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 열전(孟嘗君列傳)(1)
작품설명 : 맹상군은 제나라 종실 대신이었던 전영의 서자로 빈객과 선비들을 좋아하였다. 전국시대 후기에 사공자라고 불리던 이들이 강력한 금권과 군왕과 수많은 빈객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제왕과 비슷한 권세를 누렸는데, 맹상군 역시 현사들을 좋아하여 3천 여 명의 빈객들을 거느렸다. 이들 빈객들은 실력자에 기생하며 지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주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맹상군은 검을 악기로 삼아 노래한 종환을 비롯해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잘 흉내 내던 빈객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탈출하기도 했다.
맹상군은 이름이 문(文)이고 성이 전(田)이다. 그의 아버지는 정곽군 전영(田嬰)으로, 제나라 위왕의 막내아들이자 선왕의 이복동생이다. 전영은 위왕 때부터 관직에 나아가 정사에 관여했으며, 추기·전기와 함께 장수가 되어 한나라를 구하고 위나라를 공략했던 인물이다. 나중 추기와 전기가 군왕의 총애를 다투게 되자 추기가 전기를 모함했다. 이에 겁을 먹은 전기는 제나라 변경의 한 읍을 기습했으나 실패하여 달아났다.
때마침 위왕이 죽자 선왕이 즉위했다. 선왕은 전기가 추기에게 모함 당한 억울한 사정을 알고 있는 터라 그를 다시 불러들여 장수로 삼았다. 선왕 2년, 전기는 손빈·전영과 함께 마릉에서 위나라를 격파하여 태자 신을 사로잡고 장수 방연을 죽였다. 선왕 7년 전영은 한나라와 위나라에 사신으로 가 두 나라를 제나라에 복종케 했다. 전영은 한나라 소후와 위나라 혜왕이 동아 남쪽에서 제나라 선왕을 만나 서로 화친하게 한 다음 돌아갔다. 이듬해 전영은 다시 위나라 혜왕을 견 땅에서 회맹했다. 그해 위나라 혜왕이 죽었다.
선왕 9년, 전영은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제나라 선왕과 위나라 양왕은 서주에서 만나 서로 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일을 알게 된 초나라 위왕은 이것이 전영의 계략인 줄 알고 전영을 몹시 미워했는데, 그 이듬해 초나라는 서주에서 제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사신을 보내 전영을 추방하려 들었다. 이에 전영이 장추를 보내 초나라 위왕을 설득하자 위왕이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전영이 제나라 재상이 된 지 11년 만에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했다. 민왕 3년, 전영은 설(薛) 땅에 봉해졌다.
전영은 아들이 40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서 신분이 천한 첩에게서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문(文)이고 5월 5일에 태어났다. 전영은 아들의 생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5월에 낳은 아이는 키워서는 안 되오.”
그러나 그 첩은 전영 몰래 키웠다. 훗날 아들이 전문이 장성하자 전문에게 형제들을 따라 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했다. 전영은 전문을 만나자 크게 노하여 그의 생모를 꾸짖었다.
“내가 이 아이를 버리라 했거늘 임자가 남몰래 키운 것은 무슨 까닭이요?”
그러자 전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이는 키우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5월에 태어난 아이는 키가 문에 닿을 만하면 부모를 헤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인명은 하늘에서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문에서 받는 것입니까?”
진영은 대답할 말이 궁색해졌다. 전문이 말했다.
“인명이 하늘에서 받는 것이라면 아버님께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명이 문짝에서 받는 것이라면 문을 높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됐다. 그만 하거라.”
얼마 후 전문은 기회를 엿보아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라 부릅니까?”
“손자라고 한다.”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 부릅니까?”
“현손이라 한다.”
“현손의 손자는 무엇이라 부릅니까?”
“모르겠다.”
전문이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제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오늘날까지 세 분의 왕을 모셨으나 제나라 땅은 더 넓어지지 않았고, 아버님 자신은 만금의 재물을 쌓았으나 문하에는 한 사람의 현인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자는 ‘장군의 가문에서는 반드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의 가문에서는 반드시 재상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실들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치맛자락을 끌고 다니지만, 이 나라의 선비들은 거친 베옷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실들은 좋은 쌀밥과 고기에도 싫증을 내고 있으나 선비들은 겨조차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나라의 형편이 날로 어려워지는 것조차 잊고 더욱 재물을 모아 아버님께서도 알지 못하는 자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하십니다. 소자는 그 점이 이상합니다.”
이에 전영은 전문을 장하게 여겨 그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빈객을 접대하도록 했다. 그러자 빈객들이 날로 늘어 갔으며 전문의 명성 또한 제후들 사이에 높아 갔다. 제후들이 사자를 보내 전문을 후계자로 삼도록 청하자 전영이 허락했다. 전영이 죽자 그의 시호를 정곽군이라 했다. 이어 전문이 설 땅의 영주가 되니 그가 바로 맹상군이다.
맹상군은 설 땅에 있으면서도 제후들의 빈객을 불러들였는데, 그중에는 죄를 짓고 도망친 자도 있었다. 맹상군은 가산을 팔아 가면서까지 그들을 후하게 대접했으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다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 수는 수천 명이나 되었는데, 맹상군은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자신과 동등하게 대해 주었다.
