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선일지
2013년 09월 23일
황 주 홍(민주당, 전남 장흥강진영암)
어 머 니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모시고 산 지 25년째입니다. 둘째 아들이지만, 유학에서 귀국한 89년 이래 어머니를 모시는 특전을 누려왔습니다.
우리 집안을 아는 분들은 저보고 효자라고 합니다. 어머님도 저를 보고 제 이름 대신 “효자야!”라고 부르셨습니다. “네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겠냐”는 말씀도 가끔 하셨습니다.
아아, 그렇지만 저는 정말 한 번도 효자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늘 막급한 불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라고 해야 제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전 불효했습니다. 평생을 두고 씻어내지 못할 불효만도 얼른 두어 번이었습니다. 한번은 70년대, 한번은 80년대였습니다.
저는 1976년 대통령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남한산성’으로 불리던 육군교도소에서 1년간 감옥을 살았습니다. 맨 처음 광주시 상무대에 있었던 전교사(전투병과교육사령부) 영창에서 한 두어 달 살았습니다. 불심검문식으로 갑자기 붙잡혀 오는 바람에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영창에 수감되었습니다. 한 댓새쯤 되던 날 어머니가 처음 면회 오셨습니다. 어느 부대장실에서 특별면회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빡빡 민 제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셨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따뜻했던 손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육군교도소로 이감된 뒤 정치범이었던 관계로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면회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어머니 혼자 그 황량했던 남한산성으로 면회 와서 겨우 한 10분 만나고 돌아가는 일을 매월 되풀이하셨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서럽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저는 한 달에 한번씩 슬픔에 잠겨 눈물짓곤 했습니다. 그때 긴급조치위반이라면 인생 조지는 걸로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보통 7년, 10년 이상씩 징역형을 선고받던 때였습니다. 아버지와 사실상 헤어져 홀로 사시던 어머니의 두려움과 슬픔이 오죽 하셨겠습니까. 그때 저는 대통령께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 갚을 길 없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또 한번의 불효는 8년 동안의 외국유학이었습니다. 저와 제 아우가 함께 훌쩍 미국유학을 떠난 뒤 어머니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셨다는 이야기를 뒷날 누나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기나긴 8년 동안 넉넉지도 못했던 형편에 계속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야만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고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들이 미국에서 호의호식하며 공부한다고 늘어져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하셨습니다. 생활력이 유별났던 어머니께서는 조금이라도 유학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이일저일 이짓저짓 안 해보신 것이 없으셨다 했습니다. 이런 불효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어찌 이 두 가지뿐이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보다는 늘 걱정을 끼쳐드리고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드린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 일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효도 한번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아마 딱 한번 효도했던 것 같습니다. 광주일고에 합격한 일이었습니다. 서중·일고 앞을 지나 다닐 때마다 항상 부러웠었는데 네가 합격해서 원을 풀었다는 말씀을 어머니는 여러번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처음 기쁘게 해드렸던 것 같습니다.
하긴, 또 한번 어머니가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시절입니다. 군부는 ‘혁명공약’이란 걸 발표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걸 외우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이 혁명공약을 줄줄 외우면 어머니는 그렇게 기뻐하시며 대견해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을 빼놓고는 전 한번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았다고 해도, 서울에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해도, 고향의 군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도 어머니는 기쁨의 내색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친척들은 자랑스럽다고 떠들썩했지만 어머니는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세파에 시달리고 찌든 나머지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그 기능이 상처받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아,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오직 저더러 잘하라고, 조심하라고, 깨끗이 일하라고 당부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부탁받을 때가 좋은 줄 알아라.”는 말씀을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하셨습니다. 힘이 있을 때 이웃에 잘해드리라는 어머니의 소박한 ‘철학’이셨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무엇일까요. 어머니는 누구인가요. 어머니란 존재는 대체 우리에게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그림자가 어머니일 테지요. 맞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다 옳습니다. 세상 어머니들의 모든 것은 다 정당한 것이지요. 혼자서 “어머니...!”