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편, 응제왕(應帝王)
때로는 스스로 말(馬)이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한다.
설결이 스승인 왕예에게 4번이나 물었으나 왕예는 그때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설결은 왕예의 대답에 대해서 무척 기뻐했다. 왕예의 솔직 담백한 대답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스승인 포의자에게 가서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포의자는 왕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느냐? 성천자(聖天者)라 불리는 유우씨만 해도 옛 제왕인 태씨에 미치지 못한다네. 물론 유우씨가 인덕(人德)으로 해서 사람들을 감화 시키려했고 그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가 잘잘못을 가리고 있다는 증거일세. 그에 비해 태씨는 누가 자기를 말로 여기든 소로 여기든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잠을 자도 느긋했고, 깨어나서는 서두르지 않았다네. 무지(無知)의 지(知), 무위(無爲)의 덕(德)을 갖추었기에 인위적인 세계에 휩쓸려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네.”
일중시(日中始))의 제자 견오가 미치광이 접여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접여가 물었다.
“지난 번에 일중시가 자네에게 어떻게 가르치더냐?”
견오가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임금되는 사람은 솔선수범하여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 나가야 만이 백성들의 추앙을 받아 천하를 다스려 나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를 만들면 백성들이 이를 듣고 스스로 가르침에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접여가 대답했다.
“그것은 덕을 속이는 것이다. 세상을 그렇게 다스린다는 것은, 마치 한 줄기 내를 파 놓고, 온 바다의 물을 모두 거기로 흘려보내려고 한다든가, 한 마리의 모기로 하여금 태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인은 외면적인 법이나 제도를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하지 않고 먼저 자신의 천성을 제대로 키워서 백성들에게도 각각 자신에 맞는 일을 하게 한다.
성인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저 새를 보라 새는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가야 화살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또 생쥐는 사당(祠堂)언덕 밑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지어야만이 자기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새나 들쥐마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살길을 다 알고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견오는 증시의 말이 옳은 것으로 생각 했는데. 그것은 새와 생쥐만도 못한 생각이다.
천근이 은산 남쪽에 노닐다가, 요수의 언덕에 이르러 우연히 무명인을 만났다.
한눈에 비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린 천근은 무명인에게 말을 걸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물러 가시오. 어찌 그리 말 같지 않는 질문을 하시오? 나는 지금 조물주와 노니는 중이요. 놀다가 싫증나면 망묘(莽眇)의 새를 타고 우주 밖으로 나가 무하유의 고을(허무의 세계)과 광란의 들에(멀고 넓은 들) 가서 실컷 놀려 하오. 그런데 당신은 세상을 다스리는 일 따위로 내 마음을 건드리고 있는 거요.”
그러나 천근은 단념하지 않고 거듭 가르침을 청했다. 무명인은 마지못해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마음에 있는 일체를 버리고 무심으로 돌아 가시요. 만물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고 인위적인 노력을 모두 버리시오. 그러면 천하는 저절로 잘 다스려 질 것이요.”
진짜 현명하고 어진 성왕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양주가 노자에게 성왕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하고 말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민첩하고 박력이 있으며 용기가 있다. 모든 것을 훤히 꿰뚫어보고 머리도 좋다. 이런 사람이 열심히 도를 배우면 성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자가 대답했다.
“성인과 비교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잔재주로 고달프게 일만 하는 종에 불과하다네. 공연히 몸만 지치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지. 호랑이나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민첩한 원숭이와 너구리를 잡는 사냥 잘하는 개는 사냥 잘하는 재주 때문에 마침내 목줄에 메이게 되는 경우와 같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성왕과 비교 할 수 있겠는가?”
양주가 얼굴빛을 꾸미면서 다시 물었다.
“성왕의 다스림은 어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성왕의 다스림이란 아침 이슬처럼, 그리고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백성들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라를 다스린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왕의 이름을 들먹이지도 않고 일이 잘 되는 것이 마치 자기들이 잘해서 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성왕은 무엇을 해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적을 세우고도 자기가 했다고 자처하지 않는다. 자기의 공적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자기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물을 기르고 은혜를 베풀어도 백성들은 성왕이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천하를 다스리고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데도 만물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기쁘게 하고, 자신은 어느 것에도 소속되지 않는 허무에서 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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