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원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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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이도 돈목해수욕장 모래언덕 |
홍어장수 문순득과 다산형제들(2)
우이도, 어떤 섬인가
필자는 우이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정약전의 서당터를 바라보면서 문득 나무꾼·어부를 벗 삼은 비운의 실학자 정약전이 지은 시 한편을 떠올렸다. 그가 지은 시문집이 올해 발견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실린 시로서 제목이 ‘사포소집차두운(沙浦小集次杜韻)이다.
서너 나그네가 가을빛 따라와
三兩客將秋色來
시 지으며 흥을 돋우니 재주는 따지지 않네
詩因遣興未論才
서늘한 바람 나무에 있건만 매미는 아직 울고
凉颷在樹蟬猶響
맑은 달빛 모래밭에 가득하자 기러기 돌아오라네
淸月盈沙鴈欲回
푸른 산 오두막집에 추위가 스며드니
小屋靑山侵席冷
사방 이웃들이 막걸리잔을 건네네
四隣白酒捧杯催
나무꾼에 고기잡이까지 기쁘게 친구 되니
樵兒魡叟懽成友
집집마다 마음껏 웃음꽃 피는구나
恣意家家笑語開
이 시에서 정약전은 나무꾼이며 어부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친구처럼 어울리며 지냈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지냈으니 절해고도에서도 웃음꽃 피는 따뜻하고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외로운 섬도 사람 사는 곳이니 어찌 정의 나눔이 없겠는가.
이러한 인간관계로 인해 ‘자산어보’를 쓰게 된 정약전이 어류 관찰과 지식에 큰 도움을 준 장창대(張昌大)에게 준 시(寄張昌大)에서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사람들은 장창대를
人說張昌大
남들보다 뛰어난 선비라고 한다네
迢迢逸士林
낡은 책을 언제나 손에 들고
古書恒在手
오묘한 도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네
妙道不難心 초저녁부터 이야기 나누다 보면
忽忽初更話
어느 새 바닷소리 들려오나니
悠悠隔海音
어찌하면 한낮부터 밤이 다 하도록
何當窮日夜
이치의 근원을 깊이 더듬어 볼까
到底理源深
이 시에서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어부들과 함께 연구하고 함께 썼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자산어보’는 어부들과 함께 쓴 물고기 생태학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정약전 홀로 작업이 불가능한 것이 ‘자산어보’인 셈이다. 나무꾼들을 위해 건의한 ‘송정사의’는 ‘자산어보’와는 달리 정책건의서이기도 하다.
정약전의 서당터가 있는 서당골에서 돈목마을로 가기 위해 다소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서당골에서 반대 방향인 돈목마을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걷기로 결정한 거였다. 그 길은 우이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산봉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거리는 3.5km였다.
산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탓인지 여러 차례 새로 생긴듯한 거미줄을 마주쳐야 했다. 그리고 중간 쯤 갔을 때였다. 대초리 마을이 나타났다. 열 댓집 정도가 살았다던 대초리는 이제 그 집터만 남아 있고, 집터마다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상산봉에서 가장 가까운 곳. 그래서 거대한 산의 품 안에 안겨 있는듯한 대초리 마을이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 육지의 깊은 산골을 연상케 하는 대초리 마을은 해적들의 노략질을 피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논이라곤 한 마지기도 없는 우이도에서 유일하게 쌀농사를 지었다는 대초리는 이제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셈이었다.
가장 대초리 마을을 불편케 하는 것은 교통이었다. 대초리에서 진리를 가고자 해도 고개를 넘어야 했고, 돈목마을을 가고자 해도 고개를 넘어야 했으니 이리b가나 저리 가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농사를 지어도 지게로 날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이제는 폐촌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대초리 우물이라는 샘이 있어 그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400여 년 동안이나 마을을 지켜온 대초리 우물. 길 가는 나그네가 목마름을 달래고 갔던 이 우물을 우이도 주민들이 복원을 해놓았다. 그 마을을 지나가자 청정지역답게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가재가 보였다. 가히 장수촌이라 불릴 만큼 공기 좋고 물 좋은 마을이 아닐 수 없었다.
천천히 걸은 탓으로 1시간 20분 뒤에 돈목마을에 도착했다. 돈목마을은 별로 크지 않는 마을이었으나 돈목 해변이 무척 아름다웠다. 해수욕장으로도 능히 사용되는 돈목해변은 모래가 가늘어 숫제 밀가루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오른손 쪽인 성촌 마을 쪽으로는 모래언덕이 보였다. 우이도에서 유명한 모래언덕이었다. 이날 밤 돈목마을 민박집에서 자연산 회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밤에는 돈목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모래가 단단해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촉이었다. 태고적 소리처럼 파도소리만이 끊임없이 들리는 우이도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다음 날, 6시 40분에 ‘섬사랑 6호’가 나타났다. 그 배는 돈목마을 건너편 성촌을 들리고 우이도를 반 바퀴 돌아 동소우이도와 서소우이도를 또 들린 후 비로소 어제 내렸던 진리에 닿은 ‘섬사랑 6호’는 진리를 벗어나면서부터 곧장 목포항을 향했다.
