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도지사 “국내 최초 바둑 박물관 전남에 건립”
3명의 국수 배출한 바둑의 메카
강진-김인 영암-조훈현 신안-이세돌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지난 16일 ‘남도문예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국내 최초의 바둑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6일 전남도지사는 ‘국내의 바둑의 역사, 인물과 대국의 변천, 문화와 경향의 변화, 과학의 침투와 미래의 전망 등 모든 것을 인류에게 보여 줄 국내 최초의 바둑박물관을 전남에 건립하는데 있어 연구용역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전 인류에게 큰 관심을 주었고 충격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사는 “전남은 김인, 조훈현, 이세돌 등 3명의 국수를 배출한 바둑의 메카이고 현재 국내 최강자 박정환도 전남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를 더욱 활성화하고 광주과기원대학과 전남대학교 등 지역 대학의 노력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암에서는 조훈현 바둑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에 있고, 이세돌 기념관은 이미 2008년에 세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김인 국수를 배출한 강진군도 김인 국수 바둑기념관이 세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인 국수는 과연 어떤 인물인지 그의 일대기를 특집으로 싣는다.
김인 국수는 강진읍 서성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강진읍장으로 재직하고 계셨는데, 강진중학교 2학년이던 여름방학 어느 날, 우연히 강진도립병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려고 했을 때였다. 보통 때에는 전혀 이용하지 않았던 길이 아닌 곳이었는데, 병원 앞 벤치에서 두 분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소년 김인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른 채 두 분께서 바둑 두는 것을 넋을 잃고 구경했다.
“네가 바둑을 둘 줄 아느냐?”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한 사람이 물었다.
“네. 조금요.”
소년 김인은 쑥스러워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말했다. 평소 아버지와 형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아온 소년 김인은 나름대로 바둑의 흐름을 알고 있었다.
“그럼 나랑 한 번 두어보자꾸나.”
의사는 소년 김인을 앉혀놓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바둑을 두는 날이 자주 있었고 그 때마다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하루는 아버지가 왜 늦게 집에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강진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둔다는 최경현 씨를 소개해 주었다 그 분한테서 겨울방학 때 한 달간 배웠는데, 그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기왕 바둑을 배우려면 서울로 올라가서 바둑도 배우고 학교도 다니라면서 아들 김인을 서울로 보냈다. 아버지께서 일본유학 때 알게 된 친 구분이 소개서를 써 주셨는데, 그 소개서를 받은 분은 유독 바둑을 좋아해서 한국기원을 출입하고 계신 분이셨다.
재단법인 한국기원은 바둑문화의 창달과 보급, 전문기사의 기예 향상을 목적으로 1954년 1월 8일 사단법인체로 공식 출범한 기원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기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54년 11월 23일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씨가 한성기원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1954년 4월 10일 제1회 승단대회를 개최하고 6월 20일 제1회 입단대회를 개최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간 김인은 김성호 국회의원 집에서 기거하며 지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바둑기사를 업으로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만큼 어렸고, 환경이 그러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을 바에야 바둑에 전념을 하고 바둑공부를 해서 고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한국기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듬 해 전문기사가 된 것인데, 당시 전국에서 2~30명에 불과했으므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문기사란 1단을 의미한 것으로 9단까지 있었고, 봄 가을로 2명씩 한국기원에서 배출했다. 지금은 프로기사라고 하지만 그 때는 전문기사라고 불렀다. 도전해서 15일 만에 전문기사가 된 김인은, 프로라고 해서 생활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생활 걱정을 하지 않고 바둑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한 때는 아마추어 기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마추어 제도도 없을 뿐 아니라 고수들과 경합할 수 없어 프로의 길을 선택한 거였다.
한국기원을 출입하는 노국수란 분들이 전국적으로 몇 분 계셨다 그분들이 오면 김인을 시험 삼아 바둑을 두었다. 그 당시에는 내기바둑을 두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내기바둑을 둘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한편, 김인은 각종 대회에 데뷔를 하면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성적과 함께 자꾸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이제 조남철 선생 말고는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당시 조남철 선생은 모든 바둑 경기를 휩쓸고 있었고, 김인은 우승과 함께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김인은 일반기원엘 거의 다니지 않았다. 한국기원만의 특징이 있어서였는데, 당시 한국기원을 다니는 사람들 중 일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일본기원을 다니며 소위 일본바둑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분들이 김인에게 충고를 해주곤 했다. 일본엘 가게 되면 변모할 수 있으니 일본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김인은 평소 그런 말을 듣다보니 문득 일본바둑의 수준을 알고 싶어졌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바둑을 알아가지고 오자”
이렇게 결심한 김인은 전문기사 4단의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 가게 된 것은 서울 상경 때에도 그랬지만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상경할 때도 3월이었고, 18살 청소년이 일본에 건너갈 때도 3월이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김인은 목곡실(木谷實) 문하로 들어갔는데, 바로 조남철 선생이 그곳 문하생이었고, 바둑계의 거봉 오청원(吳淸源) 선생이 3단을 받은 사례가 있는 가문이었다. 김인은 마음속으로 조남철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렸다.
