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기념사업회와 함께한 이현숙 기자의 대마도 1박2일 여행기
일본과 한국을 잇는 산맥… 울창한 숲이 지닌 비밀
1. 태풍 다나스를 헤치고
대마도는 일본 본토에서는 132㎞ 떨어진 반면 한국에서 49.5㎞ 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본 규슈보다 부산으로 가는 게 훨씬 빠른 거리다. 그래서 이곳이 왜 한국 땅이 아니고 일본 땅일까 하는 아쉬움이 내내 머릿속에 남은 체 대마도행 오션 플라워호에 올랐다.
사실 이번 여행은 태풍 다나스가 여행 전날인 8일 부산쪽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에 9~10일의 여행 일정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 했으나, 다행히 다나스는 이름처럼 다 낳은 듯 9일 아침 잠잠해졌다.
영랑기념사업회에서 역사탐방의 목적으로 32명의 회원들이 함께 한 이번 대마도 여행은 태풍 다나스로 인해 다소 늦춰진 9일 아침 7시 30분에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여객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끝낸 오후 1시 태풍으로 인해 파도가 5미터 이상 높이 솟는다는 예보가 배에 올라타자마자 여러 번 방송되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망망대해에 몸을 싣고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향하는 마음은 태풍의 여파로 인해 파도가 심하다는 방송은 절로 뒷전이 되어 사라졌다. 오로지 푸른 바다 안에 파묻히고 싶은 동심으로 돌아가 파도야 솟을 대로 솟아라 하며 바다만 바라보며 들뜬 기분이 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비어 있는 창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승무원이 다가와 유리창이 깨질 염려도 있으니 옮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제성은 없는 말이어서 그대로 앉아 바다구경을 맘껏 하려 했다. 그런데, 배가 대한해협으로 나아가자 바다는 거침없이 사나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가 아니라 온통 먹빛바다로 변해버렸다. 까만 바다에서 찰싹 소리가 나면 물 호스를 창가에 대고 쏘아대는 것처럼 하얀색 물감이 네모 창에 그림을 그리며 씻기어 내려갔다. 여기저기서 윽 윽 멀미하는 소리가 났고 나도 식은땀을 흘리며 바다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기진맥진 눈을 감았다.
2. 대마도에서 첫 날
1시간 20분정도 걸려 대마도 히타카츠 항에 도착했을 때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가이드 권상의 첫 관광안내는 히타카츠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미우다 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은 일본의 100대 명소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과 모래, 옥빛 바다로 이루어진 곳이다. 하지만 태풍 다나스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아주 오랜 기간 수없이 스쳐갔을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 바라봤다. 고깔모자처럼 생긴 바위 하나에 불쑥 하늘만 보고 자란 나무 한그루가 위풍당당해 보였으나, 그 반이 죽어가는 모습 또한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쓸쓸함을 안겨 준다. 여름에 왔더라면 저 옥빛 물결을 가르며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 위를 밟고 싶지만 지금은 계절이 아니다. 그 회색빛 바다에서 일본사람들 생활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아담한 이 해수욕장이 일본 100대 명소에 뽑혔다는 것에서 일본인들의 작은 것에서 미를 찾는 소박한 삶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일행의 뒤를 이어 미우다 해수욕장을 찾은 한국의 다른 여행자들을 마주 대하며 다른 관광지로 발길을 옮겼다.
