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길 넘어 찾은 자유, 탈북자 증언3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의 노예 같은 생활
수미씨는 외화벌이를 하던 중 한 남자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게 그 남자와 외화벌이를 자주 나가게 되면서였다. 부대 안에서 식량을 책임지고 있던 그 남자는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와일드하면서도 거짓이 없고 맡은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늘 엿보였다. 키도 컸고 인물도 좋아서인지 호감이 갔던 남자였다.
외화벌이를 나갈 때만 만날 수 있었던 남자는 수미씨보다 세 살 연상이었는데, 서로 사소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연인사이로 발전되면서 힘든 군 생활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서로가 군인이라는 신분이었기에 부대에서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되면 큰 망신을 당하고 쫓겨나는 상황이었다. 오징어 외화벌이가 끝나면 사금 외화벌이가 이어졌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점점 둘이 사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행히 부대 안에서는 둘 사이를 쉬쉬하면서 알아주는 사이가 되어갔다. 수미씨는 그 남자와 결혼하리라 마음먹고 아버지가 면회를 왔을 때 조심스럽게 남자에 대해서 말을 건넸으나 아버지는 펄쩍 뛰면서 반대했다.
군대 생활에서도 수미씨는 아버지의 혜택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다. 초급 당서기였던 아버지는 일주일씩 걸리는 수미씨의 군대에 면회를 왔다가 4~5일 정도 쉬었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새끼염소를 가져와 윗사람들에게 베풀곤 했다. 그래서 수미씨는 초창기 군 시절엔 보초근무도 서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딸을 시집보낼 사돈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수미씨가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면 사돈을 맺기로 한 집안에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딸이 뜬금없이 사귀는 남자가 생겼고 결혼을 하겠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 그 사람은 머리가 똑똑하고 괜찮은 사람이이에요.”
수미씨는 아버지에게 사귀는 군인 남자에 대해서 극구 설명했으나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며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돌아가셨다. 당시 북한에선 부모가 반대하면 결혼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미씨는 어떡해서든지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야 했지만 아버지는 한마디뿐이었다.
“절대로 안 된다. 제대까지 잘 있거라.”
이유는 남자가 고아라는 이유였다. 사귀는 남자는 똑똑함을 인정받아 부대에서 추천되어 대학에 가게 되었고 9월 입학식이 있기에 제대를 반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남자의 제대를 앞두고 서로 결혼 약속을 한 상황에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거였다.
아버지의 결혼 반대 속에서 아버지를 꺾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덕을 많이 보고 살아온 수미씨로서는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남자가 제대를 3개월 앞두게 되었을 때 수미씨는 몸이 마르고 음식을 못 먹게 되어서 무슨 병이 난 사람같이 초췌해갔다. 사귀던 남자도 수미씨가 몸이 아픈 모습에 많이 걱정을 했고, 부대에서조차 수미씨가 병이 났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어 수미씨는 휴가를 내어 집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 사이에 남자는 제대날짜가 되어 제대를 하였다.
오징어 외화벌이를 나갔다가 평소 잘 먹었던 오징어를 먹지 못하고 몸의 변화를 느꼈던 수미씨는 그곳 숙박시설 이모의 이름으로 병원에 찾아가 진찰결과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미씨의 고민과 달리 한 친구는 상사에게 몸을 당하고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고민들을 주고받게 되자 서로 어디론가 도피하는 일 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상대방의 고민을 듣게 되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고민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사금외화벌이에서 중국상인에게 큰 사기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외화벌이 중 상인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은 허다한 일이었지만, 주변 상황이 극도로 안 좋은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규모가 컸다. 사금외화벌이는 탄광에서 나오는 사금들을 몰래 사들여 중국상인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조선족이었던 중국상인이 계약금을 걸은 후 3일 후에 와서 잔금을 치르겠다고 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계약금을 많이 걸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간 것이었는데, 부대에 넣을 돈 액수는 터무니없게 모자랐다.
외화벌이를 나간 수는 14명이었다. 남자군인도 있고 여자군인도 섞여 있는 외화벌이단은 중국상인에게 함께 사기를 당하고 부대 복귀 후 치러야 할 일이 걱정거리였다. 이 일을 부대에 이실직고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토론을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중국에서 한 달 월급이 우리 북한에선 평생 살고도 남는 돈’ 이라는 상인들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건 수미씨 뿐이 아니었다. 모두가 고민 고민한 끝에 어떤 한 사람의 제안이 통하게 됐다.
“정말 가볼까?”
“우리 일주일만 돌아보자. 군인이니까 외출증도 끊을 수 있잖아.”
이미 외화벌이 14명의 정신 상태는 북한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수미씨 또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은 극한 마음뿐이었다. 자신의 상태가 부대에서 들켰다하면 신분상 모든 제약이 따르고 집안 망신을 당하는 건 물론 쫓겨날 게 뻔했다. 사귀던 남자에게 알리고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이후에도 아버지의 반대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장 애 지우고 그보다 나은 곳으로 얼마든지 딸을 시집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었다.
‘맞아, 일주일만 돈 벌면 최악의 상황은 없던 것으로 할 수 있겠지.’
수미씨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다른 동료들 또한 나름대로 개인적인 사생활과 현실적으로 닥친 이런저런 고민 속에서 이곳을 도피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졌다. 이런 생각을 하기 까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진 것은 사실 아니었다. 군인들은 외화벌이를 하는 동안 수없이 접했던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통해 사상의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고 언제든지 환상의 나라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모두의 가슴에 팽배해 있었다. 외화벌이를 나가면 상인들에게 대우를 받다가 다시 돌아온 군대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군에 들어와 보면 당시 부대의 식량난은 최악에 직면해 있었다. 많은 병사들이 주말마다 먹을 것을 구하러 사방으로 흩어져도 부대에서는 방관할 수밖에 없었으며, 청결하지 못한 단체 생활에서 오는 전염병과 고질병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이 방치됐고, 들쥐로 인해서 발생하는 쯔쯔가무시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병사가 많았다. 40%의 병사가 그렇게 죽어 사라졌다. 이러한 부대 상황은 병사가 없어진다고 해도 사망처리를 하거나 행방불명 처리만 하면 그저 끝나는 일이었다. 나중 수미씨의 경우도 직속상관이 행방불명 처리를 해버렸기 때문에 문제화되지 않았다.
“우리 오늘 밤 모두 도망가자.”
청진에서 바라다 보이는 나진 선봉시는 몇 발만 건너면 눈앞에 드러날 것만 같았다. 그날 밤으로 11명이 북한을 도망쳤다. 물은 얕고 경비조차 심하지 않은 깊은 밤이었다.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중국경비대가 파놓은 구멍도 보였다. 다행히 그 구멍조차도 물이 많이 차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곳이었다. 국경을 넘어서고 중국 땅을 밟게 되자 11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산 속에 외딴 집이 한 채 보였는데, 단체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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