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아동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특이했다. 당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천자문(千字文)⌟이 교과서였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문인이었던 주흥사(周興嗣)에 지어졌다는 천자문은, 무제(武帝)라는 황제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 중에서 서로 다른 글자 1천 자를 뽑아 운(韻)을 붙여 한 편의 글을 만들라는 명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었다.
주흥사는 하룻밤 안에 1천자를 가지고 사언절구(四言絶句)의 문장을 만들었는데, 4자 1구로 2백50구의 천자문을 완성하고 나서 머리칼이 하얗게 다 새어버렸다고 전한다. 황제의 노여움을 산 주흥사는 죽어야만 하는 벌을 받게 되었으나 그의 재주를 아까워 한 황제는 하룻밤 사이에 1천자를 가지고 사언절구를 지으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 또는 ⌜백두문(白頭文)⌟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라고 한다.
어쨌든 ⌜천자문⌟은 까막눈을 뜨게 하는 바탕책이었지만 그 내용은 어려워서 쉽게 익혀지지 않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천지(天地)는 현황(玄黃)이고 우주(宇宙)는 홍황(洪荒)이라.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이렇게 시작되는 천자문은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진서(眞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문장인 ‘하늘은 까맣고 땅은 누르다’는 말부터 영 알아먹기가 힘든 대목이었다. 푸른빛의 하늘을 검더고 하고, 땅 역시 푸른빛으로 가득한데도 누르다고 하면 공부를 하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일이었다.
첫 문장부터 이 모양이다 보니 다음 문장 역시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씨줄 날줄이 있는 게 아니라 함부로 건너뛰거나 억지로 끼워 넣는 문장들이 이어지는 게 ⌜천자문⌟이었다.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와서 사의재에서 지낼 때 아동들을 가르쳤는데, 그 때 ⌜천자문⌟을 과감히 버리고 ⌜2천자문⌟을 만들었다. ⌜천자문⌟처럼 여덟 글자마다 운을 달았는데 누구나 한 줄의 문장을 익히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산이 지은 아학편(兒學編)은 첫 머리부터 그랬다.
천지부모(天地父母) 군신부부(君臣夫婦), 형제남녀(兄弟男女) 자매제수(姉妹娣嫂), 즉 가장 가까운 일가친척부터 익히는 내용이어서 한 번 들으면 절로 이해가 될 뿐 아니라 잊혀지지 않았다. 상권과 하권 모드 합쳐 2천자였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 시작한 하권 역시 쉽게 익힐 수 있는 어휘였다.
다산의 가르침은 적중했고 서당 아이들은 공부가 즐거웠다.
이러한 ‘아학편’을 소재로 강진 출신 동화작가 김옥애 씨가 ‘봉놋방 손님의 선물’(청개구리)을 펴냈다. 봉놋방 손님은 강진에 유배를 온 다산을 가리키고 있고, 다산이 살았던 동문밖 주막집의 방을 말한다. 아마도 다산의 1등제자 황상을 염두에 두고 작가는 장편동화를 쓴 게 아닐까 짐작해보는데, 봉주라는 소녀가 등장해 봉놋방에서 지내는 다산을 만나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흘러간다. 봉주는 공부를 몹시 하고 싶은 소녀이고, 그 소녀는 마을 서당의 훈장이 건네준 ‘천자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가 그만 책을 잃어버린다. 그러자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그 무렵 봉놋방 손님인 다산으로부터 ‘아학편’을 받게 된 후 글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김옥애 작가는 “글을 쓰고 나서 정약용 연구가 양광식 선생을 만나려 갔다”면서 “그때 다산이 동문밖주막집 주모에게 반말을 쓰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뒷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당시 다산은 여자의 권리를 주장할 만큼 인권의식이 높아서 누구든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다산의 인품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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