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열전(蘇秦列傳) (2)
지난 줄거리--소진은 중원의 여섯 나라(제나라, 초나라, 조나라, 연나라, 한나라, 위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를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각 나라를 방문한다. 소진은 제나라를 방문한 뒤 초나라를 방문하는데······.
소진은 서남쪽으로 가 초나라 위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는 천하에서 강한 나라이고 왕께서는 천하에서 현명한 왕이십니다. 땅은 사방 5천여 리이고, 무장한 군사는 100만이며, 전쟁용 병거는 1000대이고, 전쟁용 말은 1만 필이며, 식량은 10년을 지탱할 수 있으니 이는 패왕이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강대한 초나라는 왕의 현명함이 있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진나라는 초나라를 가장 방해가 되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는 약해질 것이고 초나라가 강해지면 진나라는 약해질 것이므로 두 나라는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왕을 위해 이해관계를 살펴보건대 여섯 나라가 합동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왕께서 진실로 제 의견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산동의 제후들로 하여금 계절마다 왕께 공물을 바치게 하고, 왕의 밝은 가르침을 받들게 하며, 종묘사직을 왕께 맡기게 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왕께서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합종이 성공하면 초나라가 천하의 으뜸이 될 것이고, 연횡이 성공하면 진나라가 으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패업을 버리시고 남의 신하 노릇을 하는 오명을 쓰려고 하시니 저는 왕을 위해 그렇게 권유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 같은 나라로서 천하를 집어삼킬 야심을 갖고 있으니 천하의 원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연횡론자들은 모두 제후들의 땅을 떼어 진나라를 섬기려 하는데, 그들이야말로 원수를 받들어 모시는 자들입니다. 신하된 자로서 왕의 땅을 떼어 호랑이 같은 진나라와 사귀게 하고, 진나라를 도와 천하를 침략하게 하여 화를 불러들이는데도 개의치 않습니다. 밖으로는 진나라의 힘에 의지하고 안으로는 왕을 위협하여 땅을 떼어 주기를 요구하니, 이보다 더 불충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합종책이 성사되면 제후들은 땅을 떼어 초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고, 연횡책이 성사되면 초나라는 땅을 떼어 진나라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계책은 서로 크게 차이가 나는데, 왕께서는 과연 어느 것을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우리 조나라 왕께서는 저를 보내 계책을 말씀드려 분명한 약속을 받아 오도록 하셨습니다. 왕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초나라 왕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서쪽으로 진나라와 경계를 하고 있는데, 진나라는 파(巴)와 촉(蜀)을 빼앗고 한중(漢中)을 자기 나라로 만들려는 야심을 품고 있소,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 같은 나라이니 친할 수 없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진나라에게 침략의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큰일을 깊이 꾀할 수 없소. 만일 그들과 큰일을 깊이 꾀한다면 우리의 계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진나라에 알리게 될까 두렵소. 그렇게 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오, 내 스스로 생각해 볼 때 초나라가 진나라에 맞서는 것은 승산이 없소. 조정에서 신하들과 상의해도 믿을만한 대책이 없소. 그래서 나는 자리에 누워도 편하질 않고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알지 못하며, 마음이 요동을 쳐서 마치 나부끼는 것 같소. 이제 그대가 제후들을 하나로 모아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고자 한다면 과인은 삼가 나라를 받들어 그대의 의견을 따르리다.”
이렇게 하여 여섯 나라는 서로 합종하고 협력을 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 맹약을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된 동시에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소진이 북쪽 조나라 왕에게 보고하러 가던 중 낙양을 지나갔는데, 선물을 가득 실은 수레가 끝도 없이 뒤따르고 호위하는 제후들의 사자 또한 많아 왕의 행차로 착각할 정도였다.
소진의 형제와 아내, 형수는 곁눈으로 볼 뿐 감히 쳐다볼 엄두도 못 내고 엎드려 식사 시중을 들었다. 소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하여 전에는 거만하시더니 지금은 이토록 공손하십니까?”
형수는 몸을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했다.
