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10

탐진강 방조제 둑을 지나면 멋진 갈대밭이 한 없이 펼쳐진다

‘강진의 젖줄’, ‘어족자원의 보물창고’라 불리던 탐진강은 이제 없다. 점점 줄어드는 어획고, 사라져가는 패류, 쌓여가는 진흙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마저 퇴색되고 있다. 심지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낄 만큼 탐진강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생기 넘쳤던 그 시절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면서 탐진강이 강진의 미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진강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원류를 따라 걸어본다. -편집자 주-

소금인지 물거품인지 구별이 잘 안되는 흰색 물체가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탐진강변의 흰색 물체와 남포마을

상하수도 사업소부터 남포교에 이르는 약 2km 거리는 평소 인적이 드문 관계로 남들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탐진강둑을 걷다보니 콘크리트 옹벽이 나타났다. 그 옹벽이 시작되는 지점에 넘어져 있는 경고판이 보였다. 경고판은 ‘본 방조제는 농업기반시설물로 선량하게 관리되어야 하므로 차량통행 및 시설물 손괴행위를 금함’이라고 밝혔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방조제임을 확인했고 우측에는 환경정화센터의 뒷태를 볼 수 있었다. 또 매립동 지붕이 태양광 집열판이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골길을 걸으며 다양한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햇빛이 등 뒤에서 쏟아지니 정면의 뻘 밭이 반짝였다. 그런데 그 반짝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파도가 만드는 물거품 같기도 하고 소금 같기도 한 하얀 빛이 유독 내 시선을 끌었다. 남포마을까지 가는 내내 궁금증이 더해졌고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남포배수장을 지나고 나니 뻘 밭 위의 흰색은 더욱 밝게 빛이 났다. 물론 눈이 부셔서 인지 아니면 내 시력이 나빠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쭉 뻗은 비포장길과 길 양쪽에 늘어선 갈대가 걷는 이의 마음을 황홀결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남포교에 도착하니 그 흰 빛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제 그 빛을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다.

아무 생각없이 그 빛을 따라나선 나는 그 빛을 향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잠시후 나는 대참사(?)를 겪고 말았다.

일단, 그 반짝이는 것은 소금이 아니었고 얇게 언 얼음이었다. 보통 여름날 뻘 밭에서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을 볼 수 있는데 겨울에도 소금이 나타날까 하는 호기심에 뻘 밭에 발을 내딛었다가 신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얼음이 있다는 것은 땅이 얼어있다는 뜻이고 땅이 얼면 단단할 것이고 그러니 얼음 위로 뛰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친구가 나에게 농담으로 했던 충고가 생각났다.

“니가 혹시 죽게 된다면 그건 호기심 때문일거다. 궁금해서 죽거나, 궁금한 것 확인하다가 죽거나!‘

생각해보니 친구가 제대로 나를 본 것 같다.(생각난 김에 친구에게 전화나 해야겠다!)

진실을 찾아 갯벌에 뛰어들었으나 신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신발이 벗겨지면서 힘차게 내딛은 내 한 걸음은 바짓단을 뻘로 물들였고 잠시동안 나를 공황상태로 이끌었다. 일단 뻘 밭에서 나온 나는 차로 돌아가 뻘투성이의 양말을 벗고 신발도 봉투에 담았으며 다른 신발로 갈아 신고 나왔다.

촛불의 무서움을 모르고 달려든 불나방처럼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신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더 이상 걷기가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면 도저히 탐진강 이야기 분량이 안 나오니 근처 전망좋은 곳을 찾아 이동했다.

남포배수장을 배경으로 하는 갈대밭은 최고의 포토존을 형성한다

만덕산 옥련사

옥련사 전경

잠시 후 내가 찾은 곳은 강진읍 덕남리 기룡 마을 뒤 만덕산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지정 전통사찰인 옥련사였다. 개인적으로 강진읍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손으로 꼽으라면 금곡사 벚꽃길로 유명한 까치내재와 기룡마을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옥련사를 추천해본다. 그런 멋진 전망을 제공하는 옥련사이기에 굳이 시린 발(양말을 벗은 상태임)을 하고 옥련사를 찾게 된 것이다.

옥련사에서 바라본 강진읍.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의하면 옥련사는 1947년 이후 1951년 11월 능화(能華)스님과 인근 신도들의 노력으로 백련사(白蓮寺)의 소속이던 송광암(松廣庵)터에 초가집 두칸을 지어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淨水寺)에서 목조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부터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옥련사를 처음 개창하면서 정수사에서 옮겨온 목조불상으로 1991년 5월 복장을 확인한 결과 1684년 불상조상기문(佛像造像記文-불상을 만든 경위를 기록한 문서)과 여러 권의 경전류(묘법연화경, 1663년 대흥사 판본) 등을 비롯해 복장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찰 경내에는 층층이 석축을 쌓아 마치 산성의 석축을 보는 느낌이 들고 1684년 제작된 목조여래좌상과 연대불명의 석조불좌상 등의 문화재와 81년에 중건한 대웅전 삼성각, 용화전 및 91년 건립한 옥련선원, 종각 등이 있다.

조선 후기 불상이 허리가 구부정하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등 퇴화된 양식을 보이는 데 강진 옥련사 목조여래좌상 도 비슷한 형태를 보일뿐만 아니라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당시 불상 조작수법과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 전남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됐다.

내가 찾은 옥련사는 시간이 안 맞았는지 스님은 물론 불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사찰에서 ‘어디에서 바라봐야 강진읍이 가장 잘 보일까?’ 혼잣말을 읊조리며 조용히 경내를 거닐었다. 날씨마저 도와줘서인지 강진읍내가 시원하게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옥련사에서 힐링을 즐긴 나는 다시 기룡마을을 지나 강진만으로 이동했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