일본에서 쓰시마섬이라도 불리는 대마도는 산지가 88%로 이루어지고 3%가 농경지다. 한 때 버림받은 땅이라고도 불렸다는 대마도는 한국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지역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가교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이날도 목격했다시피 현재에도 대마도를 찾는 여행가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럼 왜 한국인들은 대마도를 찾고 있는 것일까. 대마도는 한국인들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 중 한 곳이 바로 한국전망대다. 맑은 날에는 부산이 보인다는 이 곳, 그러나 우리 일행은 날씨가 흐려서 볼 수 없으니 운이 없다. 한국전망대에서 보이는 것은 정글처럼 빽빽한 숲과 자욱한 안개 그리고 부산이 보인다는 쪽으로 보이는 작은 섬 위에 일본 최대 해상자위대 레이더기지가 있다. 팔각정으로 지어진 한국전망대 건물은 1997년 한국에서 들여온 재료로 한국 팔각정 모양을 따서 그대로 만들어졌다. 팔각정 안에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설명과 루트가 그려져 있어 당시 행렬이 얼마나 장대하고 화려했는지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의 야경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인근에 한국이 원산지인 이팝나무 3천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 한국전망대 아래 조선역관사순난비가 있다. 조선사절단은 1429년 세종 11년에 조선통신사를 명칭으로 일본을 방문하기 시작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총 여덟 차례 일본을 방문하다 중단됐다. 이후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 두 차례 일본을 방문하며 문화 교류 및 외교를 펼쳤는데, 그 규모는 300~500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그 와중 1703년 숙종29년 2월 5일 대마도 입항을 목전에 두고 침몰사고가 일어나 조선역관 108명과 일본역관 4명 등 112명이 몰사하였고,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조선역관사순난비를 1990년 세웠으며, 비석 앞에 112명의 이름을 새긴 검은 대리석을 세웠다.
다음 행은 에보다시케 전망대로 향했다. 버스 창으로 보이는 대마도 풍광은 산림이 빼곡하게 우거져 있어 자신도 모르게 대자연에 풍덩 빠져있게 된다. 계속해서 가랑비가 내렸다. 일본의 하룽베이라 불린다는 에보다시케 전망대에 오르자 섬섬옥수, 올망졸망 자그마한 섬들이 안개 사이사이로 신비롭게 드러났다. 리아시스식 해안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 오히려 상쾌한 신록천지를 만들었다. 초록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서 심신안정과 힐링이 된다. 이곳에 식재된 나무들은 소나무, 대나무, 삼나무, 편백나무로서 미래를 내다보고 천연자원으로 쓸 목재를 계획적으로 심었다고 한다. 일본이 4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먹고살만한 목재를 이곳에 심어 놓았다는 것인데, 이것만 봐도 일본인들의 계획적인 정책을 엿보게 된다. 일본은 일찍부터 자원을 철저히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며 대마도도 개발보다는 자원을 보존하는 쪽으로 대자연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태풍으로 인해 늦춰진 일정과 흐린 날씨로 인해 발걸음을 재촉 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자는 생각으로 대마도의 신록 속을 빠르게 헤쳐 나갔다. 다음 관광지 와타즈미신사는 우리나라 건국 단군신화처럼 일본 천황 텐노의 탄생 신화가 있는 신사라는 점에서 신비감이 있었다. 천신의 아들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와 바다의 수호신인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를 신으로 모신다.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가 잃어버린 낚시 바늘을 찾기 위해 내려왔다가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를 만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 출산장면을 보지 말라고 했던 말을 어기고 남편이 보고 말자 화가 난 도요타마히메노미코토가 아이를 놓고 용궁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후 이모가 돌보며 성장하자 이모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초대 천황 진무 텐노다. 일본 왕족 탄생신화가 있는 이곳은 당연 가장 신성시 되는 신사가 되고 있다. 일본의 신사에는 문기둥만 있는 것처럼 생긴 도리이가 있다. 이곳에는 바다가 인접해 있는 쪽으로 도리이가 2개 있고, 신사 쪽 3개의 도리이까지 총 다섯 개의 도리이가 있다. 이 문기둥처럼 생긴 도리이는 새라는 뜻으로 밖은 인간세상이고, 안은 신의세상을 뜻하여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 다섯 개의 도리이는 인간의 오욕을 뜻하여 인간의 욕망이 끝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가야 김수로왕의 4째 아들이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 허씨성을 따랐으며 사쿠라 라는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대마도로 건너와 살았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모든 신사에는 우물이 있다. 우리나라 절 우물에서 음복을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신사 우물물은 먹지 않고 두 손을 비벼 씻는 정화의식의 하나다. 왼손은 과거의 죄를 씻고, 오른손은 현재의 죄를 씻으며, 입을 씻은 후 말로써 지은 죄를 씻은 후 본전으로 가서 소원을 빈다. 길흉을 점쳐본다는 하얀 종이에 쓴 오미쿠지가 도리이나 신성하다는 나무에 몇 개씩 묶어져 있다. 일본 건국신화를 모시는 신사에서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아리송했다. 신사 입구 양쪽에는 사자와 비슷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삽살개처럼 생긴 고마이누라 불리는 석상이 양쪽에 한 마리씩 앉아 본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고마이누는 악귀를 막는 수호자를 의미하고, 이 석상이 고마이누라 불리는 것을 보면, 고마라는 뜻이 고려 혹은 조선을 뜻하고 있어 한반도를 거쳐 들어갔으리라 추정하기도 한다. 아마도 한국의 생활문화가 일본에 들어와서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 아닐까 짐작해본다. 수컷이라는 오른쪽 개는 입을 열고 있고, 암컷이라는 왼쪽 개는 입을 다물고 있어서 독특한 모습이다. 신사 본전건물은 땅에서 50센치 정도는 기둥위로 올려져 건축됐는데, 일본 건물의 대부분이 지진, 태풍 등을 대비하고 목재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다고 한다. 왼편으로 500여년 수령이 된다는 큰 소나무 뿌리가 땅 위로 뿌리를 드러내면서 신사를 칭칭 둘러 감아가는 형태가 신기하다.