“‘섬사랑 6호’는 10년 전 도초에서 하루에 두 차례씩 왔다갔다 했어요. 그 때는 가까우니까 전혀 지루한 줄을 몰랐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 배가 11시 정도에 목포에 도착하면 다시 목포에서 11시 40분 출발 우이도까지 가고, 우이도에서 도초까지 와 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나 우이도 돈목으로 가면 6시 40분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목포로 오면 또 11시 경이 됩니다”
기관장의 말을 들으니 상당히 고된 일과임에 틀림없어 보였지만 우이도 사람들에게는 매일 목포로 나갈 수 있어 교통편이 그리 나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홍어장수 문순득
10월 5일 강진 고성사에서 열린 열두 번째 산사음악회에서 ‘인디밴드그룹’은 ‘홍어’라는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크게 받았다. 노래 가사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어는 이제 노래가사까지 있을 만큼 남도의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홍어를 장사한 문순득은 남평 문씨가 가문이다. 남평 문씨의 시조는 신라인 문다성(文多省)이며 본관은 전남 나주시 남평면이다. 그러므로 우이도의 남평 문씨 가문은 순질공파로 고려 문익점(文益漸)의 둘째아들인 문중성(文中誠)의 후손이다.
남평문씨가 도초도·비금도·암태도·우이도·자라도·태도 등에 거주한 것은 1640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우이도에는 경주 김씨와 청주한씨 등이 먼저 정착했었고, 이루 문일장(文日章) 가족이 도초도에서 이사를 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신안 여러 섬에서 우이도와 가장 가까운 섬은 도초도이다.
문일장은 1745년 우이도 선창에 참여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우이도 선창은 문순득의 고조부 문일장이 선창중건에 화주로 참여했다는 나주 우이선창 공적비가 남아있다. 1745년 영조 21년에 세워진 것인데, 2011년에는 새롭게 ‘나주 우이선창 공적비’를 유적정비를 위해 신안군에서 세웠다. 그 비석에는 <船倉功績碑刻字羅州牛耳船倉碑)라 새겨져 있고, 화주로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중 문일장이란 이름이 있었다.
이러한 가문에서 태어난 문순득은 필연적으로 바다와 더불어 삶을 살았다. 당시 남평 문씨 사람들은 주로 해상에서 상업 활동을 하였는데, 그로 인해 부를 상당히 쌓을 수가 있었다. 더구나 18세기 초반에는 납속첩(納粟帖)을 구입, 신분상승을 노리기도 했다. 문순득도 납속첩을 받았는데, 이는 문순득이 국가에 재물을 상납하고 받은 교지로써 1835년 헌종(憲宗)이 문순득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지는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품계 등을 내려주는 문서이고, 가선대부란 조선시대 종2품 동서반 문무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납속첩은 문순득의 고조부와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받았다. 조선후기에 성행했던 납속첩은 양민과 천민의 경우 양반 또는 평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었다. 곡물 1,000석이면 실제 관직을 주었고, 곡물 500석이면 관직을 올려 주었으며, 곡물 100석 이상이면 관보에는 기록하지 않고 교지를 내려주었다. 곡물 50석 이상이면 포상을 주었는데, 납속 통정첩을 받은 사람에게는 납속 가선첩으로 올려주었다. 곡물 50석 미만이면 3년 동안 부역을 면해 주었다. 이 같은 기록은 1812년 순조 12년에 나타난 기록이다.
문순득의 묘는 현재 해남군 화산면 금성산 봉저리의 ‘남평문씨 세장산’에 있다. 신안 우이도와 도초도에 살면서 해남, 강진, 등을 오갈 때 해남 화산면의 세장산이 명당이라 생각하고 묘를 썼다고 전해 오고 있다.
문순득은 1802년 1월 18일 태사도에서 고향인 우이도로 되돌아가기 위해 돛을 올렸다. 그런데 배가 대흑산도와 태사도 사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북서풍이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배는 속절없이 거친 풍랑에 의해 서남쪽으로 수 백리 떠내려갔다. 바람이 거칠어 돛을 올릴 수가 없어 돛대를 키로 사용하고 물결치는 대로 배를 맡겼다. 이것이 문순득 표류의 시작이다.
문순득은 3년 2개월 동안 표류노정을 일기체로 서술하였다. 손암 정약전은 문순득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처음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표해시말」이다. 다산의 제자 이강회는 이것을 자신의 문집에 옮겨 적으니 문집「유암총서」에 실려 있다. 이강회는 「운곡선설」을 지으니 문순득이 선박에 관한 일에 매우 능한 사람이므로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서두에서 밝혔다. 그러므로 「운곡선설」은 문순득과 이강회 두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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