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공격에 강하고 약자는 수비에 약하다
평원군 · 우경(平原君虞卿列傳) (2)
우경(虞卿)은 유세객이다. 그는 짚신을 신고 삿갓을 쓴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조나라 효성왕을 설득했는데, 첫 배알에서 황금 백 일과 흰 옥 한 쌍을 하사받았고, 두 번째 배알에서는 조나라 상경에 제주되었다. 그래서 그를 우경이라 불렀다.
조나라는 진나라와 장평에서 만나 힘을 겨루었지만 그만 패하고 도위까지 한 명 잃었다. 조나라 왕이 누창과 우경을 불러 말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 싸움에서 패하기도 했지만 도위까지 한 명 잃었소. 과인은 가볍게 갑옷만 걸친 군사를 보내 적을 기습코자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누창이 말했다.
“그것은 이로울 게 없사옵니다. 큰 인물을 사자로 보내 화친을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옵니다.”
우경이 말했다.
“누창이 화친하자고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군사가 패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친의 주도권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왕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 군사를 깨트릴 것이라 보시옵니까?”
왕이 말했다.
“그렇소. 진나라는 힘을 다해 조나라 군사를 깨트리려 할 것이오.”
우경이 말했다.
“그렇다면 신의 의견을 들으시고 초나라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값진 보물을 바치시옵소서. 두 나라는 분명 그 보물을 얻기 위해 우리 사신을 받아드릴 것입니다. 조나라의 사신이 초나라와 위나라로 들어가면 진나라는 천하가 합종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진나라와 화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나라 왕은 우경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평양군과 상의하여 화친하기로 하고, 정주를 진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조나라 왕이 우경을 불러 물었다.
“과인은 평양군에게 명하여 진나라와 화친하도록 했고, 진나라는 이미 정주를 받아들였소. 경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경이 대답했다.
“화친은 실패할 것이며 우리 군사는 틀림없이 패할 것입니다. 또한 천하 제후들은 전승을 축하하며 진나라로 갈 것입니다. 정주는 귀인이므로 진나라 왕은 응후와 상의하여 그를 정중히 대접할 것이며, 조나라와는 강화 사절이라는 사실을 천하에 알릴 것입니다. 그리되면 초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화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대왕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세상이 대왕을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화친은 맺어질 수 없습니다.”
진나라의 응후는 과연 전승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 정주를 내보일 뿐 끝내 화친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 조나라 군사는 정평에서 대패하고 한단도 포위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진나라가 한단에 대한 포위를 풀자 조나라 왕이 진나라에 입조했다. 그는 조학을 사자로 보내 여섯 개 현을 바치고 화친을 맺으려 했다. 우경이 조나라 왕에게 말했다.
“진나라가 대왕을 친 뒤 지쳐서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진격할 힘이 있음에도 대왕을 귀히 여겨 진격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진나라는 우리를 치다가 힘을 다 쓴 것이오, 분명 지쳐서 돌아갔을 것이오.”
우경이 말했다.
“진나라는 자신들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공격하다가 지쳐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진나라가 자신들의 힘으로 빼앗지 못한 것을 그들에게 주려고 하십니다. 이는 진나라를 도와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그 때 대왕께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왕이 우경의 말을 조학에게 전하자 조학이 대답했다.
“우경은 진나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말로 알고 있는지요? 만약 진나라에게 진격할 힘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 탄환만한 땅도 떼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쳐들어온다면 대왕께서는 나라 안의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의견대로 땅을 떼어 주기로 하지요. 그런데 그대는 내년에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게 할 수 있겠소?”
조학이 대답했다.
“그것은 제가 장담하지 못합니다. 일찍이 한나라 · 위나라 · 조나라는 진나라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 · 위나라와 가까워지면서 조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위나라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이 대왕을 위해 그동안 화친을 저버려 빚어진 사태를 수습하고, 관문을 열어 교역을 재개하며, 한나라 · 위나라와 똑같은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내년에 조나라만 진나라의 공격을 받는다면, 이는 대왕께서 한나라 · 위나라 보다 진나라를 잘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조학의 말을 우경에게 전하자 우경이 대답했다.
