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만 햇발
재미있는 독서 이야기
완도교육청 곽영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아이들이 겨울방학 때에 서당에 다니면서 책을 읽는 일이 많았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바로 서당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등배운동(앉아서 몸을 앞으로 굽혔다 폈다 하는 운동)을 하면서 목청을 가다듬고 천자문과 명심보감 등의 책을 밤낮없이 줄줄 외우고 다 외우면 부모들이 ‘책걸이’라고 떡을 해 가지고 갔는데 이는 학생에겐 축하고 선생님에겐 가르쳐 주심에 대한 감사였을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 하고 책 속에서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고 있다. 옛날에는 책을 가까이 해야만 벼슬에 올랐으니 책을 가까이 했고, 요즈음은 대학진학을 위해 또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리고 영어와 많은 자격증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지만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학이나 직장에 합격한 이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밑바탕이 되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지금도 항상 책을 가까이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독서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우리 귀에 익은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있다. 옛 중국에 손강이라는 사람은 집이 가난하여 불을 켤 기름이 없어 늘 눈 빛에 책을 읽었고 차윤이라는 사람도 기름을 구할 수 없어 여름이면 수 십 마리의 개똥벌레(반딧불이)를 잡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어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여 성공한 것을 ‘형설지공’이라 일컫는다.
원나라 때 광형이라는 사람은 책을 밤새워 읽다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책을 읽었는데 흐르는 피가 바지를 적셨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나폴레옹은 전장으로 달리는 마차 안에서도 책을 읽었고 알렉산더대왕은 원정길에 올라서도 유럽의 대 서사시인 ‘일리아드’를 상자 안에 넣고 다니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로마시대 부자 이셀이라는 사람은 책 읽는 하인을 200명이나 고용했다고 하며 책을 좋아하는 한 애서가는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우연히 ‘후한기’라는 책을 발견하고 팔기를 권했으나 거절당하자 자기 사랑하는 애인을 친구 집에 자주 심부름을 시켜 유혹한 후 친구가 자기 애인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채고 그때 그 책과 애인을 바꾸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우리 선조들도 기름이 없으면 지붕 용마루에 올라 앉아 달빛에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렇듯 독서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나 책을 읽어야 함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독서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머뭇거려서도 미루어서도 안 되며 책을 가까이 하라는 이야기는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틈 만 나면 책을 읽으라는 말 일 것이다.
옛날에 어느 한 임금님이 신하들을 불러 ‘인생을 알고 싶다’고 했다. 신하들이 전전긍긍하다 유명한 철학자를 불러왔는데 철학자는 임금님께 하는 말이 ‘스스로 깨우치는 길 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왔다. 임금님은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읽겠느냐고 하면서 줄여 오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하인들은 10년에 걸쳐 고르고 골라 50권으로 줄여 오고 다시 여러 해에 걸쳐 10권으로, 그리고 5년 동안 다시 한 권으로 줄여왔는데 그때 임금님은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다. 임금은 신하에게 “짧은 한 마디로 말하라”하였다고 한다. 그 임금님은 끝내 한권의 책도 못 읽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서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삼스레 나의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 오가는 길이나, 지게에 짐을 지고 논밭을 오가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저녁이면 책을 보다가 일반선 전기가 끊기면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촛농(촛물)을 팔에 떨어 뜨려 졸음을 물리치며 책을 읽었던 기억, 가을이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딸 때, 감을 따다 잠깐 쉬는 동안 책을 읽었던 기억도 새롭다. 장학사로 재직시 선생님들에게 2시간 강의를 앞두고 관련서적 일곱권을 3일 동안 읽었던 기억은 내 생애에 가장 단기간에 책을 많이 읽었던 기록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독서 환경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일은 정말 복에 겨운 길이 아닐 수 없다. 시험 준비에 쫓겨 교양서적은 엄두도 못 내고 읽고 쓰는 것 보다 TV 앞에서 듣고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 유럽을 여행할 때 공원에서 백발이 하얀 할아버지가 꼬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일본이나 외국을 여행하면서도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는다. 우리들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좋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석학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름이 없다. 틈틈이 책을 펴 하루에 1-2쪽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이 길러진다면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가꾸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도 바닷바람이 쉬지 않고 가을을 쓸어간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나의 영혼 속으로 입력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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