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황토색, 고려청자 비색 표현 “혼신의 힘 쏟아”
한 화가의 화업(畵業) 60년이면 그가 그린 그림들이 빛을 뿜어 후광이 된다. 이 말은 순하고 정직한 표현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광배를 그려본 화백은 실로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안다. 마음의 빛이 화백의 손을 통해 그림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명화는 빛으로 그려져서 빛의 형상으로 빛난다.
소년은 한복 입고 연 날리는 아이를 그려 벽에 붙여 놓고 흐뭇한 웃음을 웃었다. 비료 종이에 크레용이 없어 숱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누가 보아도 소년의 그림 솜씨는 비범했다. 그러나 60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중학교에도 미술선생은 없었다. 가난한 중학생 임춘택은 홀로 미술의 길을 갔다. 금발 머리에 빨강 머플러를 매고 약보를 든 베토벤을 그려 놓고, 그림을 바라보며 춘택은 속삭였다.
“나는 당신의 음악 그 소리까지 그릴 거야. 당신은 악보를 보며 화음을 듣지요. 지금 나도 당신을 그린 그림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 있어요.”
그림귀신이 춘택의 마음에 들어와 미래의 화가를 꿈꾸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화가에 대한 그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그는 지방의 미술 과목이 없는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그림 소재로 보이는 춘택은 스스로 화가 되는 꿈을 단념하고자 마음속 그림귀신을 불러내어 일렀다.
“미안해. 더 이상 너를 마음에 담고 살 수가 없다. 내 처지나 환경에서는 미술대학을 갈 수 없어. 내게서 나가 줘.”
그림귀신은 그럴수록 춘택을 더욱 꼭 붙들었다. 생물 시간에 동물과 물고기 해부도를 그려 숙제를 해 갔다.
“야, 그림 실력이 이 정도면 너 미술대학에 가야겠다!”
생물 선생의 칭찬이 잠재웠던 춘택의 미술대학 진학의 꿈을 다시 일깨웠다.
“그래, 어머니를 설득하고 다시 도전하자.”
춘택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홀로 사는 어머니의 심중을 먼저 헤아리고 심려 끼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술대학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 미술대학 졸업하고 선생하면서 그림을 열심히 그려 훌륭한 화가가 되면 어머니 편히 모실 수 있어요. 미술대학 가는 것 허락하여 주세요.”
어머니는 아들의 길을 막지 않았다. 막을 수가 없었다. 공부방 벽마다, 집 곳곳에 그려 붙인 아들의 그림들에 어머니는 이미 세뇌되었는지도 몰랐다.
“환쟁이 공부가 물감 값이 비싸서 아무니 하는 것이 아니라던데, 그래도 그렇게나 소원이면 막을 수 없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춘택은 데생 그림책을 사다가 수백 번 그렸다.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되었다. 이제 그의 손은 마음만 먹으면 사물에 대한 데생을 무엇이나 그려냈다.
마침내 춘택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들어가 화가 임직순 교수를 만났다. 임 교수는 같은 임씨에 그림솜씨가 제법인 춘택을 드문 제자로 아끼고 사랑했다.
“강진이 고향이라고 했지. 그곳은 영랑 시인이 태어났고, 다산 정약용 선생 마음을 위로하고 키운 곳이기도 하지. 그곳 정기를 받은 자네 그림도 강진의 보배가 되어야 하네.”
색깔의 마술사 임직순 교수의 문하에서 춘택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교 교사를 하며 화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임춘택은 화가로서 개인전 때마다, 또한 수많은 단체 및 초대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구상과 추상으로 나뉘어 평가 되지만,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같은 결론의 비평이 주어졌다. 색의 강렬한 대비가 부조화스러우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파격의 틀이 숨어 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평점이 그것이었다. 그 숨은 틀적인 그림의 완성은 지금도 지속되어 가치의 평가는 신의 몫이 되고 있다.
고희를 넘기고 희수를 바라보는 임춘택 화백. 그는 강진의 황토색, 음식문화의 색, 고려청자의 비색을 그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중학 시절 베토벤의 음색을 그려보였던 그는 강진의 보배로운 색을 그림으로 그려 신령하고 비밀스런 맛을 보게 하고, 그 맛의 냄새까지를 색깔로 보여주기 위해 초등생 마음으로 돌아가 오늘도 그림 연을 그려 띄우고 있다.
황충상 / 소설가
필봉 筆峯 임춘택 林春澤
전남 강진 생 (1942)
강진서교, 강진중, 강진농고 졸업
조선대 문리대 미술과 졸업
구상전 부이사장, 고문
조미회 회장 역임
한국미협 고문
개인전: 예술의 전당 외 4회
수상: 한국미술협회 특별상, 문교부 장관상, 조선일보 사장상, 구상전 3회 특선, 대한민국 근정포장(대통령), 문예한국작가상, 자랑스런 강진상, 강진농고인상
한국문화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 보라매청소년미술대회 심사위원장, 구상전 심사위원, 신미술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장
한국원로작가작품가격 호당최고가
(1호당 100만원) 한국미술협회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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