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디카로 주변을 찍어댔다. 하나라도 더 담고 가야지 하는 욕심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광경이다. 뜬금없이 시멘트로 된듯한 담수지가 나타난 것 아닌가. 진의를 파악하는 데는 한참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은 월아천이 아니라 물을 담아 놓은 담수지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조그마한 담수지에서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젊은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낭패가 없다. 이런 망중한도 유분수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사막 한가운데서 낚시라니 내가 가까이 다가서는데 낚싯대가 활처럼 상당히 휜다. 무엇이 물긴 물었나 보다. 나는 설마 이곳에 물고기가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중 한 젊은이가 낚싯대를 끌어당기면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것이 아닌가. 분명 물고기였다. 피라미 같이 생긴 10㎝가 넘는 것이 손가락 사이로 은빛으로 빛났다. 물고기였다. 사막한가운데서 그것도 조그마한 담수지에서 물고기를 잡다니 기가막힌 노릇이 아니던가. 마침 뒤 따라오던 영석이 형이 이 장면을 카메라로 담았다고 한다. 그 두 젊은이는 우리를 보더니 황급히 낚싯대와 짐을 대강 챙겨서 자리를 뜬다. 아마 이곳에서는 낚시가 금지되어 있는 모양이다. 월아천 담수지를 지나서 보도블럭 길을 따라서 한참을 가니 말로만 듣고 사진과 책에서만 보았던 월아천과 절의 높은 탑이 눈앞에 들어온다. 너무나 반가웠다.

월아천 좌우편에는 아주 높은 모래 산이 서 있고 그 가운데에 오아시스 월아천이 초생달 모습으로 물이 찰랑거리며 시원하게 자리하고 있다. 월아천 주변에 있는 모래에는 물기가 배어있는 곳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아마 월아천이 오랜 세월 동안 사막 가운데서 물이 계속 말라가고 있어서 아까 낚시하고 있던 담수지에서 물을 보충해주고 잇는 것 같았다.

월아천 주변에는 그만그만한 또래 아이들이 모래 장난을 치고 있다. 물구덩이를 파고 있는 아이, 모래성을 쌓고 있는 아이, 물모래를 던지며 장난치는 아이, 어디를 가나 어린이들은 노는 방법이 다 비슷한 것 같다.

천진난만하기가 이를데 없다. 오아시스와 월아천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가이드 설명은 이렇다. 명사산과 월아천의 북쪽에는 3000m-5000m 높은 봉우리산과 2000㎞가 넘는 알타이 산맥의 만년설이 있고 남쪽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신비스럽다고 하는 곤륜산맥과 기련산맥의 만년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만년설들이 서서히 녹아서 사막의 땅 속으로 스며들어서 가장 낮은 곳으로 물이 모이게 되고 이곳이 오아시스요 월아천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기온이 여름 한 낮에는 40℃를 넘고 연중 강수량이 30㎜ 미만이 되는데 연중 증발 강수량은 3000㎜란다. 이 물이 모두 만년설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 같다.

아! 월아천 3000여 년 동안 사막 한가운데서 한 번도 마르지 않고 월아천을 지키고 있다니 놀랍다. 목마르고 지친 여행객들에게 생명수가 되어주고 편히 쉴 곳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을 초생달 모습의 오아시스 월아천이 아니던가. 신기하기도 하며 또한 사막의 낭만이 아닐 수 없다. 청명한 밤하늘에 뜨는 달이 첫 번째 달이라면 월아천 호수에 뜨는 달은 그 두 번째 달이요 그리고 나의 술잔에 뜨는 달은 세 번째 달이 아니겠는가. 먼 곳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지친 여정의 피로를 풀어 줄 오아시스 월아천이 아니겠는가. 옛날에 실크로드를 오고가는 카라반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늦은 오후에 사막을 출발한다. 선두의 낙타를 따라서 일렬로 모래사막을 건넌다. 앞선 여행자가 죽어서 남긴 백곡만이 달빛 아래 반짝일 때 이를 이정표 삼아서 방향을 잡는다. 일행 중에서 졸다가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는 뒤에 오는 여행자를 위해서 이번에는 자신이 백골이 되어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사막에서의 일상이었단다. 오아시스 월아천을 만나면 피곤에 지친 여행객들의 반가운 심정을 우리는 어찌 헤아릴 수 가 있을 것인가 월아천 주변에는 이름 모를 야생풀들과 갈대가 무질서하게도 무성히 자라고 있다. 생명력의 강인함을 보는 것 같다. 주변으로는 울타리가 처져 있고 안내판이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중국어 일어 한국어로 동시에 쓰여 있다.