와타즈미신사를 빠져나오면서야 나는 두 손을 비벼 씻고 입을 씻었다. 구경하기 바빠 씻지 않고 들어갔던 손과 입을 왠지 씻고 와야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신사 쪽에서 걸어 나오면서 바다와 가장 인접한 도리이에 눈길이 머물렀다. 마치 우리나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나오는 호수 위의 절로 들어가는 일주문처럼 신령스런 기운을 느낀다. 일본 건국신화처럼 용궁에서 신사 쪽으로 다섯 개의 도리이가 차근차근 이어져서 신의 세상과 연결된 도리이를 확인하자 사위가 어둑해졌다.
대마도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도 대마도가 한국처럼 낯설지 않은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몇 곳을 돌아본 지금, 아니라는 생각이 나의 모든 오감을 지배했다. 대마도의 하늘과 땅, 산과 들이 모두 낯선 이국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또 다른 이상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곳이 아주 옛날에는 한국 땅이었는데 관리를 못해서 일본 땅이 되었다고도 했다. 이런 아쉬운 일이 또 있을까. 또한가지는 이곳이 일본보다는 한국색깔이 곳곳에 더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 역시 더 가깝다는 이유로 친숙한 느낌일 뿐이었다.
3, 대마도에서의 둘째 날
전날 저녁 대마도의 중심도시 이즈하라 시내로 옮겨와 1박을 했다. 온통 산지에다 전날 가랑비가 종일 내려서인지 무척 쾌적한 아침이다. 눈을 뜬 후 바로 숙소 베란다 커텐을 제치자 푸르른 창공아래 강진청자와 같은 비취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주변을 산책하며 숲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온 몸에 휘감고 왔다. 산림이 빽빽 한 숙박지에서 이즈하라라는 높은 빌딩하나 없어 보이는 작은 도시가 보인다. 제주도의 5분의 2쯤 된다는 대마도는 강진의 인구와 같은 4만 인구가 산다. 평지는 없고 첩첩 산으로 이어져 작은 농촌과 같다. 일본상차림은 맛을 떠나 참 아기자기한 면이 있다. 우리 입맛을 일본에서 찾으려 하는 것처럼 무모한 짓은 없을 것이다. 아침상에 차려진 음식에서 작은 삶은 계란 하나를 담은 종지그릇이 무척 인상적이다.
오늘은 도보관광이 많은 일정이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타려는 순간부터 다시 가랑비가 내렸다. 먼저 카미자카 전망대로 향했다. 깊숙한 산길로 향하는 도로의 폭이 좁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대마도의 모든 도로가 이렇게 좁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어제 이미 알았다. 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일본정책인 것이다. 일본 본토 또한 한국처럼 넓은 도로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가 산길에서 자위대 차량을 만났을 때 어떻게 서로 비켜갈까 조마조마했는데, 서로 양보하며 잘 비켜나갔다. 일본의 축소지향 문화를 또 한번 느꼈다.
전망대 주차장에도 두 대의 자위대 차량이 주둔해 있어서 주변에 자위대 기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남편 소다케유키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시인이기도 했다는 소다케유키의 시가 적혀 있다.
