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방산 윤정기 탄생 200년 기념 공동 학술심포지움

「춘각집」에 수록된 ‘소학주관문단’의 첫면. 다산의 문답식 교육을 잘 보여주는 새로운 사료다.
방산 윤정기선생 탄생200주년 기념 공동학술심포지움이 지난 7월 17일 성균대학교 600주년기념관 5층 국제홀에서 개최되었다. 4명의 관련분야 전공자들의 발표를 통해 조명한 이번 심포지움에서 다산연구소 이사장이자 실학박물관 석좌교수인 박석무 교수의 기조발표 ‘경기실학과 호남실학’과 한양대 정민 교수의 ‘새 자료를 통해 본 다산의 문답형 제자 강학’, 금오공대 박인호 교수의 ‘다산학단의 역사지리 인식의 특징과 그 위상’,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이철희 연구원의 ‘방산 윤정기의 시세계에서 홍엽전성(紅葉傳聲) 의미’, 예술의 전당 이동국 서예부장이 ‘방산 서예연원과 특질’ 등을 각각 발표하며 그 의의를 평가했다. 방산 선생은 다산 선생의 외손이라는 혈연적 인연에서 다른 제자와 구별되고, 역전익(易傳翼)』,『시경강의속집(詩經講義續集)』과 같은 저술을 남겨 학문적으로 다산 선생의 경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번 심포지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이현숙 기자)

◉다산학단과 방산 윤정기

▶경기실학과 호남실학(박석무)

경기실학이란 용어는 다소 생소하다. 그동안 학계에서 사용하던 용어는 대체로 근기실학이라는 말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 근기의 의미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지역을 말하고 있으니, 경기실학 또는 의미에서의 큰 차이는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실학은 조선후기에 유학사상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당시 국가와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보고자 했던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서 특색있는 유학의 새로운 체계로 나타난 학문의 한 분야를 지칭하는 학술용어로 자리 잡았다. 조선왕조 중기에 일어난 국가적 대변란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당시의 주류학문이던 성리학이라는 유학체계로서는 당시의 사회경제적 모순이나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선각적인 학자들이 연구해낸 색다른 학문분야이기도 했다.

위당 정인보는 “담원국학산고”(1955, 문교사)에서 조선 실학의 대표적 학자로 세분을 거론하였다. “일조는 반계 유형원, 이조는 성호 이익, 삼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조선실학사에서 반계, 성호, 다산이 차지하는 몫과 위상이 뚜렷 했기 때문에 당연한 주장으로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호와 다산은 본디부터 경기도 사람이었고, 반계는 서울 태생이지만 오랫동안 전라도 부안에서 살았고, 한 때는 경기도 여주에서도 살았으며, 죽은 뒤에는 경기도 용인에 묻혔으며, 후손들이 과천에서 거주했던 점으로 보면 경기도와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더구나 반계 학문의 대표적인 계승자는 성호와 다산이었음을 착목하면, 반계의 실학사상은 경기도에서 꽃피웠음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636년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에 반계 유형원은 15세의 어린 나이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와 홀어머니 아래서 생활하던 반계는 그 어려운 전란 속에서 가장 역할을 하면서 살았다. 연로한 조부모를 모시고 이곳저곳으로 피난살이를 했었고, 심지어는 강원도까지 피난을 갔던 경우도 있었다.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반계가 당했던 고난의 생활, 나라와 세상을 그대로 두고는 기필코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애국심, 세상을 걱정하던 지식인의 충정, 새로운 벼화를 모색해야겠다는 사명감, 이런데서 조선의 실학사상은 그 발원이 되었다.

▶새 자료를 통해 본 다산의 문답형 제자 강학(정민)

문답형 강학이 다시 재개된 것은 다산초당 정착 직후인 1808년의 일이었다. 이 시기 몰두하던 ‘주역사전’의 작업 진행에 다산은 또다시 문답형 강학을 적용해서 여러 제자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게 하고 자신이 답변을 보태서 전체 저술의 배치와 기술의 눈높이를 조정했다. ‘다산문답’으로 명명된 이 책에는 제자들의 질문이 갈래에 따라 재배치되었고, 질문이 있었으면 하는 부분에는 질문자 이름 없이 자신이 질문을 보충해 넣어서 전체 한권이 일관된 흐름으로 완성도를 높여 가도록 배열하였다. 이렇듯 다산의 문답형 강학 방식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제자들의 문제의식과 사고력을 높여 주체적 각성으로 이끄는 대단히 효율적인 학습법이었다. 다산은 이를 위해 직접 대면 토론과 편지를 통한 서면 토론, 한 사람에게 질문의 역할을 독점시키는 일대일 문답 방식과 여럿이 역할을 분담해 하나의 체계로 수렴하는 일대다 문답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했다. 반대로 ‘논어고금주’ 40권 같은 작업처럼 다산이 질문하면 제자들이 근거를 찾아 대답하고, 그 과정에서 의문이 절로 해소되어 한 단락의 정리를 마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공부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졌지 일방적이지 않았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문제 제기와 해결 능력을 갖추었다. 방법론은 습득만이 아니라 공부의 요령을 터득하고, 주체 역량을 강화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다산학단의 역사지리인식의 특징과 그 위상(박인호)

