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송하훈 장편소설 십계20

나는 보리호를 몰고 월출산을 향해 달려갔다. 우선 넉 점의 탱화를 전달해 줄 계획이었다.

월출산(月出山).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월출산이지만 남서쪽은 육산(肉山)이어서 사시사철 청류가 흘러내렸다. 이른바 경포대라고 부르는 그 아랫켠에 월남사(月南寺)가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저 관월루(觀月樓)에 계시구만요.”

대웅전 옆에서 기와불사를 접수하고 있는 사무장에게 천수 스님이 계신 곳을 묻자 이층으로 된 한옥 건물을 가리켰다. 예전에 본 적이 없는 한옥 한 채가 날아갈 듯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월루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도 요사채로 보이는 한옥이 웅장한 자태로 틀어 앉아 있었다. 게다가 대웅전, 관월루, 요사채를 구분 짓는 토담이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었다.

널찍한 마루로 된 관월루에서 천수 스님은 열 명도 더 되어 보이는 여보살들에게 둘러싸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상에는 보살들이 너나없이 싸들고 온 과일이며 떡이며 고급과자가 풍성하게 놓여 있었다.

“스님. 이제야 나타났습니다.”

“넉 점의 탱화는 다 되었나 보군.”

천수 스님이 앉은 채로 가볍게 합장을 해보이면서 반갑게 물었다. 가깝게 바라보는 천수 스님의 얼굴은 혈색이 몹시 좋아보였고,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넉 점의 탱화 중에서 신중탱화를 펼쳐보였다. 처음 신중탱화를 그렸을 때 장엄함은 있으나 색채가 강하고 지나치게 무섬증을 준다며 퇴짜를 놓았던 천수 스님이었다.

“스님. 이 넉 점의 작품은 비단에 그리지 않고 한지에 그렸습니다.”

“아니, 왜 한지에?”

“실험적으로 한 것이지만 실은 비단보다 더 오래 갑니다. 천년도 가는 것이 한지입니다.”

“이, 그래요. 그런데 일반 탱화보다는 조금 다릅니다. 어딘가 모르게…….”

천수 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스로 초를 내서 그렸는데요, 아무래도 현실감이 있어 보이는 작품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란스럽게 재잘대던 보살들도 숨을 죽인 채 신중탱화에 눈길을 건네고 있었다. 어떤 보살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앉은 채 합장을 해보이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한참 동안 바라보던 천수 스님이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는데, 나머지 석 점의 탱화인 지장보살도, 아미타불도, 산신도까지 훑어 보고난 천수 스님이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놓으며 말했다.

“이제 점안식을 제대로 해야겠어. 각급 기관단체장 및 지역 유지들을 죄 모시고 말이야. 특히 이번에는 사암연합회에 연락해서 모든 사찰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

점안식을 거창하게 할 모양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천수 스님이 앉아 있는 벽에 ‘壹千萬 원 보시, 불교신도회 연합회장 000’이란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불교신도회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천수 스님이 갑자기 진지해지면서 말했다.

“월남사에는 보물이 두 점이나 있다구. 월남사지(月南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과 월남사지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그것인데, 지금까지 보호구역이다 해서 사방 5백 미터 이내에는 건축물을 못 짓게 규제를 했었지. 겨우 민간인 집을 조금 개축해 부처님 한 분 달랑 모셔놓고 궁색하게 명맥만 이어가고 있길래 내가 나섰지.

······보물이 두 점이나 있는 곳에 절이 없다니 그게 말이라도 되는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만 하면 뭘 하느냐구?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될 말이지만 오늘 날 위정자들은 그저 큰소리를 내는 곳만 귀를 기울이고 있어. 법능 화사도 생각해 봐. 같은 월출산 아래에 있는 무위사(無爲寺)는 날로 만화방창 큰 절이 되어가고 있는 반면, 고려시대 때 지어진 월남사는 빈 절터에 보물이랍시고 두 점 정해놓기만 하면 뭘 하느냐구.