라고 불러보고 나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 딸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게도 제 어머니는 제 존재이유입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제 세계는 어머니가 계시는 세상과 안 계시는 세상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제 삶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 제 성공과 장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열 여덟 꽃다운 나이에 시집오셔서 한평생을 죽도록 고생과 희생의 가시밭길을 이날 이때까지 헤쳐오신 제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 해드려야 효도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평생 남편의 사랑 받지 못하고 자식들만을 위해 밤낮없이 살아오신 우리 집안의 불사조 우리 어머니께서 지난 7월 11일 고향 집에서 쓰러지셨습니다. 뇌출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그 며칠 전 서울로 떠나올 때 저에게 잘 다녀오라고, 항상 조심하라고, ‘밤은 남의 날’이라고 걱정해주시던 어머니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거의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실감했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우리 어머니는 소생하시고 말거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았지만, 그저 정신이 멍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전남대 병원 중환자실과 강진의료원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러다 그저께 마침내 퇴원해서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젯밤 어머니는 거의 두 달 반만에 고향 집 당신 방에서 주무셨던 것입니다. 마침 긴 추석 연휴여서 모처럼 어머니 병상을 곁에서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젯밤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저는 방을 나와 마당 구석구석을 빙빙돌며 걸었습니다. 추석 직후의 보름달이 하늘 높이 떠서 온세상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빌었습니다. 제발 다시 한번만, 우리 어머니 의식이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중환자실 입원 초만 해도 오래 사실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벌써 3개월 가까이 생존해 계십니다. 의식이 돌아오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고 진단했지만, 어머니는 가끔 의식이 돌아와서 눈을 떠서 저를 쳐다보기도 하시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십니다. 언어 기능 회복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지난 7월 20일 오후엔 절 보고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아들아!”하고 부르시기도 했습니다. 엊그제는 등쪽에 두드러기성 알레르기가 있어 차가운 타월로 냉찜질을 해드렸더니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추워....!” “그만....!”같은 외마디 발언도 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기적같은 일이라고, 평소에 아주 건강하셨던 것 같다고 놀라워들 하십니다.
얼마 전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해주시는 ‘옥희 아주머니’(92세의 노모께서는 본인 수발드는 분들을 모두 “옥희!”라고 부르셨습니다.)께 어머니가 금년 말을 넘겨 살아계신 것이 우리 가족의 목표입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아주머니는 “어휴, 그보다 더 오래 사셔야지요.”라고 긍정적 다짐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아무튼 제 목표는 어머님이 금년을 넘기셔서도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추석 연휴에 내려온 큰누나도 “금년 말을 넘기시게 하는 게 목표라는 네 말이 이해가 되는구나....”라며 말끝을 흐릴 만큼 어머니는 갈수록 쇠약해지시고 갈수록 혼미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전 어제 상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니 뭐니 하는 것이 다 저와는 먼 거리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오전 의원총회가 있어서 올라오기는 했지만 별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위험한 순간이 닥칠지 모르는 어머니 곁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는 일이 영 내키지를 않았습니다. 또다시 불효하는 일이 될까 불안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아직 마비되지 않은 왼손을 좀 더 오래 꽉 잡아드리고, 어머니의 이마에 내 손을 얹고 짐짓 “아따, 우리 어머니 이마 잘 생기셨네!”하고 눙치거나, 앙상해진 어머니 뺨을 만지면서 “오메, 어머니는 어쩌면 이렇게 혈색이 좋으실까....”라며 한껏 즐겁다는 목소리로 어머니께 메아리 없는 말씀을 걸거나, 거의 항상 차디찬 양쪽 발을 두 손으로 주물러 드리거나, CD플레이어로 조상현과 김동애가 이몽룡과 성춘향으로 나오는 판소리 「춘향가」 1, 2, 3, 4를 고음으로 틀어드리면서 어머니 병상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침대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이런 기억도 떠오릅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 곁을 아예 떠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소변 같은 걸 보러 화장실(변소)에 가실 때조차 어머니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결국 30대의 젊은 어머니는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용변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화장실의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국민학교 1학년 때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독한 유아증이었을까요.
저를 잘 아는 고향의 한 친구가 “요즈음 세상에 어머니 일로 자네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고, 고생시켜 드리고, 서러움에 젖게 만들었던 이 불효자의 죄책감 때문에 아마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태생적으로 어머니의 분신이어서 어머니의 아픔으로부터 도무지 자유로울 수가 없나 봅니다.
어머니 또래의 할머니들이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핑 돕니다. 어머니가 쓰러져 식물인간처럼 누워 계시는 뒤부터 생겨난 버릇입니다. 아직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이러하거늘, 정말 돌아가시고 나면 아아,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것도 또 걱정이고 또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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