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변호인은 안녕하십니까?
김윤석(단국대 교수/용인내일포럼 대표)
변호인이란 영화를 봤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시절에 대한 얘기를 그린 작품이라는 평이 붙어서 내심 많이 기대했던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젊은 날 우리들이 몸소 겪었던 일들이 영화로 제작되고, 또한 역사책에서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지난날의 몰 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에 대해 회한이 없을 수 없음이다. 그래도 나름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하는 지금의 시점으로 그때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많은 오류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지만, 왜 그토록 치열하게 한 민족끼리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며 살았던지에 대한 자기반성은 한번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군부독재가 무서워서? 고문이 두려워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생명을 가진 인간의 존엄보다 더 큰 가치는 없어 보이기에 좀 더 차분한 되돌아봄이 필요하다면 엎어지고 깨지고 일그러졌던 질곡(桎梏)의 우리역사에 대한 모독일까?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시간적으로는 1980년대 초로 부산에서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 하든 탁월하지만 속물적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는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가 성공하기까지 지난 세월은 너무도 가혹한 세상이었기에, 바위 같이 단단한 세상의 질서를 바꿔보겠다고 데모질(?)하는 학생들이 치기어려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국가보안법 관련 시국사건을 의뢰받게 되고, 처음엔 이를 정중히 거절하나 폭력과 몰상식을 용납할 수 없게 된 그는 적극적으로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서게 된다. 그 이후에 송변호사는 우리나라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눈앞에 두게 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간 신세를 져왔던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송변호사는 나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구타와 고문으로 얼룩진 믿지 못할 처참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호사는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부림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악랄한 방해세력 때문에 결국은 무죄를 받아내지는 못하는데... -중략-
영화에서 주인공 송변호사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속물 변호사가 시국 변호사로 바뀌는 것에도 기본적인 상식에 기반한 것이었지 거창한 이념이나 명쾌한 논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이런 게 어딨어요?” 진한 부산 사투리의 이 두 마디면 충분했다. 법정에서 거대 권력의 횡포를 질타하는 용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국가가 생기는 것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그런 상식과 원칙에서 나온다. 임시완등 억울하게 붙잡힌 대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을 ‘빨갱이 서적’이라고 밀어붙이는 검사 앞에서는 “서울대학교에서 추천하고 있는 서적들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교육기관이 불온집단입니까?, 그럼 서울대 나온 판사님 검사님도 불온집단 출신이네요.” 오달수가 “네 편한 인생 네 발로 걷어 찬거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히며, “그러니까, 내 아들 딸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게 하려고 이러는 겁니다.” 또한 “자고로 묵은 빚은 얼굴하고 발로 갚는 기다. 그기 뭐라고 여태 얹힜노”라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대사는 사람 사는 도리와 따뜻한 정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 대사는 아무래도 송변호사가 임시완에게 ‘세상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고 했던 말에 대해 내뱉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본 관람객 수가 2014년 1월 4일 현재 74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2013년 12월 19일 개봉한 이래로 17일 동안 하루 평균 약 44만명이 관람했다는 것으로, 국내에서 개봉된 역대 영화 가운데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관람객을 유치한 셈이다. 참고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들 중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걸리는 시일을 비교해보면 훨씬 더 명확하게 이 영화의 흥행성적을 알 수 있다. ‘7번방의 선물’이 10일, ‘광해’가 11일 걸린데 반해 ‘변호인’은 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영화 개봉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궁금증이 있다. 대중들은 왜 이토록 변호인이라는 영화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것일까? 왜 변호인이 한국 영화의 여러 기록들을 갱신하면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한 작품으로 만들어 지는 것일까? 그것이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30년도 더 된 낡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도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관객들은 영화 곳곳에서 국정원과 사이버 사령부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나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등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 경험을 다룬 게 아니고 생전의 그가 불의와 비민주적인 무원칙에 분노했던 순간들을 다시 보여주며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 영화의 제목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으로서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 변호사는 하나의 직업이지만 변호인은 사람이라는데 있다. 비록 법률적으로 공적인 변호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어줄 수 있다. 그 변론은 국가정보원 같은 국가기관의 불법대선 개입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의 한 자루 촛불일 수도 있고, 젊은 대학생 청년과 여고생들이 일그러진 요즘의 우리 민주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했던 한 장의 대자보일 수도 있다. 이런 작은 변론들이 모여서 거대한 독재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했었던 숭고한 경험을 우리는 일찍이 가지고 있음이다.
이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노동자, 농민, 어민, 자영업자 등의 서민이다. 이 서민들을 비롯해 전문직, 학자 등의 지식인들, 그리고 나이어린 학생들까지도 이 영화에 열광하고, 보는 이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변호인이란 영화는 분명 우리 영화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돌풍이자 신드롬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이토록 흥행하는 이유에 대해 언론을 포함한 각 매체들 마다 나름대로 그 원인을 파악하고 진단하느라 바쁘다. 송강호를 포함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난다 라거나, 전직 대통령의 실화에 바탕을 둔 내용이어서 라든가, 학생들이 방학하는 시기의 12월 19일이라는 타이밍의 적절성을 거론하는 개봉시기 라거나, 사회적으로는 2012년 대선 1년 전과 절묘하게 개봉일이 맞물리면서, 영화 속의 1980년대 사회상을 현재의 불통과 먹통에 기초한 정치사회적 상황과 연결 지어 보기도 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현실이 영화에 대한 공감과 호소력을 짙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거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이 영화의 줄거리와 오버랩 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로 인한 인간 노무현 효과라든가, 서민출신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서민을 잘 이해하고 서민 편에 섰던 고 노 전 대통령 같은 지도자를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기 때문이라는 등등, 변호인 흥행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유들이 혼재한다.
하지만 필자가 느끼는 변호인 흥행의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에 관람했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대동소이하게 공감하는 바였지만 “변호인”이란 영화에서 공공연히 우리들에게 보여준 것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해준 일은 고통을 떠넘긴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준 국민에 대한 국가의 만행을 보면서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국가이며, 국가는 국민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의 연장선에서 결국 필자는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과연 여러분의 변호인은 안녕하신지와 함께 “변호인” 영화의 주된 흥행 이유를 “노무현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과 박근혜 때문 이었다”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결론이 될까?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