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사설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면 사람도 말이 없고 물도 평탄함을 만나게 되면 흐르지 않고 조용히 머물게 된다. 이 말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한 말이다. 행정당국과 마찰을 빚은 끝에 한 말이어서 그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공평무사하다면 누가 이렇다 저렇다 할 것인가. 그러나 공평해서 사사로움이 없이 일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다. 연(緣)에 의한 종적(從的) 인간관계에 뿌리를 두거나 힘의 균형에 따라 일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60년대까지의 사회는 같은 마을, 같은 학교 등 지연과 학연이 크게 작용했다. 능력을 앞세우기보다 연이 우선시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공업화가 되고 세계화가 되면서부터 연보다는 능력이 우선시 되어갔다. 재력, 권력, 학력의 능력은 힘의 논리에 따라 ‘힘의 문화’로 작용되었던 것이다. 힘이 우선시 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가진 자와 없는자, 권력을 남용하는 자와 당하는 자, 학력을 내세워 지식으로 군림하려는 자와 못 배워 천한 직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자와의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불평등화가 지속되는 사회이다. 마찰이 지속되다 보니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합리성을 찾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힘의 논리'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힘의 문화는 우리가 지양해야할 목표가 될 수 없다. 정의롭고 올바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좋은 사회는 결코 될 수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것만 같다.
그런데 이제는 ‘힘의 문화’에 ‘연의 문화’까지 보태어져서 흘러가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염려가 된다. 힘과 연이 보태어지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무소불위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힘의 논리’로는 더 이상 합리성, 인간성을 포장하기가 어렵게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가 이제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권위와 권력과 금력이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시민의식으로 인해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 곧 힘과 연의 야합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대도시에는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다. 민주적인 의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현실에서 반드시 힘과 연을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농촌지역은 그 두 가지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결국 ‘힘의 문화’에 ‘연’이 달라붙어 함께 공생하게 되는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화는 당장 이익을 추구할 수 있고 다소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나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물이 결코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이고, 그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카르마(업:業) 반복을 거듭하게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현 시대에서 오히려 과거 60년대 이전인 ‘인연을 중시’여기던 그 때로 되돌아가고 있는 이 현상을 어떤 눈으로 지켜보아야 할까. 이제 기축년 새해에는 모든 군민들이 세상 어디에 내놔도 당당하고 떳떳한 합리적 사고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양하고 추구해야할 성숙된 민주사회이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이미 그는 업의 족쇄가 채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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