김인은 그곳에서 한 수 한 수를 배워나갔는데, 1년 반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때 병영문제가 불거지는 바람에 김인은 귀국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국내에 들어온 김인은 자연스럽게 모든 기전을 석패한 후 마지막으로 조남철 국수와 다투게 되었다. 국수전은 동아일보사에 1956년 창설한 대한민국 최초의 바둑기전이었다. 1956년 조남철 5단이 9년간 우승자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때 조남철 국수는 8단이었다. 국수 9기를 연패하는 대업을 이어가고 있을 때 1966년 김인 5단은 3-1로 조남철을 이겨 국수를 쟁취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6단이 된 김인 국수는 67년 윤기현 6단을 3-0으로 이겼고, 69년 조남철 8단을 3-2로 이겼다. 72년 윤기현 7단에게 3-2로 분패, 국수위를 윤기현에게 넘겨주었다. 66년부터 71년까지 6년간 국수의 자리를 지켜낸 것이었다.
왕위전(王位戰)은 1966년 중앙일보사에서 창설한 바둑기보였다. 김인 국수는 1966년부터 1972년까지 7년간 왕위전을 지켜왔고, 그리고 1974년 1년간 왕위전을 석패하여 도합 8년간 왕위전을 지켜오기도 했다.
패왕전(覇王戰)은 1987년부터 서울신문이 주최하는 바둑기전이었다. 조남철 9단이 제1기에서 첫 우승을 이겨 4연패를 하였고, 정창현 7단이 제5기에서 우승한 다음 김인 9단이 제6기부터 제12기까지 7연패를 하였다. 패왕전은 국내에서 세 번째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프로바둑이었다. 또한 1968년 한국일보사가 창설한 명인전에서도 조남철 8단과 겨뤄 3-1로 우승, 제2기를 석권해 무적 ‘김인 시대’를 열었다.
김인 국수는 한국바둑의 여명기를 이끈 조남철 9단에 이어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이 등장할 수 있도록 바둑의 황금시대를 여는데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상 30회 우승, 22회 준우승이라는 우리나라 바둑계에 큰 족적을 이루었다.
1971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김인 국수의 ‘반집방어’, 언저리 역전신승(逆轉辛勝)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지만 이것만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면서 반집 차이로 동아일보 주최 국수위를 6년째 지킨 김인 7단은 대국 후 소박하게 웃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수전의 추이를 지켜본 바둑팬들은 지난 16일 운당여관 특별대국실에서 시종 긴장의 연속으로 이끈 제15기 최종 결승국의 강렬한 인상을 쉽게 떨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2대 2의 팽팽한 스코어로 맞선 김국수와 도전자 조남철 8단의 표정은 모두 필승의 기세로 임한 탓도 있겠지만 그토록 심각할 수가 없었으며 제한시간을 다 썼거나 계가에 혼란을 일으킬 정도의 미세한 국면 등은 근래에 보기 드문 역전보였다.
밤 10시 20분 조 8단이 초읽기에 몰리며 마지막 이백사십사수로 바둑판을 물릴 때까지 김국수는 마음 속으로 패배를 뇌이고 있었으며 조 8단은 승리의 희망을 안고 있었다. 계가 결과는 오히려 김 국수의 반집승. 미심한 두 사람은 복기를 통해 다시 계가를 해보았으나 역시 김국수의 반집 승으로 6연패를 실현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 같은 기사 내용을 통해 국수위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영원한 국수’로 알려진 김인 국수는 2007년 김인 전집을 3권 출간했다. 김인 9단의 자전 해설로 바둑인생을 담은 천-지-인 3권이다. 이 책은 천(天)-지(地)-인(人)으로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3권으로 묶었다. 김인 국수가 명국을 소개한 내용이다. 최초의 공식대국부터 그의 마지막 타이틀전인 1987년 박카스배까지 수록되어 있다. 기보는 김인 국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와 국립 중앙도서관, 한국기원 자료실의 기보를 수집해 김인 국수의 명국만을 구성했다.
강진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김인 국수전 전국규모의 행사를 해오고 있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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