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이 무슨 날인지 달력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확인해도 쉽게 기억하기 어려운 날이다. 달력에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라고만 적혀있다. 한번쯤 국사시간에 들어봤던 날일텐데 우리 역사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학생들의 의기를 기념하고,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며 오늘날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제정한 날이기도 하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53년 '학생의 날'이라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가 1972년 10월 유신 직후, 각종 기념일 통폐합 규정에 의해 폐지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4년, '학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국가기념일로 부활한다. 이후 2006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이 변경돼 오늘날에 이른다.
최근 악화되는 한일문제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뜻 깊은 그날을 기억해보고자 그 당시 사건을 정리해본다.
학생독립운동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모태로 하며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으로, 3·1 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이 부분에서 살짝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운동은 1929년 10월 30일의 나주역 사건을 계기로 들불일 듯이 번져간 학생운동인데 광주에서 시작돼 두 차례 학생시위를 거친 후 전국으로 확산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어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지금의 광주제일고. 이하 광주고보)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였던 광주중학 학생들간의 충돌이 계기가 된다.
당시 광주지역에서는 이미 한·일 학생간의 충돌이 몇 차례 있었기에 등하교 때만 되도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반경 광주발 통학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광주중학 3학년인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 박기옥, 이금자, 이광춘 등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모욕적인 발언과 조롱을 한다. 이를 목격한 박기옥의 4촌 남동생이자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생인 박준채(朴準埰) 등이 격분해 이들과 충돌한다. 싸움은 광주고보와 광주중학 학생들의 패싸움으로 확산됐는데 이때 현장에 출동한 역전 파출소 경찰은 일본인 학생을 편들며 일방적으로 박준채와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광주고보 학생들은 11월 3일 광주에서 가두시위를 벌인다. 11월 3일(음력 10월 3일)은 일왕 메이지[明治, 재위 1867~1912]의 생일인 명치절(明治節)이어서 학생들은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해야 했고 그 날 광주에서는 전남 누에고치 6백만 석 돌파 축하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명치절 행사를 마친 광주고보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일부 학생은 나주역 사건에 대해 편파 보도를 했던 광주일보사로 몰려가 윤전기에 모래를 뿌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날의 시위는 광주고보에서 당연한 것처럼 발생했으며, 광주여고보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도 일부 참여한다. 일제는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광주시내 모든 중등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으며, 시위에 참여한 조선인 학생 수십 명을 구금한다.
학생들의 시위 소식이 전해지자 신간회(新幹會), 조선청년동맹, 학생전위동맹이 조사단을 파견하고 광주 지역 성진회(醒進會)와 함께 전면적 항일운동으로 발전시킬 것을 계획하고 11월 12일에 광주 시내에서 광주고보, 광주농업학교, 광주여고보, 광주사범학교 학생들도 참여한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 날의 시위로 수백 명의 학생이 일제 경찰에 체포·구금됐으며, 이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시위운동은 목포, 나주 등 인접 지역으로 퍼져갔고, 이듬해 1월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된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학교는 총 194개교, 참여 학생은 5만 4천여 명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전체 학생 수의 60%에 해당하는 수였다고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찾자면 다음과 같다.
광주의 학생들은 당시 독립운동에 대해서 수용력이 뛰어났고 이것을 익히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점, 광주 지역에는 이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진회가 창립돼 민족의 독립을 위한 이론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대일항쟁의 정예요원을 육성, 조직했다는 점이다. 또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은 일제 강점 하의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일제가 조국의 수탈자이자 압박자였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은 입시형 학업에 맞춰져 조국의 위협이 되는 나라가 어디인지 조차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광주 학생들의 대일 항쟁의 가장 큰 의의는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고 민족 교육을 회복하고자 궐기한 젊은이들로부터의 자발적 항쟁이라고 하겠다.
한편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인 박준채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다. 이후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학업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를 졸업한다. 광복 후 은행원으로 재직하다가 1960년부터 조선대학교로 직장을 옮겨, 조선대학교 법학대학장, 여대 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한다.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군사정부로부터 회유와 탄압을 번갈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으며, 1980년 조선대학교 교수들이 시국양심선언을 할 때도 관여한다. 그는 광주학생운동 정신을 빛낸 공적으로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2001년 3월 7일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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