한국어 표기는 ‘물이 너무 짚어서 뛰어 넘지마세요’라고 써있었다. 한국어 표기를 누가 가르쳐주었을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절로 들어가는 돌계단에 올라섰다. 멀리서 보이던 월아천은 고즈넉하니 고풍스럽게 보였는데, 막상 들어와서 가까이 보니 너무 깨끗하기만 하고 옛 스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낡고 쓰러져서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너무 잘 정돈된 주변 환경이 또 한번 실망을 금치 못했다. 1층 회당을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데, 고순덕 해설사 선생과 마주쳤다. 우리 일행들이 나를 찾느라 야단이 났단다. 대충 얼른보고 가자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못본 곳을 더 보자며 2층 누각으로 가는 계단으로 건너갔다.

2층 계단 입구 앞에서 동으로 만든 ‘관음월아’라고 쓴 청동 관음상이 아주 정교하니 좌정하고 있다. 아마 이 월아천과 깊은 관계가 있는 듯 한 관음상 같다. 2층 누각 쪽으로 가는 계단과 길에는 뜻을 알 수 없는 멋들어진 한문 현판들이 곳곳에 걸려있고 벽면 한곳에는 그림과 한문글씨가 조각 되어 있다. 1층에서 본 돈황비천상을 그린 배설운이란 작가 선생이 화실로도 쓰고 작업도 하면서 방문객과 대담도 나누고 있다. 작품을 팔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각으로 들어서며 "니 하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당신이 그린 비천상이 최고라는 표시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고맙다는 듯이 웃음지 으면서 일어나서 우리 쪽으로 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작품은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데, 불상과 보살상, 포도, 비천상, 소녀상 등 많은 그림들이 무질서하게 걸려있다. 그중에서 어제 돈황 막고굴에서 보았던 비천상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영어로 물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여직원인 듯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화면에 3000위안이라고 찍는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이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니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잡스에게 또 한번 감사드렸다.

일행들이 기다린다고 하면서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직도 머뭇거리는 나를 뒤로하고 그녀가 앞장을 선다. 빨리 따라오란 듯이 너무 아쉽다. 꿈에 그리던 명사산과 월아천이 아니던가.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서로 부딪혀 우는 소리를 낸다는 명사산 또 사막 한가운데 지친 나그네를 달래줄 생명수, 풍요로움을 느끼는 초생달 오아시스 월아천이 아니던가. 더 머물고 싶고 더 보고 싶다. 일행들과 만나기 위해서 빠른 걸음으로 모래밭과 나무계단을 번갈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이 아니던가. 이 길을 통해서 저 멀리 로마까지 중국에 비단과 새로운 문물이 전해지고 서양의 새로운 것들이 오지 않았던가. 찬란한 동서양의 문물 교류의 길이 실크로드였다. 우리도 이제 청자의 길 세라믹 로드를 살려야 한다. 한중일을 아우르는 세라믹 로드를 통해서 세계의 자랑 상감청자를 승화시켜야 한다.

신라 때 일본과 중국 강진을 오고가며 국제무역을 했던 무역 왕 장보고 선단이 왕래 하면서 개척했던 세라믹 로드다. 강진은 청자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을 오늘에 되살려서 청자축제와 연계한 축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앞으로는 세계화만이 살길일 것이다. 한중일이 참여한 청자축제만이 미래지향적인 축제가 될 것이다. 강진의 새로운 변화는 세라믹 로드다. 나는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본다. 무엇을 두고 온 것 같다. 이 무슨 미련이 그렇게도 남았는지 말이다. 그리운 님을 두고 온 것도 아닌데 카메라를 꺼내서 아쉬움을 몇 카트 더 찍는다. 점점 멀어지는 명사산과 월아천이 아주 작아지고 있다.

명사산아! 월아천아! 안녕!

내 마음속으로 더 크게 소리친다. 명사산야 월아천을 영원무궁토록 지켜다오

- 2013년 6월 29일 하미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새벽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