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괴롭다구? 그 마음 한 번 내놔 봐!”
백련사
중국 소림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림사에는 달마가 있었는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 젊은이는 눈이 자꾸만 쌓여가도 되돌아 갈 생각은 않고 달마가 있는 법당만 바라보고 있었다. 달마는 법당에서 참선 중이었다.
밤이 깊어가도 달마는 꿈쩍도 않고 있고, 젊은이 역시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꼬박 날이 샐 때까지 젊은이가 돌아갈 생각을 않자 달마가 문을 열고 물었다.
“그대는 시방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저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럼 신(信)을 보여라.”
달마의 말에 젊은이는 칼을 치켜들고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바쳤다. 마침내 달마는 젊은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팔을 자를 정도의 신(信)이면 능히 깨달음에 대한 열정이 얼마큼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는 신공(神光)이란 사람이었는데, 달마는 혜가(慧可)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혜가는 제자가 되자마자 달마를 졸랐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달마는 이렇게 말했다.
“괴로운 네 마음을 가져 와라.”
“스승님. 그런데 괴로운 마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혜가는 달마로부터 법통을 이어 받을 수 있었다. 혜가는 석가모니, 가섭, 아난, 보리 달마에 이어 법통을 이어갔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큰 의심을 가져야만 큰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한다. 왜 배가 고플까? 왜 여자가 그리울까? 이런 정도의 의심은 낮은 수준이다. 적어도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죽는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의심이라면 죽음조차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스님들은 큰 깨달음, 즉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한다.
보시가 최고의 수행법
수행의 기준은 육바라밀이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육바라밀이야말로 고속도로라는 뜻이다. 청정한 몸가짐으로 계율을 지키는 지계, 아무리 욕된 일도 참고 인내하는 인욕,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치열한 구도자의 정신인 정진,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선정, 세상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는 수행자 자신의 몫이다. 자기수행에 달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보시는 또 다른 수행법이다. 재물이나 지혜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육바라밀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인 보시. 보시는 불교의 가장 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비(慈悲)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가장 크게 외치듯이 불교에서는 자비를 가장 중히 여긴다. 어느 누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선뜻 줄 수 있겠는가? 부자가 더 돈을 안 쓰듯이 누구나 소유욕은 강하게 있기 마련이다.
“갈 때는 삼베 옷 하나 걸치고 갑니다.”
남미륵사 법흥 주지스님은 말끝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그러면서 겨울철이면 김장김치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준다. 백여 명이 동원되는 연례행사이다. 뿐만 아니라 장학금도 해마다 일천만원씩 내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불우이웃,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도 적극 보시해왔고, 어린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운영도 하고 있다. 불사를 하는데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고 있음에도 보시를 게을리 한 적이 없다. 이는 무엇인가? 스님께서는 수행의 한 방법이고 부처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일지암의 초의선사는 불교계 최대의 석학
우선 일지암하면 백련사 여연 회주스님을 떠올리게 된다. 여연 큰스님은 바로 일지암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차의 중흥을 꾀해왔기 때문이다. 차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분주한 여연 큰스님은 어쩌면 초의선사의 화신처럼 느껴진다.
나주 삼향면에서 태어난 초의는 다섯 살 때 강변에서 놀다가 하마터면 급류에 휩쓸려 죽을 뻔 했을 때 한 스님에 의해 구출되었다. 화순 쌍봉사에서 참선에 전념하다가 24세 때 대둔사로 돌아와 연담대사로부터 초의라는 법명을 받았다.
초의는 혜장선사가 스승이었는데, 혜장은 다산과 교류가 있었고, 초의는 승속을 떠나 다산의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성전 월출산 백운별서에 가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 때 다산이 백운동도를 그릴 것을 명해 백운동도를 그리기도 했다. 초의는 추사와도 교류가 깊었고, 홍석주, 신위 등 당대 명사들과도 교류가 깊었던 것은 시문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초의는 다산의 1호제자인 황상과도 교류가 깊었다. 41세 때 두륜산 대둔사 뒤편에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간 참선을 하며 <동다송>을 지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묻기를 “스님은 왜 선에만 전념하십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근기가 약하면 선에만 전념하거나 교에만 전념하기 마련인데 이는 실로 둘 다 다름이 없는 것이니 내가 어찌 이것만을 고집하리오. 생각해보면 교에만 전념하는 자가 허물이 있을 수 없으며 선에만 고집하는 자 또한 모두 도를 얻는 것이 아니니라.”고 답했다. 그는 참선을 40여 년간 했으면서도 특별히 선에만 치우치지 않았고 교학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초의는 추사가 71세로 별세하자 73세 때 과천에 있는 영전에 조문하고 돌아와서 일지암에 줄곧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초의로부터 사미계를 받은 자가 40명이고, 보살계를 받은 사람이 70여 명이나 된다.
한국의 달마 경허선사
경허선사의 얘기는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에 잘 나와 있다. 경허선사는 대둔사 혜장선사처럼 불과 20여 세 때부터 동화사에서 대강사(大講師)로 활동했다.
경허 선사가 해인사 조실로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미친 광녀가 조실방에 들어와 함께 잠자고 법 먹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 광녀는 경허 선사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계속 함께 기거하였다. 이를 본 제자 만공 스님은 조실 스님을 찾으러 온 사람들에게 “지금 스님께서는 주무십니다”하고 돌려보내곤 했다.
며칠 뒤 만공이 문을 열고 조실방을 들어가니 광녀의 다리를 베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만공이 광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문둥병 환자였다. 눈과 코가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었고 손가락도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송장 썩는 냄새까지 나는 것이어서 도무지 어떻게 저런 여자와 한 방에서 지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만공은 자신에게 물었다. 과연 나도 경허선사처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경허선사의 법력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경허선사는 서산 부석사에서 주석할 때였다. 경허선사는 홀로 이따금 밖엘 나갔다 오곤 했는데 사하촌 김 진사 딸과 사랑을 나누었다. 김 진사 딸은 얼마 후 태안반도에 있는 어느 잘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갔다. 어느 날 경허선사는 그녀가 사는 집으로 찾아가 머슴이 될 것을 자청했다. 체격이 좋은 경허선사는 그날로 허락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허선사는 주인 집 새댁과 밀회를 즐겼다. 나중 들통이 나자 주인 영감은 동네 청년들을 불러 모아 안 죽을 만큼 때렸다. 그리고 고기상자창고에 처넣어버렸다. 사경에서 살아난 경허선사는 부석사로 돌아왔다.
“스님! 어찐 된 일입니까? 온 몸의 상처는 무엇이구요?”
경허선사는 껄걸 웃으며 말했다.
“해변에 구경 나갔다가 해풍이 심해 이렇게 되었다네.”
나중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누구도 경허선사에게 묻질 못했다. 도인의 행을 감히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장자불와를 백년 간 해도 도를 통하지 못하면 한낱 땡추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집을 여러 명 끼고 살아도 도만 깨달으면 착한 사람이자 진승이라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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