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나둬도 부담 느껴 아예 흔적도 없애려는 새 윤달풍속
예로부터 윤달은 ‘썩은 달’이라고 하여 하늘과 땅의 신(神)이 사람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윤달에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를 입히는 것이 선대 묘에 대한 풍속이었다. 그러나 10여 년부터 벌초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껴 윤달에 선대의 묘를 파묘한 다음 현장에서 도치램프로 화장하는 새로운 풍속이 이어지고 있다. 금년 갑오년에도 윤달이 양력 10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였는데, 한꺼번에 여러 개의 선대 묘를 파묘한 다음 불법으로 화장하는 일이 자행되었다.
군동면 김모 씨는 “여러 사람이 의뢰를 해 와서 파묘와 화장을 해주었다”며 “봉분 하나 해결하는 데 30만 원씩 받았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다섯 봉분을 해결하는 일도 있었다는 김 씨는 “그 일을 하는 사람마다 봉분을 아예 없애고 유골까지 화장해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해 선대의 묘 관리가 갈수록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새로운 풍속임을 느끼게 했다. 김모 씨는 “금년 윤달에 봉분을 단장하는 사람보다 파묘 화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면서 “완도 생일도까지 가서 그 일을 해 준 일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풍수인(風水人)들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평생 풍수지리가로 일해 온 한 풍수인은 “고이 잠을 자고 있는 고인을 굳이 깨워서 이장을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며 “벌초가 힘들면 그냥 그대로 나두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봉분에 나무가 자라서 봉분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을지라도 굳이 이장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파묘를 해서 화장을 할 경우 화장장에 가서 화장을 해야만 법적으로 옳은 일인데도 현장에서 화장을 한 다음 주변에 뿌리고 있어 새로운 윤달 풍속이 되어 가고 있다.
김모 씨는 “대형 도치램프를 사용해 화장을 하기 때문에 20분 정도면 말끔히 화장을 할 수 있다”면서 “유골이 퍼석퍼석해서 금방 화장이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루에도 다섯 봉분이든 열 봉분이든 마음대로 파묘한 다음 화장을 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일은 10여 년 전부터 새롭게 일어난 윤달 풍속으로서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50~80만 원씩 주고 파묘, 화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0년 이상 된 선친의 묘를 파묘, 화장한 박모 씨는 “그대로 놔둘까도 생각했지만 벌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예 화장을 해버렸다”면서 “이제 고향에 와서 벌초를 해야 하는 일이 없게 돼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산림이 우거져서 마을 대대로 이용되던 산길조차 없어진 바람에 벌초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낀 도시인들이 금년 윤달에도 불법으로 파묘 화장하는 일이 곳곳에서 자행되어 새로운 윤달풍속이 되어가고 있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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