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하훈-
그러나 임금 선조는 몽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요동으로 망명을 하고자 했다. 서울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임금 선조는 임진강을 건너 동파관에서 잠을 잔 이튿날 아침, 신하들을 불러 제각기 의견을 말하도록 하였다. 이 때 도승지 이항복은 임금 선조의 의중을 먼저 알아차리고 요동 망명을 주장했다. 하지만 유성룡은,
“지금 관동과 관북 제도(諸道)가 그대로 있고, 호남에서는 충의로운 인사들이 곧 벌떼처럼 일어날 터인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오.”
하고 반대했다. 유성룡은 다시
“어떻게 경솔히 나라를 버리자고 의논을 내놓는가. 자네가 비록 길가에서 임금을 따라 죽더라도 궁녀나 내시의 충성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이 한 번 퍼지면 인심이 와해될 것이니 누가 나서서 수습하리오.”
하고 꾸짖자 이항복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과를 했다. 끝까지 요동으로 망명을 가겠다는 임금 선조에게 유성룡은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서인 윤두수는 말을 아꼈는데 결국 유성룡은 파직되고 윤두수가 우의정에 임명되어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근왕병을 모집하기 위해 강원도와 함경도로 간 임해군과 순화군이 수행한 대신들과 함께 왜적 가토 진영에 넘겨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평양까지 함락된 것도 충격이요, 일국의 왕자들이 왜적의 손에 넘어간 것도 충격이었다. 한 나라가 절단되는 사태 앞에서 사신은 아예 중국과 합병할 것을 말하기도 했다.
조선이 하루아침에 쑥밭이 되자 기고만장한 사람은 도요토미였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을 거의 삼켜버렸으니 이번엔 중국을 치기 위해 벼렸다. 조선왕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이렇다할 희생 없이 조선의 대부분을 점령한 것만도 대단한 성과였다. 그래서 중국 정벌은 잠시 미루고 조선 8도를 나누어 관리토록 지시했다.
조선이 풍전등화가 되었던 바로 이때, 이순신의 함대가 처음으로 일본수군을 쳐부수는 승리가 있었으니 조선 수군의 위력을 조선 수군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것은 이순신이 있었고, 이순신만이 전쟁을 대비하여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을 때, 전라좌수영은 벌집 쑤셔놓은 듯 수군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힘들고 어려운 함선 건조와 함께 무기를 만들고 식량 등 전쟁 물자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혹하리만큼 엄한 군기로 수군들을 훈련시키자 장교나 병사들은 탈영이라도 할 것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순신은 오뉴월 서릿발처럼 군기를 내세우며 원칙주의로 군영을 꾸려나갔다. 특히 함선 건조를 독려했는데, 이순신이 부임할 당시 장부에는 30척이 있었으나 실재로 전투할 수 있는 배는 겨우 다섯 척에 불과했다.
“장군. 장군의 엄한 군기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올시다.”
장교가 어렵게 말문을 꺼내면,
“지금 그것이 말이라고 하는가? 당장 그대부터 군법으로 다스려야 입을 다물겠는가?”
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그리고 이순신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거북선 만들기에 온 힘을 다 했다. 부하 나대용에게 지시해 거북선의 모형을 만들도록 했는데, 애써 처음 만든 거북선이 수군들과 함께 가라앉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실패에 굴하지 않고 제작에 힘썼다.
본디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못을 사용해 만들었으므로 선체가 단단하고 튼실했다. 나무못이 물을 머금으면 부풀어지는 법이어서 선체가 더욱 강해졌다. 대신 왜적의 배는 못을 박아서 만들었으므로 양측간 배가 충돌했을 때 쉽게 부서졌다. 더구나 판옥선은 노군과 사수가 2층인 갑판에 자리 잡고 3층에서는 포수가 포를 발사하게끔 되어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며 포를 발사할 수 있어 왜적의 배를 쉽게 궤멸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약점이 더 컸다. 전투 때마다 부상자나 사망자가 비록 적은 수이긴 하나 반드시 발생되곤 했다. 판옥선의 3층 부분이 왜적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조총의 총알받이가 되기에 알맞았다. 그런데도 판옥선은 배의 단단함에 의해 조선 수군의 주력 함대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돌격선으로는 부적합했다. 그것은 적진 속으로 파고 들 경우 여전히 3층의 포수가 조총의 사정거리에 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도 살아남아 왜적을 혼란시킬 수 있는 거북선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거북선은 돌격선으로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칼을 잘 쓰는 왜적은 백병전을 구사했으나 조선수군은 백병전에 약했다. 더구나 일본 수군의 배는 못을 사용한 약점 대신 속도가 빨라 조선 수군의 배에 재빨리 밀착해 왔다. 이순신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거북선의 등에 칼과 송곳을 꽂아 왜적이 뛰어들지 못하도록 했다.