맹상군은 손님과 얘기를 나눌 때면 항상 병풍 뒤에 기록하는 사람을 두어 대회 내용이며 손님의 친척과 거처를 적게 했다. 손님이 돌아가면 맹상군은 즉시 사자를 보내 그 친척을 찾아가 예물을 주었다.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을 청하여 저녁을 대접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등불을 가렸다. 손님은 맹상군에게만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는 것이라 여기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고 했다. 맹상군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음식을 그에게 보야 주었다. 이에 손님은 부끄러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로 맹상군을 찾는 선비가 더 많아졌다. 멩상군은 손님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 대해 주었으므로 손님들은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 생각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이 현명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우 경양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 맹상군을 초대했다. 빈객들은 모두 가지 말 것을 권했지만 맹상군은 듣지 않았다. 소대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이곳으로 올 때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흙 인형에게 ‘넌 비가 오면 당장 무너지고 말거야’라고 하니, 흑 인형이 ‘난 원래 흙에서 났으니 무너져도 흙으로 돌아가지만, 넌 비가 오면 정처 없이 떠내려갈 거야’하고 되받았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 겉은 나라입니다. 당신께서 가셨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흙 인형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맹상군은 진나라로 들어갈 계획을 접었다.
제나라 민왕 25년, 왕은 마침내 맹상군을 진나라로 들어가도록 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소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은 현인이자 제나라의 왕족입니다. 그를 재상으로 삼으면 모든 일에서 진나라보다 제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진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이에 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는 대신 잡아 가두어 주살하려 했다. 이를 안 맹상군은 소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구해줄 것을 부탁했다. 소왕의 애첩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맹상군의 호백구(여우의 흰 겨드랑이 털로 만든 털옷)를 갖고 싶소.”
맹상군에게는 천금이나 나가는 호백구가 있었는데 천하에 둘도 없는 진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소왕에게 바친 후였다. 난감해진 맹상군은 다른 방도를 찾기 위해 식객들에게 물어보았다. 묘안을 내는 자가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맨 끝에 앉아 있던 도적질 잘하는 식객이 말했다.
“제가 호백구를 구해 오겠습니다.”
그 식객은 한밤중에 개 흉내를 내어 궁에 들어가 맹상군이 소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훔쳐 와 애첩에게 바쳤다. 이에 애첩은 소왕에게 간청하여 맹상군을 풀어주었다. 맹상군은 재빨리 그곳을 떠났는데, 무사히 국경을 벗어나기 위해 통행증을 고치고 이름을 바꾼 뒤 한밤중에 함곡관에 당도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준 것이 후회되어 그를 찾았지만 이미 달아난 후였다.
맹상군은 함곡관까지 왔지만 진나라 법에 닭이 울어야 관문을 연다는 규정이 있었으므로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는데, 일행 중 말석에 있는 한 빈객이 닭 울음소리를 내자 부근의 닭들이 따라 울었다. 한식경이 지나자 부근의 닭들이 따라 울었다. 그리하여 맹상군 일행은 마침내 관문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식경이 지나자 과연 진나라 병사들이 맹상군을 뒤쫓아 관문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맹상군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맹상군이 처음에 좀도둑과 닭울음소리를 내는 자를 빈객으로 받아들였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그 두 사람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맹상군이 곤경에 빠지자 결국 두 사람이 그를 구해 낸 것이다. 그 후 빈객들은 더욱 마음을 다해 맹상군을 따랐다.
제나라 민왕은 맹상군을 진나라에 보낸 것을 몹시 후회했다. 민왕은 맹상군이 돌아오자마자 그를 재상으로 삼고 모든 정사를 그에게 맡겼는데, 맹상군은 진나라를 몹시 증오했다. 그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것을 기회로 맹상군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군사와 군량은 서주에서 빌리기로 했다. 그러자 소대가 서주를 대변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은 제나라의 힘을 이용해 한나라와 위나라를 도와 9년 동안이나 초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리하여 완과 섭의 북쪽 땅을 빼앗았고, 한나라와 위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를 치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더욱 강대하게 될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남쪽으로는 초나라의 위협이 없어지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에 대한 근심이 사라지면, 결국 제나라가 위험해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제나라를 얕잡아보고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렇게 되는 것은 공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공께서는 서주와 진나라가 좋은 관계를 맺게 하십시오, 그리고 진나라를 치지도 마시고 서주에서 무기와 군량을 빌리지도 마십시오. 공이 함곡관까지 가더라도 진나라는 치지도 마시고, 서주를 통해 공의 마음을 진나라 소왕에게 이렇게 전하십시오. ‘설공 맹상군은 진나라를 쳐 한나라와 위나라에게 득이 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공이 진나라를 치려고 하는 까닭은, 폐하께서 초나라 회왕을 설득하여 초나라 동부를 제나라에게 바치게 하고, 진나라가 회왕을 풀어 주어 진나라와 제나라가 서로 화친하려는 것입니다.’
공께서 진나라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면, 진나라로서는 패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다가 초나라 동부를 떼어 준 대가로 제나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으니, 흔쾌히 화친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초나라 왕도 진나라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어 제나라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나라는 동쪽의 땅을 손에 넣게 되어 더욱 강대해질 것이고, 공이 다스리는 설 땅은 대대로 안전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강대한 태세로 삼진의 서쪽에 있으면, 삼진은 제나라를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설공 맹상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한나라와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에게 사절을 보내게 하고, 한나라 · 위나라 · 조나라가 진나라를 치는 일이 없게 했으며, 서주에서 군사와 무기도 빌리지 않기로 했다. 당시 초나라 화왕은 진나라에 억류되어 있어 맹상군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를 석방시키려 했으나 진나라 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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