“작은 시아우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도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똑같은 사람이건만 부귀해지면 친척까지도 우러러보고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약 내게 낙양 성곽 가까이에 비옥한 땅 두 마지기만 있었던들 오늘날 내 어찌 여섯 나라의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겠는가?”
소진은 천금을 풀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진은 여섯 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왔다. 조나라 숙후는 소진을 무안군이라 봉하고 합종한 사실을 전 나라에 알렸다. 그로 인해 진나라 군사는 15년간이나 함곡관에 머무르며 중원을 넘보지 못했다.
그 후 진나라는 서수를 시켜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게 하여 합종의 약속을 깨뜨리려 했다. 이에 조나라 왕은 소진을 꾸짖었다. 소진은 두려워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 제나라 배신에 보복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자 합종의 약속은 깨지고 말았다.
진나라 혜왕은 딸을 연나라의 태자비로 주었다. 그해 연나라 문후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니 그가 이왕(易王)이다. 이왕이 막 왕위에 올랐을 때 제나라 선왕은 연나라가 국상 중에 있음을 기회로 연나라를 쳐 열 개의 성을 빼앗았다. 이왕이 소진에게 말했다.
“지난 날 그대가 우리 연나라에 왔을 때 선왕께서는 그대를 도와 조나라 왕을 만나게 하였고, 그 결과 여섯 나라가 합종을 맺게 되었소, 그런데 지금 제나라가 먼저 조나라를 치고 이어서 또 연나라를 치니 그대 때문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소. 그대는 연나라를 위해서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는 없겠소?”
소진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왕을 위해서 반드시 빼앗긴 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소진은 제나라 왕을 만나 두 번 절하며 엎드려 축하하고는 곧 고개를 들어 조의를 표했다. 제나라 왕이 물었다.
“어찌 축하를 하자마자 조의를 표하는 것이오?”
“신이 듣건대 굶주린 사람이 굶주리면서도 오훼(烏喙)라는 독초를 먹지 않는 까닭은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으나 굶어 죽는 것과 똑같이 해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는 비록 힘이 약하고 작지만 연나라 왕은 진나라 왕의 사위입니다. 왕께서는 연나라의 성 열 개를 빼앗았으나 그로 인해 장차 오래도록 강국인 진나라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지금 힘이 약한 연나라가 선봉에 서고 강한 진나라가 그 배후를 받쳐 천하의 정예병을 불러들이는 격이니 이것이야말로 오훼를 먹는 것과 같습니다.”
제나라 왕은 걱정스러운 얼굴빛으로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소?”
소진이 대답했다.
“저는 예로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진실로 저의 계책을 들어주신다면 즉시 성 열 개를 돌려주십시오, 연나라는 이유 없이 성 열 개를 돌려받으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고 진나라 왕도 자기 때문에 연나라의 성 열 개가 되돌려졌음을 알게 되면 또한 틀림없이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이른바 ‘원수를 없애고 든든한 우정을 얻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연나라와 진나라가 모두 제나라를 한편으로 여긴다면 이 세상에서 감히 왕의 호령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빈말로 진나라를 따르게 하고 열 개 성으로 천하를 얻는 일이니 왕의 사업이 되는 것입니다.”
제나라 왕은 연나라의 성 열 개를 주었다.
그러나 소진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소진은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아먹고 다니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신하이니 앞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소진은 누명 쓸 것을 두려워하여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돌아왔지만 연나라 왕은 그가 지난 날 가지고 있던 벼슬을 다시 주지 않았다. 소진이 연나라 왕을 만나 말했다.
“저는 동주의 천한 출신입니다. 지금 저는 왕을 위해 제나라 군사를 내쫓고 열 개의 성을 되찾아 왔습니다. 이제 더욱 신임을 받아도 마땅할 것이나 돌아와 보니 왕께서는 제게 벼슬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왕께서 저를 신임하지 못하도록 중상모략한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불신임은 왕의 복입니다. 저는 ‘충성스러운 자는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나아가 뜻을 이루는 자는 남을 위해 행동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제나라 왕을 설득한 것은 그를 속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연로한 어머님을 고향인 동부에 남겨 두었던 것은, 원래 자신을 위한 충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나아가 이루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가령 효도를 증삼(曾參)과 같이 하고, 청렴하기를 백이와 같이 하며, 성실하기를 미생(尾生)과 같이 하는 세 사람이 있어 왕을 섬긴다면 어떻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만족하리다.”