물론 무위사에도 보물과 국보가 있지.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도는 조선시대 불교벽화의 보고(寶庫)라는 것 쯤은 나도 알아. 그 뒷면의 수월관음도, 좌우측벽의 설법도와 아미타래영도, 그 위쪽으로 있었던 오불도, 비천도, 공양화 등 다양한 벽화가 있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벽화들은 모두 보존각에 모셔다놓고, 그것도 부족해 성보박물관까지 만들어 국보와 보물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어쩌자고 월남사는 방치한 채 천년 세월을 보내고 있느냐구. 그래서 나는 한국 불교를 위해 분연히 일어선 게지. 군수부터 찾아가 문화재, 문화재 하지 말고 그 규제부터 풀어라, 악을 좀 썼지. 그런 다음 청와대며, 문화관광체육부며, 문화재청이며 할 것 없이 민원을 넣기 시작했어. 왜 우리 불교를 죽이느냐, 왜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을 방치하느냐, 여러 차례 민원을 보냈더니 드디어 반응이 오더군. 월남사는 그렇게 해서 세워지게 된 거야.”

천수 스님이 의기양양하게 거품을 물었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점안식 때 오라구, 초청장을 보낼테니까.”

합장을 하고 막 돌아서는데 천수 스님의 말이 다시 목덜미를 붙들었다.

“감사패를 준비해 놓을테니까 꼭 와야 돼.”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아직 단청의 물감도 마르지 않은 일주문 밖으로 나왔다. 보리호에 시동을 걸고 산문을 벗어나려고 했을 때 걸망을 맨 스님 한 분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버스 정류장이나 버스 타는 곳까지만 태워주시오.”

내가 운전석에 앉은 채로 합장을 해보이자 스님이 훌쩍 올라탔다.

“월남사에서 나오시던데 혹 월남사 스님이십니까?”

“실은 월남사가 복원되기 전에 천수 스님이 여염집 하나를 사서 부처님을 모시게 했는데, 겨우 월남사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지요. 그 무렵 난 경상도 합천의 어느 깊은 토굴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수 스님이 이곳에서 지내도록 배려를 해 한 오년 잘 지내다가 갑니다.”

“그럼, 이제 어디로······?”

“예. 다시 합천에 있는 토굴로 가야겠지요. 마침 백련사 청년회에서 용혈암 복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한다기에 좀 도와주려고 읍내에 나갑니다. 마침 오늘이 서명운동을 하는 날이어서······.”

용혈암이라? 그렇다면 아예 없어진 암자 하나를 복원하겠다는 말인가? 그런데 서명운동은 또 무슨 말인가.

“그게 아니구요, 용혈암은 고려시대 백련결사의 중심도량이었던 백련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연동굴을 말하지요. 완전히 천연동굴인데 그 동굴에서 청자불두가 출토되는 등 최근에 관심이 많아졌지요.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가 임종한 곳이고, 그 분의 으뜸제자였던 정명국사(靜明國師) 천인(天因),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진감국사(眞鑑國師) 무외(無畏) 등 네 국사가 그 곳에서 주석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산 정약용 선생도 다산초당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실 때 해년마다 용혈암을 찾아가곤 해서 불교성지 쯤 된다고나 할까요.”

“그럼 그 용혈암이 훼손되기나 했답니까?”

“용혈암 자체는 훼손이 안 되었지만 이미 좌청룡은 날개가 꺾인 듯 없어진 상태이고, 무엇보다도 분진 때문에 사람이 접근을 할 수 없는가 봐요. 그래서 그 광업소의 피해를 공동조사 해본다고 하는 것이지요.”

과연 공용터미널 앞 광장에는 천막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아래에서 젊은 스님 한 분이 핸드마이크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용혈암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 용혈암을 살립시다! 여기에 오셔서 서명을 해 주십시오!”