“조학은 ‘화친하지 않으면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쳐들어올 것이고, 대왕께서는 나라 안의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화친한다 해도 진나라가 다시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보장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섯 개의 현을 떼어준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년에 다시 쳐들어오면 진나라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땅을 또 떼어주고 화친하게 될 것이니, 이는 자멸의 책략으로 화친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진나라가 아무리 공격을 잘 한다 해도 여섯 개의 현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며, 조나라가 지켜내지 못한다 해도 여섯 개의 현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지쳐서 돌아갔다면 군사들도 분명 피폐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섯 개의 현으로써 천하의 사람들을 모아 피폐한 진나라를 친다면, 이는 천하에서 잃은 것을 진나라에서 되찾아오는 것이니 훨씬 이롭습니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땅을 떼어 주어 자신을 약하게 하고 진나라를 강하게 하겠습니까?
지금 조학은 ‘진나라가 한나라 · 위나라와 가까워지면서 조나라를 치는 것은,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한나라 · 위나라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왕께서 해마다 진나라에게 여섯 개 현을 떼어 주면서 그들을 섬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성을 모두 내어 주게 됩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땅을 요구해 온다면 대왕께서는 주시겠습니까? 주지 않는다면 이미 주었던 땅은 헛된 것이 되고 진나라의 공격을 자초할 것입니다. 만일 땅을 내어 준다면 나중에는 주려고 해도 줄 땅이 없게 됩니다.
‘강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자는 수비에 약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가만히 앉아서 진나라가 하자는 대로 하면 진나라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일이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점점 강성해지는 진나라가 점점 약해지는 조나라의 땅을 떼어가는 것이니, 그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대왕의 땅은 한정되어 있고, 진나라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한정된 땅을 가지고 한없는 탐욕에 응한다면 결국 조나라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나라 왕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누완이 진나라에서 왔다. 조나라 왕은 이 일을 누완과 상의했다.
“진나라에 땅을 떼어주는 것이 좋겠소, 떼어주지 않는 것이 좋겠소?”
누완이 사양하며 대답했다.
“신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 해도 그대의 생각을 말해 보시오.”
누완이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공보문백(公甫文伯)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병으로 죽게 되자 이를 슬퍼하여 규방에서 자살한 여인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어찌 울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인인 공자가 노나라에서 쫓겨났을 때 내 아들은 공자를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가 죽자 두 여자가 자살을 했다니 내 아들은 분명 덕이 있는 자에게는 박정하고 여자에게는 다정했음이 틀림없다,
같은 말이라도 어머니가 하면 어진 어머니라고 하겠지만, 처가 하면 투기가 심하다고 합니다. 말의 뜻이 같아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생각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저는 진나라에서 온 자 얼마 되지 않습니다. 땅을 떼어 주지 말라고 하자니 좋은 계책이 아닌 듯 하고, 땅을 떼어 주라고 하자니 진나라를 위해 하는 말이라 여길 것 같아 저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왕을 위해 계책을 도모한다면 땅을 떼어 주는 것 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는 줄 압니다.”
“좋소.”
왕이 말했다. 우경이 이 말을 듣고 궁으로 들어가 왕을 배알하고 말했다.
“누완의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대왕께서는 땅을 때어 주지 마시옵소서.”
누완이 이 말을 듣고 왕을 배알했다. 왕은 누완에게 우경이 한 말을 전했다. 누완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우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자입니다. 만약 진나라와 조나라가 전쟁을 한다면 천하의 제후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은 강한 나라에 붙어 약한 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조나라 군사가 진나라 군사에게 포위되면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진나라의 전승을 축하하러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땅을 떼어 주고 진나라와 화친하여 제후들을 당황하게 하고 진나라를 달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제후들은 진나라의 노여움을 이용하여 조나라의 피폐를 기회로 조나라를 나누어 가지려 할 것입니다. 조나라는 지금 멸망 직전에 이르렀는데, 진나라의 계책을 누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이것으로 결정하시고 다른 생각은 하지 마옵소서.”
