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균은 서울 남산 및 마을에서 함께 자라났다. 이순신은 올해 53세였고 원균은 5년 연상으로서 58세였다. 나이도 그렇지만 사회진출도 원균이 선배였다. 그는 이순신보다 먼저 두만강 연변에서 싸웠다. 원균이 정3품 전라좌수사일 때 이순신은 겨우 종3품 정읍현감이었다.
그런데 원균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1591년 2월 전라좌수사에서 물러났고, 그 뒤로 유극량(劉克良)이 그 자리에 앉았다. 다시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에 앉게 된 것은 순전히 좌의정 유성룡의 적극적인 추천 덕택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돌고 도는 법이었다. 이번엔 거꾸로 이순신이 전쟁에서 공을 크게 세우자 임금 선조는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를 내렸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올렸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원균에게도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내렸지만 종2품이었으므로 정2품에서도 한 단계 위인 정헌대부와는 월등히 차이가 났다.
조정에서 공을 세운 이순신을 승진시킨 일은 백번이나 잘 한 일이었다. 하지만 원균에게 있어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상사로 대하는 것도 기가 막힐 일이지만 부하들의 얼굴보기도 민망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순신이 통제사에 임명되어 지휘를 해 올 때에는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그만큼 자존심이 상한 일이었다. 거기에 원균은 한 술 더 떠서 충청별사로 임명되었다가 다시 전라병사로 전임되어 장흥으로 가야만 했다. 원균은 이런 전후 사정 때문에 장계를 올리게 되는데, 결국 이 일로 이순신에게는 시련의 시작이 되었다.
--임진란 초기에 육상의 적은 멀리 치달려 짧은 기간 내에 평양까지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덕은 해를 넘겨도 패전을 거듭하여 끝내 이서(以西)에도 이르지 못했나이다. 우리 조선의 무위(武威)는 오로지 수군에 있으므로 조정에서는 수군으로 바다에 나가서 맞아 싸워야만 적들이 감히 육지에 오르지 못할 것이옵니다. 신은 전에 바다를 지킨 경험이 있어 침묵만 지킬 수 없기에 우러러 조정에 아뢰는 것이옵니다.
이런 장계들이 올라옴과 동시에 왜적이 재차 침입했다는 사실 앞에 임금 선조는 적잖이 이순신에게 불신이 앞섰다.
드디어 1597년 1월 27일 임금 선조는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영돈영 이산해, 영의정 류성룡, 판중추 윤두수, 좌의정 김응남, 자충추 정탁, 경림군 김명원, 호조판서 김수, 병조판서 이덕형, 병조참판 유영경, 이조참판 이정형, 상호군 노직, 좌승지 이덕열 등 열여섯의 대신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선조 : 전라도 등은 전혀 방어하지 않고 있고 한 사람도 수군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찌 해야 하는가?
윤두수 : 이순신은 조정의 명을 듣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서 한산도에 물러나 지키고 있으니 통분할 일입니다. 큰 계책을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높은 관리나 낮은 관리나 할 것 없이 통분해마지 않고 있습니다.
정탁 : 이순신은 참으로 죄가 많습니다.
선조 : 이순신이 어떤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계미년 이래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장수들이 못하는 것이 없이 조정을 속이고 있는데, 이런 습성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순신이 부산 왜영을 불태웠다고 조정을 속여 보고했는데 설사 지금 그의 손으로 가토의 목을 베어온들 용서할 수가 없다.
이산해 : 임진년의 원균의 공이 컸다 들었습니다.
유성룡 : 신의 집은 이순신과 같은 동네여서 어려서부터 사람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무를 잘 수행할 자라고 여겼습니다. 성품이 굳세고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데, 신이 수사로 천거하여 임진년에 공을 세워 정헌까지 이르렀나이다. 무릇 장수는 뜻이 차고 기가 펴지면 반드시 교만해지고 게을러집니다.