그러자 무슨 난데없는 서명운동일까 의아해 하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몰려와 공용터미널 바람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서명을 했다. 바람벽에는 10장 정도의 사진이 잇대어 붙어 있었는데, 용혈암 정경과 분진을 일으킨다는 광업소 사진이었다. 사진 속 용혈암은 거대한 절벽 아래 바위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천둥과 함께 내린 비가 개이고 나니 浦天曉色雷雨霽

깨끗하게 씻긴 산에 안개가 걸쳤네. 蕩滌山巒氛霧翳

서늘한 숲 공기 가을날 같은데 林氣凄淸似秋日

구름이 멀리 다리처럼 내리 뻗쳤네. 雲脚悠揚有奇勢

(중략)

사진 곁에는 다산 정약용이 지은 용혈행(龍穴行)이란 시 한편을 소개해 놓고 있었다.

서명을 끝낸 내가 이윽고 천막 밖으로 나오자 월남사 스님이 뒤따라 걸어오며,

“오늘 마침 추모제도 한다니까 함께 가실까요?”

하고 권했다. 나도 이제 넉 점의 탱화를 건네 준 이상 조금도 거칠 것이 없는 몸이었다.

“가도 되겠습니까?”

“가서 용혈암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 흔한 동굴이 아니어서 절로 신심이 생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가 보리호에 올라타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중요한 불교문화재를 어쩌자고 지금까지 방치해 두었는가 모르겠어요. 용혈암은 불교성지이기 전에 관광지로서도 손색이 없은 데 말이지요. 불교계에서도 문제이지만 행정당국에서도 문제지요. 개발을 해서 관광상품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방치하다 못해 광업소에 허가를 내준 바람에 아예 사라질 위기까지 자초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계가 나선 것이군요.”

월남사 스님이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란 분은 다산의 외손자인데, 다산의 의발을 전해 받았다는 인물이지요. 다산의 경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계승하였으니 대단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바로 이 분 또한 용혈암에 대한 시를 지었다는 것이지요. 소승이 한 번 외워보리다.

용 바위 험해 공중에 솟고 龍岩崱屴勢凌空

용 떠난 빈 바위 산바람 분다. 龍去岩虛山自風

둘러친 진린(陳璘:임진란 때 중국 장수) 섬 푸르고

樹廻陳璘孤島碧

이끼 낀 천책(天頙:고려 때 스님) 옛터 높다.

笞滋天頙舊臺崇

구름이 내려와 등나무 감싸고 靑霞欲庳藤稍外

대낮에도 동굴은 추위가 있다. 白日生寒石洞中

이처럼 교묘함 이처럼 험준한 如此巧奇如此險

하느님 새기고 깎다 지쳤다. 天公雕斲太煩功

이 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묵객들도 용혈암에 대한 시를 지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지요. 뒤늦게나마 복원사업을 벌인다고 하니까 다행스러운 일 아닙니까.”

큰 도로를 버리고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덕룡산 산자락으로 접어들자 이내 분진을 일으킨다는 광업소가 나타났고, 그곳에서 조금 올라가자 용혈암이 얼굴을 보였다.

용혈암은 듣던 대로 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거대한 바위에 구멍이 뚫린 곳이었다. 산 아래로는 섬을 낀 바다가 너붓이 내다보이고 먼 곳으로는 무등산과 천관산이 낮게 내려앉은 안개 속에서 꿈속처럼 떠 있었다. 계곡에서는 바위 틈사이로 청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 위로 붉은 단풍잎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용혈암 앞에는 수십 명의 신도들이 꽉 차 있었다. 그들은 너나없이 용혈암을 바라보며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이윽고 4대 국사에 대한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비닐깔개가 깔아진 그 위에 떡과 과일이 놓아지고 향이 타오르면서 이윽고 목탁소리가 용혈암 주위를 울리기 시작했다.