우경은 이 말을 듣자 급히 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누완의 말은 진나라를 위한 것이므로 그대로 하면 위험합니다. 그의 말대로 하면 천하의 제후들은 조나라를 더욱 의심하게 될 것인즉, 어찌 진나라의 마음을 달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단지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천하에 드러내자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땅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나라가 여섯 개의 현을 요구하면 대왕께서는 차라리 그 여섯 개의 현을 제나라에 바치십시오. 제나라는 진나라에게 깊은 원한이 있으므로 대왕에게서 여섯 개의 성을 받는다면 조나라와 힘을 합쳐 서쪽으로 진나라를 칠 것입니다. 제나라가 대왕의 말을 따를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비록 제나라에게 손실을 보지만 진나라에게서 그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나라와 조나라는 진나라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왕의 능력을 과시하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신다면 조나라와 제나라 군사들이 국경을 염탐하기도 전에 진나라는 조나라로 막대한 뇌물을 보낼 것이며, 대왕께 오히려 화친을 청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화친을 청해 오면 한나라 · 위나라는 그 소식을 듣고 대왕을 두려워 할 것이며, 반드시 귀중한 보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리되면 대왕께서는 한 번에 세 나라와 화친하고 진나라와 그 지위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좋소.”
조나라 왕은 우경을 제나라로 보내 왕을 만나 조나라와 함께 진나라를 칠 것을 상의하게 했다. 우경이 제나라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위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누완은 이 소식을 듣고 달아났다. 조나라는 우경에게 성 하나를 봉해 주었다.
얼마 후 위나라가 조나라에게 합종을 제의해 왔다. 조나라 효성왕은 우경을 불러 상의하려 했다. 우경은 입궁하기 전에 평원군을 찾았다. 평원군이 말했다.
“나는 경이 대왕께 합종을 권하기를 바라오.”
우경이 입궐하여 알현하니 왕이 말했다.
“위나라가 합종을 제의해 왔소.”
“위나라가 잘못한 것입니다.”
“나는 아직 합종을 승낙하지 않았소.”
“대왕께서도 잘못한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위나라가 합종을 청한 것을 두고는 위나라의 잘못이라고 하고, 과인이 아직 승낙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과인의 잘못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합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오?”
우경이 대답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함께 일을 도모해 성공하면 큰 나라가 덕을 보고, 실패하면 작은 나라가 화를 입는다고 합니다. 지금 위나라는 작은 나라이면서 스스로 화를 부르고, 대왕께서는 큰나라이면서 복을 사양했으니 대왕과 위나라는 둘 다 우를 범한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합종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좋소.”
효성왕은 위나라와 합종했다. 우경은 위나라 재상 위제와의 관계로 인해 만호우와 재상의 지위도 모두 버린 채 위제와 함께 몰래 조나라를 떠나 대량으로 가서 어렵게 지냈다. 그후 위제가 죽자 우경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곤궁과 우수 속에서 지냈다. 그는 위로는 「춘추」에서 뽑고 아래로는 근세를 관찰하여 「절의」· 「칭호」· 「췌마」·「정모」등 여덟 편의 글을 썼다. 여기에서 그는 나라의 이해득실을 논했는데 이는 세상에 「우씨춘추」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태사공은 말한다. 평원군은 새가 하늘을 높이 날듯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품격 높은 공자였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이치에는 어두웠다. 속담에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라고 했다. 평원군은 풍정의 요사한 말에 넘어가 장평에서 40여 만의 군사들을 잃어버렸고, 도읍인 한단마저도 함락시킬 뻔 했다. 우경은 사태와 정세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조나라를 위한 계책을 냈는데, 아주 주도면밀했다. 그러나 훗날 위제의 일을 측은히 여겨 대량에서 어렵게 지냈다. 우경은 궁핍과 우수 속에서 지내지 않았더라면 책을 써 후세에 그 자신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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