선조 : 이순신은 용서할 수가 없다. 무장으로서 어찌 조정을 경멸하는 마음을 갖는 것인가? 우상이 내려갈 때에 ‘평일에는 원균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되지만 전시에는 써야 하다’고 하였다.
김응남 : 수군으로서는 원균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제 버릴 수 없습니다.
유성룡 :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상당산성을 쌓을 때 원균은 토담집을 지어놓고 성 쌓는 감독을 하였다 합니다.
선조 : 원균을 수군의 선봉으로 삼고자 한다.
김응남 : 지당하신 분부입니다.
이산해 : 임진년 수전을 할 때 이순신이 서서히 장계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이순신은 밤에 몰래 장계를 올려 자기의 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원균이 원망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 : 부산에 있는 적진을 태운 일은 이순신이 안위와 은밀하게 약속한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먼저 해버리자 순신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체 자신의 공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정형 : 어디까지나 변방의 일입니다. 멀리서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서서히 처리해야 옳을 것입니다.
윤두수 : 이순신을 전라·충청통제사로 삼고 원균을 경상통제사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선조 : 병조판서는 수군을 갈라서 원균이 통솔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덕형 : 원균 역시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으므로 신의 생각에도 합당합니다.
선조 : 두 사람을 모두 통제사로 한다면 이를 조절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균이 앞장서서 싸우고자 했을 때 이순신은 뒷짐을 지고 돕지 않는다면 어렵게 된다.
김응남 : 그럴 경우 순신에게 중벌을 내려야 합니다.
이순신이 드디어 바람 앞에 등불 격이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죄목이 없자 윤두수의 제안대로 결론이 났다. 원균을 경상도통제사, 이순신을 전라·충청도통제사로 임명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튿날, 임금 선조는 원균과 이순신에게 내릴 비망기가 작성되었다. 그 내용인즉슨 이순신을 죄인으로 몰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은 나라의 중임을 맡고 있음에도 적을 치지 아니하니 청적(淸賊 :기요마사)은 무사히 바다를 건너왔다. 마땅히 국문해서 용서가 없을 일이나 적과 대진하는 처지이므로 우선 공을 세워 죗값을 치르도록 하라.
한편, 원균에게는 봄바람이 부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 내 평소 경의 충용함을 알고 있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경상도통제사로 삼노라. 경은 이순신과 협력하여 원한을 풀고 바다의 적을 모두 멸하여 이름을 역사에 남기도록 하라.
일은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지만 한 번 터진 이순신에 불만과 불신은 높아만 갔다. 특히 사헌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것은 임금 선조가 이순신을 미워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위기를 모면한 것 같지만 머잖아 일이 또 터질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직위를 강등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드디어 이순신을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떨어졌다, 2월 7일 금부도사 이결(李潔)은 어명을 받고 선전관과 함께 남으로 향했다.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하여 임금을 무시한 죄요, 적을 놓아주어 잡지 않았으니 나라를 저버린 죄요, 심지어 남의 공로를 가로챈 나머지 남을 모함하기까지 하며 방자함이 그 죄이다. 이처럼 많은 죄상이 있고서는 법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용서할 수 없다. 이제 형벌을 시행하여 실정을 캐어내려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
금부도사가 남으로 내려간 후 선조는 고민에 빠졌다. 막상 이순신을 서울로 잡아 올리라고 말했지만 그에 합당한 죄목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삼고 이순신을 즉시 잡아들이도록 하라!”
금부도사가 이런 선조의 어명을 받들고 남으로 향하다가 도체찰사 이원익을 만났다. 이원익이 펄쩍 뛰면서 선조에게 글을 올렸다. 왜적이 꺼려하는 것은 수군이므로 이순신을 바꿔서도 안 되고 원균을 보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선조는 고개를 흔들었다.
금부도사는 말을 달려 장흥에 있는 원균에게 향했다. 통제사 자리가 막중한 것이므로 원균에게 교대를 한 후 이순신을 잡아들이라는 명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흥에서 한산도까지 간 것은 도합 19일이 걸렸다. 나라의 운명이 다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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