다산 정약용은 역사지리분야에서 다양한 사료의 수집과 해석을 통해 결과에 이르는 연구 자세와 엄밀한 고증적 연구 방법을 구사하였다. 정약용은 연구과정에서 고증을 강조함으로써 후학들에게는 하나의 역사지리연구의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후학들도 엄격한 고증적 연구방법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학적 자세는 후학들로 하여금 백과사전학, 지리학, 천문학, 지방학 등 다양한 방면으로의 연구를 이끌어 내었다. 그 결과 현대 학문 그 가운데 전통시대와 가장 연관성을 가진 연구 분야인 역사학 방면에서 그 초기의 연구에 다산과 그 제자들의 연구 성과가 수용되면서 다산과 후학의 연구 성과는 현대 한국 역사학의 학적 목표인 실증적 연사 연구와도 맞닿게 되었다. 윤정기의 ‘동환록’의 경우네는 그 내용에 주목하면서 1915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이미 신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그 외에도 후손가에서 1939년 문집을 간행하면서 같이 간행한 석인본이 있다. 석인본은 운조루 소장본을 1991년 원주문화사에서 영인하였다. ‘동환록’은 ‘대한강역고’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아방강역고’와 함께 일찍부터 주목되었던 다산학단의 역사지리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일제시기 역사지리를 연구하는 일본학자들의 연구성과를 보면 역사지리 비정에서 근사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비록 일본인들의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연구대상이 된 역사지리 비정에 있어서 정약용의 연구서를 인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실제 결론이나 이용된 사료의 내용면에서 보면 동일한 부분이 많다.

▶방산 윤정기의 시세계에서 紅葉傳聲(홍엽전성)의미(이철희)

방산에게 홍엽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불우한 그의 사람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지기의 갈구와 소통을 상징한다. 방산이 자기 시집의 제목을 홍엽전성으로 정하고 특히, 홍엽, 낙엽류의 가을경물을 즐겨 소재로 활용한 것은 홍엽의 이미지를 통해 자기의 시세계를 구축하고자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산의 의식은 19세기 동아시아 문인사회의 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중국에서는 청대시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왕사정이 가을의 조락을 망국의 한과 결합시켜, 몽상적이면서도 모호한 애수를 자아내는 시풍을 수립하였는데, 만주족 지배아래 억압받던 한족 문인들에게 명나라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당시 선풍적 인기를 누렸고 후대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 대표작이 秋柳(추유) 시인데 왕사정은 “나는 평생 가장 단풍잎을 사랑한다”라고도 하였다. 그는 단풍, 홍엽 등 낙엽류의 시어를 활용하여 의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홍엽의 시적 정취는 청대 문인사회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홍엽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황엽을 아호로 칭하거나 작품 세계의 상징으로 삼은 문인들이 나타났다. 한중 양국에서는 秋士로 칭해지는 문인이 확산되고, 가을경물과 가을정서를 주제로 다루는 秋詩라 칭해지는 작품이 동시에 유행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만주족 지배하의 한족 지식인과 세도정권하의 조선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소외와 그로 인해 불우한 삶에 대응하여 새로운 심미세계를 탐색하였고, 방산의 홍엽전성이 보여주는 시세계는 그 하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방산 서예연원과 특질(이동국)

방산의 삶은 힘들고 고단했다. 그는 1879년 7월 23일 서울의 삼태동에서 사망했다. 그는 사망하기 2달 전에 영어, 김병국(1825~1905)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당시 방산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 방산은 교유한 30년을 회고하면서 그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이런 무더위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곧 죽어가는 시체가 병상에 있습니다. 단지 못난 아들 하나가 염빈을 주관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모기가 태산을 짊어진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까운 친척도 없고 미련하여 동서를 분간할 줄도 모릅니다. 또한 사방에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마치 어미 잃은 젖먹이 고아가 길가에서 울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곧 죽을 사람의 말은 진실하다고 합니다. 감히 부탁드립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무슨 과든지 기회가 닿는 대로 도움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백도(白徒)만 면하게 해주신다면 제 뼈가 썩기 전에는 어찌 감히 잠시하도 잊겠습니까? 비록 지하에 있더라도 백배(百拜)하고 감사드리겠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방산은 앞일이 걱정이었다.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들 윤철하에게 대필을 시켰다. 바로 그 아들의 앞날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평생 다산학의 계승자임을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아들에게 전해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병국에게 쓴 편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