<섬도 야위었지만 친구도 야위었다. 물고기를 조각하면서 가만히 바다 조류를 본다. 그래도 나에게는 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웃겠지만, 심야에 세계지도를 펴고, 콤파스를 축으로 대마도를 크게 돌린다.>
이 시를 통해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가 국적은 달라도 마음으로나마 서로 위안을 삼고 지냈을까 하는 역사의 안타까운 줄기를 타고 올라가본다.
이곳도 날씨가 좋으면 부산까지 보이는 전망대라지만 흐린 날씨 탓에 잔뜩 이슬 먹은 나뭇가지만 눈에 들어온다.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숲속을 한 바퀴 돌아 걸었다. 지나간 태풍의 흔적이 마치 나뭇가지를 전정해 놓은 것처럼 산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메이지시대에 건립된 일본군의 통신시설과 포대, 참호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원으로서 군사적 요새였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은 전쟁 장본인이면서도 모든 전쟁의 흉물조차도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화 했다고 들었다. 오솔길을 돌다 한자로 평화수호 라고 새긴 비석을 보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평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생각했다.
전망대를 내려와 대마도의 중심지 이즈하라시에서 하차했다. 이곳 대마역사문화자료관에는 조선에서 가져 온 종과 조선통신사행렬도, 조선왕의 교지 등 대마도의 인문·자연자원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었다. 민속자료관 입구에는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지은 고려문이 있으며, 1992년에 건립한 조선통신사비가 있다. 대마역사문화자료관에 있는 팜플렛을 보니 <중요문화재 지정 기념특별전>을 ‘쓰시마번과 조선통신사라’는 제목으로 10월 26일부터 12월 15일까지 3층 기회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되어 있다. 이때 12만점의 소케문서가 공개되며, 역사의 증인 ‘소케문서’에서 보이는 쓰시마번 종가와 한일교류 라고 쓰여 있는 점에서 이곳에서도 조선통신사 발자취에 대한 역사를 소중히 다루고 있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덕혜옹주봉축비로 향했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딸이라 유독 귀염을 받았으나, 정식 비가 아니라 양귀인에게서 낳았다고 하여 공주가 아니라 옹주다. 덕혜옹주는 14세 때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으로 강제로 가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불운의 시대를 살았던 덕혜옹주에 대해서 설명하던 가이드 권상이 눈물을 찔끔거렸다. 나 또한 울컥 슬픔이 밀려와 눈시울이 붉어졌기에 약소국가로서 겪어야 했던 덕혜옹주의 슬픈 역사는 우리 한국인 모두의 아픔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느꼈다. 덕혜옹주는 19세인 1931년 대마도주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하여 대마도에 와서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이를 기념하여 대마도 사람들이 높이 2.3m, 폭 1m되는 덕혜옹주 소 다케유키 결혼봉축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두 사람이 1951년 이혼한 뒤 비석은 깨졌으며, 기념비는 대마도 내성인 가네이시조 밖에 버려졌다. 21세기 들어 부산과 대마도를 오가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한국과 일본의 뜻있는 지식인이 2001년 가네이시조 스미즈공원에 다시 덕혜옹주봉축비를 세웠다.
이즈하라시를 도보로 걸으면서 간간이 한국어가 쓰여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어느 술집 문에는 <한국인은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는데, 어떤 분은 최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로 한국인들과 싸움이 벌어지는 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내 사이를 도보하면서 우리나라 돌담길과는 다른 사각의 돌들로 만들어진 돌담과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담, 또는 나무를 잘 전정하여 담으로 만든 개인집들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나카라이토스이 문학관은 현재 식당으로도 쓰이면서 일반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나카라이토스이는 소 가문의 일본 소설가로 일본에 춘향전을 소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일본에서 신사관광을 빼놓을 수 없 듯 이즈하라에서도 중요한 신사가 있었다. 대마도에만도 300여개의 신사가 있다고 한다. 그중 이즈하라에 있는 하찌만궁신사를 찾았다. 입구에는 이 신사를 지을 때 돈을 낸 사람의 이름과 액수가 적혀 있는데, 돈 차이에 따라 비석의 크기가 다르게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신사는 신을 모시는 곳답게 스산하고 고즈넉하며 신비스런 분위기가 감돈다. 역시 삽살개 모습의 고마누이가 양쪽에 있고 하얀 소원종이와 짚이 매달린 도리이가 있듯 이곳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포탄들이 유물로 남아 있고, 태평양전쟁 전몰자 추모비도 세워져 있는 곳으로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침략 전쟁을 기념하는 유적지다. 거대한 도리이가 우뚝 서있는 신사로서 이즈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신사기도 하다.