소진이 말했다.
“증삼과 같이 효성이 지극한 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를 떠나서 하룻밤을 머물지 못합니다. 청렴한 백이는 의리를 지켜 고죽국의 후사가 되지 않았고, 주나라 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도 거부하여 수양산 밑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청렴하기로 이와 같은 자가 있다 한들 왕께서는 어떻게 그를 천 리 밖 제나라로 보내 성을 취해 오는 일을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성실한 미생은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여인이 오지 않자 밀물이 되어 물이 들어와도 그 자리를 뜨지 않고 다리 기둥을 부둥켜안고 죽었습니다. 성실하기로 이와 같은 자가 있다 한들 왕께서는 어떻게 그를 천 리 밖 제나라로 보내 강한 병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충성을 다한 까닭으로 왕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대가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어찌 충성스럽고 신실하면서 죄를 지을 수 있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곳에 있는 동안 그의 처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정부가 걱정을 하자 그 여자가 ‘걱정일랑 마세요, 제가 이미 독주를 준비해 두었어요.’ 라고 했습니다. 사흘 후 남편이 돌아오자 처는 첩에게 술잔을 들려 남편에게 권했습니다. 첩은 술에 독약이 탄 사실을 말하자니 처에게 쫓겨날 것이 두려웠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넘어진 척 하고 술을 엎질렀는데, 주인이 크게 노하여 채찍을 50대나 쳤습니다. 한 번 넘어져 술을 쏟은 첩의 계교는 주인과 처를 모두 살린 것이었지만 매는 면할 수 없었습니다. 충성을 다하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허물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이와 같습니다.”
연나라 왕이 말했다.
“그대는 다시 예전의 관직에 오르시오.”
그리고는 소진을 더욱 후하게 대접했다.
연나라 이왕의 어머니는 문후의 부인으로 소진과 정을 통했다. 이왕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소진을 후하게 대접했다. 그러나 소진은 언젠가 주살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연나라에 있으면 연나라를 천하의 강국으로 만들 수 없지만, 제나라에 있으면 연나라는 반드시 강국이 될 것입니다.”
이왕의 허락을 받은 소진은 연나라에서 죄를 지었다고 소문을 낸 뒤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선왕은 그를 객경으로 대우했다. 제나라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하자 소진은 궁궐을 높이 짓고 정원을 크게 만들어 민왕의 품위가 드러나게 했다. 이는 제나라를 궁핍하게 하여 연나라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연나라 이왕이 죽자 쾌가 등극했다. 그 후 제나라 내부 중에는 소진과 왕의 총애를 다투는 자가 많았다. 결국 누군가가 자객을 보내 소진을 죽이려 했으나 중상만 입히고 달아났다. 죽음을 앞두고 소진이 말했다.
“신이 죽거든 신을 거열형으로 다스려 저잣거리의 모든 이들에게 조리 돌리시고,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모반을 했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저를 찌른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제나라 왕이 그의 말대로 하자 과연 소진을 찌른 자가 나타났다. 왕은 그를 주살하게 했다. 연나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가 소진의 원수를 갚는 방법이 너무 지나치구나.”
소진이 죽은 후 연나라를 위한 소진의 계략이 모두 드러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나라는 연나라를 원망하며 미워했다. 이에 연나라가 몹시 두려워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소진은 첩자의 누명을 쓰고 죽었기에 천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고 그의 술책을 배우기를 꺼려했다. 소진의 사적에 대해서는 항간에 말이 많다. 생각건대 이는 다른 시대의 비슷한 사건을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붙였기 때문이다. 소진이 초라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뜻을 세워 여섯 나라를 합종하게 된 것은 그의 지혜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음을 말해 준다. 나는 그의 사적을 시대순으로 서술하여 그대에게만 악평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송하훈 기자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