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길목에서 영화속 돌담길을 걸었던 추억
이홍규(농어촌관광신문 편집위원, 수필가)
유난히 폭염이 설치던 올여름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고, 더위에 밤잠까지 설치게 했던 지루한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의 선선한 갯바람이 불어오는 완도항만 터미널에 앉아 청산도 가는 배를 기다린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설레임과 낮설음이 마음 한켠에 다가오고,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고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 독서삼매경에 들어갔다가 어느덧 뱃시간이 다되어 청산도행 철부선에 올랐다. 푸른 물살을 가르며 배는 힘겹게 달려가고 배가 지나온 물살의 흔적을 하얀 갈매기들이 뒤따라 온다.
뒤를 돌아보니 완도항의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창공에는 흰 양떼구름이 바다위를 지나가고 있다. 바다위에 떠있는 바위섬들이 파도를 벗삼아 심심함을 달래고 이것을 질투하는 바닷새들이 주변을 맴돌다 날아가곤 하는 광경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상생의 모습이다. 바다위에서 느끼는 가을바람은 육지에서와 다르고, 오랫동안 바람에 노출되어 있으니 제법 한기가 느껴져 승객실로 들어왔다. 승객실에는 오늘 완도장날 이라서 장에갔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객지에 나가 생활하는 자식들 이야기와 섬생활의 고달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정겨워 보인다.
철부선은 어느덧 청산도에 도착하여 사람들은 각자의 짐을 챙겨 배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짐을 무겁게 들고 오셔서 자청하여 짐을 들어 도청리 항구에 내렸다. “워매 젊은 양반이 짐을 들어준께 겁나게 소랍게 내려 부렀소, 참말로 감사하요” 할머니는 짐을 들어것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하면서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목적지가 어디세요? 짐이 너무 무거뭐서 제가 들어다 드릴께요”라고 여쭤보니 “ 아따 너무나 감사하요, 영감이 경운기로 실로 온다고 해서 여기서 기다리면 된단께, 근디 젊은 양반은 어디까지 가시오? ” 할머니의 말씀이 하도 구수하고 정감이 갔다.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돌담길이 있는곳까지 가려 합니다." 할머니는 마침 그동네에 살고 계시므로 같이 경운기 타고 가자고 말씀했다. 마침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고 오셔서 할머니께 “장에 갔다 오느라고 겁나게 고생 했구만 언능 가잔께” 제촉하시면서 짐을 싣고 할머니와 함께 경운기에 올라 힘찬 엔진소리를 울리면서 10분정도 가니 할머니 동네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 젊은이 우리집 가서 밥먹고, 하룻밤 머물다 가소, 여기까지 와서 묵고자고할 곳이 마땅치 않을것 같은디 언능 가세“ 손을잡고 집으로 안내했다. 집은 참 아담하게 돌담에 둘려싸여 돌담위엔 고기그물이 걸쳐져 있고, 마당한켠엔 미역과 다시마를 가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마루에 앉아 땀을식히고 할머니께서 점심상을 내오셨는데, 해산물이 가득하다. 반지락국,미역무침,전어구이,삶은낙지 등 이상위에 올라와 허기진 배를 채우며,할아버지의 정이 담긴 막걸리를 마시며,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들었다.
이곳은 당리 라는 마을로 할아버지 집에서 걸어서 3분거리에 서편제 촬영지가 있다고 한다. 배도 부르고 해서 소화도 시킬겸 영화속의 길을 걸어간다. 봄에는 돌담 주변에 유채꽃이 만발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 있다고 한다. 가을 이라서 돌담옆엔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가을의 운치를 더해 주는데, 돌담길 너머 밭에는 하얀 메밀꽃이 가을바람에 물결친다. 서편제 촬영장 이라는 안내판과 영화속 주인공들이 돌담길을 걸어가는 사진이 함께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내친김에 진도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돌담길을 걸어가며 우리가락의 흥에 젖어들고, 마치 영화속으로 들어온 착각마져 들게한다. 한참을 걸어가는 돌담길 끝에 하얀집에 나오는데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여 꼭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여 들어가니, 아늑함이 느껴지는 찻집이다. 찻집 창가의 베란다에 서서 갓 볶아온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를 마시니, 커피의 향이 온몸에 전해지며 따뜻함이 가득해진다. 멀리 하얀파도가 물결치고, 소나무와 바위들이 바닷바람이 들려주는 장단에 춤을추고 물새들이 함께노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하얀집을 나와 점심을 대접해주신 할아버지,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등대가 아름다운 들머리로 발길을 옮겨갔다. 들머리 등대에 도착하니 방파제 너머로 펼쳐진 만경창파의 드넒은 바다가 펼쳐져 보인다. 이곳은 안개가 짙게 내리면 배들이 운행하는데 사고가 많이 나서 들머리 등대가 없으면 어업을 못한다고 한다. 들머리를 지나 택시를 타고 청산도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를 하는데, 가는곳 마다 펼쳐진 경치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고, 특히 읍리앞 갯돌밭엔 파도와 갯돌이 부딪히며 내는 자갈자갈 소리는 너무나 말고경쾌하다. 청산도 남쪽 끝에 위치한 절벽의 풍경이 인상적인데, 하얀 파도가 물보라를 치며 절벽의 끝부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광경은 한폭의 그림과 같다.
청산도 일주를 마치고 도청리 항구에 다다르니 어느덧 해는 낙조를 그리며 서쪽 바다의 끝으로 넘어가고 있다. 완도읍을 향해서 출발하는 철부선에 올라 노을지는 청산도의 모습을 아쉬워하며 시야에서 멀어지는 청산도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본다. 저 멀리서 들머리 등대가 빛을 비추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그냥 손만흔들뿐 들머리 등대도 서서히 멀어져간다. 어둠이내린 완도의 바닷길은 밤공기가 차갑고, 바람 또한 몸을 움츠리게 한다. 어두운 바닷길을 달려가는것이 무료해서 그런지 아주 오랜된 정태춘의 떠나가는배 노래가 어둔 밤하늘에 울려나온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듯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배여...” 노래와 분위기가 절요하게 어루러져 음악에 취한듯 완도항에 도착했다.
완도항엔 가로등이 환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그네를 맞이한다. 철부선은 엔진소리를 머추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여개선 터미널을 나와 바닷가 벤치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아온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피곤함을 달랜다. 여행은 떠나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영화속의 돌담길을 거닐며 이장면에서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려는 멧세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우리의 가락과 음악은 우리만이 느끼는 돌담길에 대한 애뜻한 정서를 통해서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다소 애매한 나름의 해석을 붙여봤다.
완도항에서 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을 마치고 불빛이 화려한 완도읍내를 지나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질주하며, 처음 떠나왔던 길을 찾아 시간의 흐름을 따라 되돌아 왔다. 혼자서 떠났던 여행의 테마는 ‘가을을 찾아서’ 였는데, 가을바다엔 여름바다에서 느끼지 못한 차분함과 자신을 되돌아 보는 원숙함이 다가와 사색의 시간을 주는곳이다.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고뇌에 찬 생각이 다가오면 가을바다를 찾아서 떠난ㄴ것도 참다운 자신을 발견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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