판옥선과 같은 크기의 배에 위를 판자로 덮은 다음 십자형 통로를 제외하곤 칼과 송곳을 꽂은 거북선은, 앞부분에 용머리를 만들어 총구멍을 냈다. 그리고 좌우에 각각 6문의 총구멍을 내 적진에 뛰어들 경우 왜적은 접근할 수도 조총을 쏠 수도 없어 망연자실 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러한 거북선까지 소유한 이순신은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이순신이 1차 출동으로 왜적을 놀라게 했는데도 거제도 쪽으로 침범을 거듭했다. 그리고 연해안의 여러 곳을 들려 노략질을 일삼고 불을 질렀으며 먹을 것을 약탈했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
“전라우수영과 연합 함대를 구성하여 왜적을 섬멸코자 하니 귀영의 함대가 이곳으로 조속히 와주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원균으로부터 왜적의 정황을 알리는 첩보가 날아왔다. 왜적의 함대 10여 척이 산천, 곤양 등지로 들어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의 휘하 함대만을 동원, 즉시 출동했다. 그 때가 1592년 5월 29일로 함선 23척이 노량 앞바다로 향했다. 원균을 만나 논의를 하고 있을 때 왜적의 배 한 척이 곤양에서 사천 쪽으로 항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왜적은 배를 내버리고 육지로 도망을 쳤다. 그 때 사천 선창에는 400여 명의 왜적이 있었는데, 12척의 함선을 정박해 놓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포를 쏘아 모든 배를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때마침 썰물이어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슬슬 물러나면서 도망가는 척 유인책을 썼으나 왜적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썰물은 어느 틈에 밀물로 변해 갔다. 판옥선 같은 큰 배도 쉽게 뭍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앞 세워 천·지·현·황 등의 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사천포구가 금세 불바다로 변하면서 왜적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쓰러져갔다. 첫 번째 승리에 이어 두 번째 완벽한 승리였다. 연전연승을 해온 왜적으로서는 이 싸움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왜적의 장수가 탄 누선은 서너 질이나 높은 망루에서 붉은 비단 옷과 채색 담요로 그 주위를 두르고 위용을 뽐냈으나 그 배마저 박살이 되고 말았다. 왜적을 혼비백산 만든 이순신은, 그러나 조총의 총알이 왼쪽 어깨를 뚫고 등에 박혔다. 전투 중에 맞아 붉은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군사들을 독려했던 것이었다. 칼로 총알을 파내자 깊이가 두어 치나 되었지만 이순신은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6월 2일에는 왜적의 배가 당포에 있다는 첩보를 듣고 거북선을 앞세워 쳐들어갔다. 붉은 비단으로 휘장을 두른 왜적의 장수는 조선 함대의 출연해 눈썹조차 끄떡하지 않다가 화살을 맞자 그만 종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목은 여지없이 두 동강이가 나서 장대 위에 걸려졌다.
“걸음아, 제발 나 좀 살려라!”
왜적은 도망치기에 바빴지만 등 뒤에서 쏘아대는 포와 화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적선 21척이 모조리 불살라졌고 조선 수군은 만세를 불렀다.
6월 4일, 왜적이 거제로 향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당포의 바깥바다에 있던 배들이 거제로 향한다는 제보였는데, 다시 다음 날 거제를 지나 고성 당항포로 옮겨갔다는 완벽한 정보가 들어왔다. 당장 출전을 결심한 이순신이 당항포에 도착하자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3척이 정박해 있었다. 각 함선에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란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왜적이 먼저 조총을 쏘기 시작하자 거북선이 선봉에 서서 돌격했다.
“더 이상 다가가지 말고 거짓으로 포위 진형을 풀라. 그리고 퇴군하여 적을 유인하라!”
이순신은 왜적의 배가 부숴지면 모조리 육지로 도망갈 것을 대비, 유인책을 쓰자 왜적의 대선인 층각선이 다른 배들과 함께 바다로 나왔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이순신은 적선을 품안에 안 듯 포위한 후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각선을 향해 포를 쏘도록 했다. 단숨에 층각선이 부서지면서 적장이 화살을 맞아 바다로 떨어졌다. 그 때 이순신은 뭍으로 도망간 왜적들이 반드시 도망갈 것을 대비해 배 한 척을 남겨두었다. 아니라 다를까 다음 날 당항포에서 산으로 도망간 왜적들이 바로 남겨놓은 배를 타고 몰래 바다로 빠져나갔다.
“장군. 예상했던 대로 왜적 배 한 척이 바다 어귀로 나와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아 100여 명의 적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장군의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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