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하훈
며칠 동안 조선 수군은 천신만고 끝에 가덕도 앞바다에 이르자 왜적의 함대 5백여 척이 뒤좇아 왔다. 백병전이 벌어진다 해도 칼 한 번 휘두를 힘이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왜적의 배와 부딪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후퇴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옥포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러나 옥포에도 식량은 없었던 터여서 이틀을 지낸 후 다시 거제도 동북단 영등포(永登浦)에 당도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 7월 15일 대낮이었다.
수군들은 목이 몹시 마른 나머지 앞 다투어 배에서 내린 다음 물을 마시고 또는 긷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왜적들이 갑자기 나타나 콩 볶듯 요란하게 조총을 쏘아댔다. 수군들은 물을 마시다 쓰러지기도 했고 물통을 내동댕이치며 쓰러지기도 했다. 왜적은 매복을 하고 조선수군을 기다렸던 것으로 원균의 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쓰러진 동료들을 내버려둔 채 배에 승선한 조선수군은 온라도(溫羅島)에 닻을 내렸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침통해 있는 원균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통제사 어른! 경상우수사 배설이 한 말씀 올리겠소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배설이 작심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연히 목소리를 높였다.
“적과 싸우는 데 있어 목숨을 걸고 싸울 때가 있고, 후일을 도모하여 일 보 후퇴하는 것도 계책이올시다. 우리 수군은 지칠 대로 지쳐있고 이미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무모한 싸움을 하기 보다는 후일을 도모해서 다시 싸우도록 하십시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하오. 이 한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치자는 것이요. 선택의 여지는 없소이다.”
원균이 책상을 탕 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적의 공격은 들불 같은 데 우리는 모닥불이나 지피고 있는 형편입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자는 것도 아니요, 때를 보아서 싸우자는 것입니다.”
“듣기 싫소.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고 죽음만이 있을 뿐이니 그리 아시오. 경상우수사는 말이 많으니 그만 입을 다물도록 하시오.”
배설은 무안했는지 얼굴이 벌개가지고 물러났지만 마음속으로는 휘하에 있는 12척의 함선을 가지고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왜적의 습격으로 인해 어이없이 수군 400여 명을 잃고 난 가덕도 싸움 때문이 혼쭐이 난 원균은 이래저래 마음이 심난하기만 했다. 나가서 싸우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후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임금 선조와 조정에서는 왜적을 물리치기는커녕 후퇴하여 놓아주는 일이 있게 되면 용서할 수 없다고 추상같은 명을 내려놓고 있는 판이었다.
원균은 괴로웠다. 그러는 사이 권율이 부르더니 어찌하여 진격을 않느냐며 곤장을 때렸다. 두 차례나 부하들 앞에서 곤장을 맞고 난 원균은 기가 막혀서 술을 마신 후 퍼질러 자버렸다. 분한 마음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조정의 명대로 부산포를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한산도로 다시 귀항한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게다가 한산도로 돌아간다면 그들은 원균에게 있어서 치욕이었다.
그런데 7월 16일 왜적은 조선 함선 4척을 불 지르고 달아나더니 다음 날 새벽닭이 울 무렵 1.000대의 함선을 동원해 총공격을 해왔다. 밤중에 이미 조선 수군을 포위한 왜적의 함대는 이번 싸움을 설욕전으로 생각하고 용의주도하게 작전을 짜고 공격한 것이었다. 조선 수군도 기를 쓰고 화살과 대포를 쏘며 저항했지만 예견되기라도 한 것처럼 배가 부서지고 불에 타고 병사가 바다에 빠져죽고 조총에 맞아 죽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배설은 12척의 함선을 이끌고 안개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가 될 수 있었다.
조선 수군들은 불타는 배들을 버리고 가까스로 뭍으로 기다시피 빠져나왔다.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이미 왜적은 숲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새장에 든 새를 쏘아 맞히는 것처럼 조준사격을 가해왔다. 왜적이 어디에 숨었는지도 모른 체 조선 수군은 칼이며 활 한 번 쓰지 못하고 짚뭇 쓰러지듯 전멸했다.
그 때 원균을 위시하여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조방장 배흥립 · 안세희 등 뛰어난 장수들과 1만 여 명의 조선 수군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 참혹한 모습을 지켜본 원균은 지친 탓인지 나이든 탓인지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했다. 그리고 웃통을 벗어 버리고 홀로 칼을 짚고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왜적 6-7명이 칼을 휘두르면서 원균에게 달려들었다. 원균 곁에는 외아들 사웅이 있었는데 올해로 18세였다. 그는 부친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곁을 지켜드리는 아들이었다. 사웅이 활을 들어 다가오는 왜적 한 명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왜적을 향해 아버지 원균과 함께 마지막 저항을 하였다. 하지만 중과부적의 싸움에서 두 사람은 피를 뿜으며 숨을 거두었다.
조선 수군이 전멸한 이번 전투에서는 이순신에게 패배한 적장 도도 다카토라, 와키사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등이 있었으니 끝내 원균으로부터 시작된 불협화음과 권율의 강제 출동 등으로 인해 조선의 희망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 수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에 도원수 권율은 거짓말처럼 여겨졌다. 그동안 조선 수군은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고 지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므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장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권율과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온 이순신을 만난 황대중이 가슴을 치며 통탄해 했다. 이순신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었다.
“이런 사태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큰 참패입니다.”
“장군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사필귀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황대중이 어느 틈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16일 새벽에 왜적이 포위망을 좁혀오니 한산도로 물러날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고성 쪽으로 가야했는데 그만 당하고 만 것 같소. 더군다나 뭍으로 도망간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던 왜적에게 허망하게 당하고 말았으니 그 피해가 더 컸던 것 같소.”
“이번에 왜적들은 히데요시의 특명으로 배를 많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의 배를 모방한 것도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별아 별 방법을 다 동원했겠지요.”
이순신이 벌떡 일어나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순신 역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한 줄기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군. 이 난국을 어찌 하실 셈입니까? 장군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저는 장군을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칠천량해전으로 인해 비록 참패했고 한산도까지 빼앗겼지만 우선 해안에 나가서 살펴봐야겠소.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봐야겠소. 조금 전에 권율 장군을 만나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낙을 하셨소이다.”
“수군이 몰살당한 이 판국에 장군께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왜적과 싸우시겠다는 것인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황대중이 흐르는 눈물을 소매 끝으로 닦았다.
“아니오. 들리는 말로 배설이 12척의 배를 갖고 도망을 쳤다고 하니 그 배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겨우 12척의 배를 가지고 싸우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지요?”
“12척이라도 남았다는 사실을 중히 여겨야겠지요.”
이순신이 권율의 허가를 받고 황대중, 송대립 등 9명과 함께 말을 타고 서남으로 달렸다. 삼가(三嘉), 단성(丹城), 진주, 곤양(昆陽),을 지나 21일 노량(露梁)에 도착했다. 피난민들이 이순신을 알아보고 막걸리를 권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장군님. 한 잔 만 더 하십시요이.”
한사코 거절을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막거리를 권하는 바람에 세 잔이나 거푸 마신 이순신은 디시 길을 재촉했다. <다음호에 계속>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