50여 명의 신도들이 줄지어 선 가운데 삼귀의례가 끝나자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백련사 주지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나더니 신도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 신도님들! 저 아래를 내려다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먼 데 높은 산들이 손에 잡힐 듯 물결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아름다운 곳에서 4대 국사들은 이곳에서 주석하시며 열반을 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주지 스님의 말대로 산(山)과 수(水)가 조응하는 풍광이었다. 신도들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용혈암은 불교의 성지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소중한 문화재이기도 하는 이곳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용혈암이 있는 덕룡산은 용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용의 내장이 모조리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덕룡산 여기저기에 굴을 파서 유리재료를 파먹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좌청룡이 이미 크게 훼손되고 말았는데, 이는 명산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과 똑 같은 것으로 불교의 성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자연유산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

추모제가 끝나고 음복이 시작되었다. 주최측에서는 신도들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두 줄의 김밥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모두 쓰레기를 수거한 다음 쓰레기봉지에 몽땅 밀어 넣고 하산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

“오라버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여강이 담담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충격적인 그녀의 말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답답해서였겠지. 어렸을 때부터 제 맘대로 산을 뛰어다녔던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라구. 그동안 남자 간호사들과 날마다 다툼을 벌였다고 하더군.”

“왜요?”
“뻔하지. 자신을 풀어달라고 난리를 피웠겠지. 미치지 않은 사람을 왜 가둬놓고 꼼짝도 못하게 하느냐구 말이지.”

그녀는 마치 통지문을 낭독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차라리 형무소엘 갔더라면 자진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공포탄을 쏜 죗값을 그대로 받았더라면 나중 출소해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살아갔을 것이었다.

“장례식장이 어딥니까?”

나는 그녀에게 물은 뒤 곧장 출발했다.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새로 지은 건물답게 빈소는 넓었지만 조문객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스무 사람 정도가 옹기종기 앉아서 귓속말을 하듯이 조용조용히 말을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또 다른 빈소는 복도가 꺾어지는 지점부터 조화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지만 그의 죽음은 쓸쓸함으로 채워진 분위기였다.

그러나 빈소만큼은 영정과 제물이 차려져 있고 향로에서 서너 개의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대로 격식이 차려진 모양새였다. 어린 상주를 대신해서 여강이 검은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다른 문상객이 없는 터라 기다리고 말 것도 없이 곧바로 영정 앞으로 다가가 우선 향부터 피어올린 후 두 번 절을 올렸다. 영정 안의 사진은 세상 걱정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사냥을 끝낸 직후에 찍은 모습 같았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오라버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이 불러서 저 세상으로 간 것 같애. 아마도 다시 태어나면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짐승들이 불러서 죽었다는 그녀의 엉뚱한 말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 말을······?”

“그렇지 않고서야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답답한 생활이었다 할지라도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인데······.”

모질음을 쓰면서도 그녀는 타잔의 죽음을 그렇게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잔은 개를 잘 길들였지만 여자는 잘 길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오지 않았을까요?”

하마터면 내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불쑥 나올 뻔 했다. 아닌게아니라 타잔이 개를 좋아하고 개를 훈련시키는 데는 남달랐다. 개가 사슬을 끊고 흑염소 몇 마리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죽였을 때, 그는 개를 조금도 나무라지 않았다. 또 개가 새끼를 낳았을 때 회진댁이 조금이라도 소홀히 대하면 당장 불벼락을 내리던 타잔이었다. 사냥을 나가서 개가 다치면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치료에 온 정성을 다했던 그였지만 집안 단속은 제대로 하지 못한 위인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짐승이 불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그 때 산 아래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농부 두 사람이 내 등 뒤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조문을 온 사람들이어서 비켜주려고 벌떡 일어났을 때 먼저 온 황대장이 나를 불렀다.

“자, 이리 않으시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옆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베레모 사내도 바늘에 실이 가듯 곁에 앉아 있었다.

“대체 이 일이 뭔 일인가 모르겠소.”

황대장이 큼직한 종이컵에 냉수 따르듯 소주를 가득 채워 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소주 마시는 일 외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눈치여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 잔, 더 하시오. 우리는 이미 여러 병을 마셔뿌럿소.”

황대장은 다시 잔을 채웠다. 그의 말대로 상 위에는 두홉짜리 소주병이 다섯 개나 비워있었다. 그는 내게 그렇게 술을 권하고 나서 영정 앞으로 걸어가더니 풀썩, 나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