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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전에 유행하던 ‘공포의 쿵쿵따’ 라는 게임이 있었다. 3글자로 된 낱말의 끝말잇기 게임인데 늘 나오는 레파토리는 임창정, 정발산, 산기슭, 슭곰발, 발냄새, 새가슴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정발산이 바로 고양시에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고양시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고양시는 인구 102만이 사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명도는 구청소재지보다 덜 유명한 곳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고양시를 아느냐고 물으면 그 위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산’을 아느냐고 물으면 킨텍스와 연결시키며 신도시라고 바로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일산은 구청소재지이고 고양시는 이 이름난 도시를 품고 있는 시청소재지였던 것이다. 고양시 입장에서는 지명의 하극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썩 유쾌해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고양시와 우리 강진군이 무슨 공통분모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고양시의 랜드마크는 행주산성이다. 그 성곽의 활용법이 병영성 활용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역사와 활용법을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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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
‘고양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행주산성이다.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고 사랑받고 있다. 바로 외침이 많았던 우리나라 국토에서 승전을 기록한 몇 안 되는 사적지이기 때문이다.
행주산성과 연관된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중의 하나로 많은 방문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고양시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행주산성이 고양의 랜드마크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임진왜란이다. 당시 조선은 200년간의 보기 드물게 평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전국토가 유린될 정도의 외침이 없었다는 말이지 변방에서 있었던 작은 전투는 종종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1467년에 시작된 ‘오닌의 난’부터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이루기까지 150년이 가까운 전쟁의 시기를 보냈다.
당연히 전쟁은 경험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라 수없이 많은 방식의 싸움을 거친 일본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그야말로 두려울 것이 없는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게다가 왜군은 개전초기부터 조선의 병사들이 상상도 못하던 무기인 ‘조총’을 선보이며 길 위의 낙엽을 빗자루로 쓸어내듯 조선군을 물리쳤다. 왜군이 부산을 통해 조선에 발을 디딘 후 한양은 한 달여 만에 점령됐고, 선조를 비롯한 신하들은 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거침없는 몽진길에 올랐다. 그러나 서남해안에서 전라좌수영의 맹활약에 힘입어 조선군도 서서히 정비를 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왜군은 보급이 어려워지고 장기전으로 돌입하면서 전쟁 초기에 보여줬던 강력한 전투력도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때맞춰 명에서 원군을 보내고 1차 평양성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더니 그 다음에 펼쳐진 벽제관 전투에서는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바로 이때 명군과 힘을 합해 한양의 일본군을 무찌르려 했던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명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전력을 정비한다. 전력을 가다듬는다고는 했지만 실제 전투가용병력은 약 2800명, 왜군은 무려 3만 명에 달했다. 물론 지휘할 수 있는 장교의 숫자에서도 일본은 압도적 우위를 지킨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쟁에서 맹활약을 했던 것도 사실 6.25를 겪은 지휘관들이 많았고 파병 당시 병사들의 정신무장 상태가 일반적으로 징병된 병사들보다 훨씬 우수했기 때문이었는데, 같은 기준으로 보면 행주산성에서의 전투는 누가 봐도 다양한 전투경험의 지휘관, 우수한 장비, 압도적 병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조선군이 가진 것은 조금 더 높은 언덕에 있다는 지형적 이점과 ‘지면 죽는다, 반드시 이겨서 살아야 한다’는 정신력의 우위가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왜군은 앞서 벌어진 벽제관 전투에서 얻은 승리로 사기도 높은 편이었다.
행주대첩 승리의 요인
그런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근접전 위주의 무기만을 가진 왜군이 조선군의 장거리 화약무기인 불랑기포, 진천뢰, 대완구 등을 적절히 사용하고, 중거리 투사 무기인 활을 최대한 활용해 왜군의 장기인 ‘단병접전’의 기회를 애초에 없애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하는 것은 왜군이었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자신들의 의도대로 시선을 끌어 숨겨뒀던 결정적 한 방으로 성을 탈환하려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 할 정도로 조선군의 반격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조선육군의 최신무기는 이 전투에서 빛을 발한다. 영화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신기전’이 이 전투에서 등장한다. 신기전은 지금으로 치면 근접전의 ‘기관총’이요, 장거리 포격전의 ‘다련장 로켓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왜군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무기였는데 이는 조총을 처음보고 당황했던 조선군의 입장과 거의 비슷했다. 결국 조선군의 사상사는 130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왜군은 전사자 15,000명, 부상자 9,000명이라는 성적표를 들고 쓸쓸히 후퇴를 해야 했다. (이쯤 되면 세계 전쟁사에 이름을 올려줘도 될 만큼 훌륭한 기록 아니겠는가?)
행주대첩은 그렇게 수비에 유리한 지형과 날씨, 상대방의 장점을 무력화 시키는 장거리 무기의 적절한 조화가 결국 10배가 넘는 왜군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전투를 시행하는 전투병들의 노력과 이들의 전투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지휘관의 뛰어난 역량 또한 높이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육군 전투사상 이렇게 통쾌한 전투도 드물다. 그래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더불어 육전 3대첩으로 불리며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명(明) 제독 이여송(李如松)은 평양으로 회군하던 중 행주대첩의 소식을 듣고 벽제관 전투의 패배 후 급히 회군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숟가락만 얹었어도 앞선 전투의 패배를 크게 만회하는 공을 세웠을 텐데’라고. 그 뒤 권율은 전라도 순찰사에서 도원수가 되는데 이 행주대첩의 전공이 결정적이었다고 하겠다.
노장의 불명예 퇴진과 복직
1593(선조 26)년 6월 권율은 도원수에 오르는데 도망병을 즉결처분한 것이 문제가 되어 1596(선조 29)년에 해직되고 만다. 당시 대장이 도망병을 벤 것이 파면까지 이르자 크게 낙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조선 조정도 막상 권율을 해임하고 보니 그만한 인재가 없는지라 다시 불러들여 한성부 판윤, 호조판서,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도원수에 재임명한다.
7년간의 전쟁 중에 기력을 너무 쏟은 탓이었을까? 노장은 전쟁이 끝난 후 병을 얻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599년 6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다음주 계속
사진설명
1. 행주산성을 찾는 관광객들(고양시 제공)
2. 행주대첩비(고양시 제공)
3. 권율 장군을 씻겨드리는 관리소 직원(고양시 제공)
4. 권율 장군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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