또한, 큰 활을 든 여자의 아주 작은 동상이 인상 깊은데 일본 제 14대 천황의 황후이자 임신한 몸으로 삼한을 정벌한 신화속의 인물에 속하는 신공황후신사라고 한다. 임신한 몸으로 우리나라를 정벌했다는 황후의 신사 앞에서 단지 하나의 신사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지, 아니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느껴야 하는지 혼란의 순간을 맛본다. 또하나의 신사는 마리아 신사라고 불리는데, 대마도주의 아내였던 마리아라는 천주교신자였던 여인을 모신 신사다. 그녀의 아버지가 도쿠가와이에야스와의 권력싸움에서 참수되자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이에야스의 가신이 되고 마리아는 천주교에 귀의하였는데, 그녀가 사후에 신으로 부활하였다는 신사다. 일본은 미신을 믿는 나라고 어떤 위대한 존재나 사물들이 신적인 존재로 여겨지면 신으로 모시는 나라다. 이러한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고유문화가 많이 상실되었기에 이런 독특한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들른 대마도의 관광지는 의병장 최익현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다. 이즈하라 시내 주점이 늘어선 뒤편쪽 골목길을 지났다. 계단을 올라 수선사에 들어서자 작은 법당과 마당이 있고 앞쪽에는 아기들처럼 목에 흰색 턱받이를 한 작은 불상들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이 기이하다. 절 주변으로 죽은 자들의 유골을 모신 묘비가 세워져 있어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최익현 선생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사내아이라는 뜻으로 기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만큼 총명했으며 이항로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대학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천하의 고집불통 대쪽선비였던 최익현 선생은 1868년 당시 서슬 퍼렇던 대원군에게 경복궁 복원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서원 철폐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집권층의 부패를 낱낱이 지적하기도 했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때는 도끼를 지니고 대궐문 앞에 엎드려 그 부당함을 외쳤는데, 바로 그 일이 유명한 ‘도끼상소’다. 하지만 최익현 선생은 그 일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이후 유배에서 풀려난 후 20여 년 동안 고향 포천에 머물며 단발령 폐지 요구, 1905년 을사오적 처단 등을 줄기차게 상소 올렸다. 1906년 최익현 선생은 일흔셋의 몸으로 을사늑약을 반대하며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병투쟁에 나섰으며, 결국 일본헌병대에 잡혀가 즉결심판으로 대마도 유배를 떠났다. 그러나 최익현 선생은 대마도에서 모든 물과 음식을 거절하고 장렬하게 눈을 감았다. 이곳 수선사에는 순국한 선생의 시신이 부산으로 이송되기 전 나흘간 머물렀던 곳으로, 1986년 그 넋을 기리기 위해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인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가 세워져 있다.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선생의 꿋꿋한 기개가 서려 있는 순국비다.
그의 시신이 부산에 도착하자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슬퍼했다. 일제는 최익현 선생이 가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불안하여 시신을 충남 논산에 가매장하도록 했고 2년이 지난 후에야 예산에 안장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는 의병장 최익현 선생의 순국이야기를 가슴에 안고 오를 때와 달리 수선사를 천천히 무거운 걸음으로 내려왔다. 그러고 보면 대마도 곳곳에 한국인의 역사가 얽혀 있다. 일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면서, 우리조상들의 피 끓는 절규의 소리를 느낀다.
점심을 먹은 후 이즈하라 시내 중심부를 끼고 흐르는 하천 난간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묘사한 그림이 여러 개 걸려 있음을 본다. 하천은 바다와 인접해서인지 바다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넘다들며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마도 1박2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비용을 협조해주신 김창한 전 재경강진읍향우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사실, 여러 바쁜 일정으로 가지 않으려 했으나,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며 적극 후원해 주셨기에 대마도 1박2일에 합류했다. 대마도는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는 곳으로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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