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회고록④
공부 날들
초등학교
1954년에 졸업을 했으니 도암 중앙초등학교 30회인 셈이다. 아홉 살 3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다. 키는 좀 작지만 현대여성인 여자 음악선생님이 서울에서 피난을 왔다. 도암에 친척이 있어 도암으로 온 모양이었다. 그 음악선생님에게는 남자만 넷이었는데 큰애와 둘째가 쌍둥이로 정광훈과 정승훈이었다. 애들은 서울 말씨를 썼고 공부도 상당히 잘했으며 쾌활했다. 싸움에는 소질이 없던 내가 3학년 때 사소한 일로 쌍둥이 중 한 친구와 싸움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씨름을 잘했으므로 하나 정도는 해 볼만 했으나 조금 후에 쌍둥이 둘 다 덤비는 바람에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이들은 5학년 때 해남으로 이사를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그런데 196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입학자 명단에 쌍둥이 둘이 들어있어서 확인해보니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은 둘 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
나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란 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인간은 동물이어서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풀과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시냇물과 바람이 노래하며 물고기와 들짐승들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도시에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도시의 어린이들은 자랄 때 아파트의 시멘트 천지와 자동차 물결로 가득 찬 아스팔트, 게임만을 즐기는 컴퓨터와 세상을 한걸음 빨리 익히게 만드는 텔레비전 속에서 생활하고 있질 않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이 4명 중 1명이라고 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생활수준을 가진 미국은 그래도 대부분 가정집이 나무와 풀로 둘러싸여 있다.
어린시절에는 지금처럼 책가방이나 백팩이 없었다.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서 허리에 매거나 대각선으로 어깨에 매고 다녔다. 나는 동생과 달라서 학교 수업 후에는 책보자기를 항상 내동이치고 놀러 다니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학교 성적을 증명해주는 통신표 받는 날만큼은 즐거웠다. 대부분 100점이었고 최고 나쁜 게 90점이거나 95점이었다. 개근상은 별로 많이 타보지 못했지만 매 학기마다 우등상만큼은 내 차지였다. 자연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몹시 예뻐해 주셨다. 체육과 음악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과목이었지만 나이는 어렸어도 씨름 하나는 잘했다. 그래서 학교 대표선수로 강진 관내 체육대회에 자주 출전하곤 했다. 씨름 연습을 할 때는 나보다 세 살이나 위인 수양리 광하라는 선배와 늘 맞잡았다. 졸업할 때 졸업식장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라고 재학생들이 부를 때 속연한 기분이었는데 여학생들은 울고불고 난리였다.
가우도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하던 때의 일이다. 우리는 도암 동쪽 해안에 있는 용산리와 표장리에 가끔 놀러갔다. 표장리 이정일의 집은 바다와 가까웠으므로 바지락, 꼬막, 새우, 숭어 등을 잡는 재미를 즐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일이는 거룻배를 손수 노를 저을 줄 알았으므로 뱃놀이 하는 재미까지 맛볼 수 있었다. 그날도 윤재상, 윤용진, 박근옥, 최정옥이와 나 이렇게 정일이집엘 놀러갔다. 아침 날씨도 따뜻하고 부모님도 집에 안계셨으므로 우리는 노를 들고 정일이배가 있는 바닷가로 나갔다.
가우도는 도암 신기리에서 2-3키로 떨어진 강진만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열댓가구가 사는 섬으로 칠성당이 있을법한 큰나무도 있고 참외와 수박이 달려있는 밭도 보였다. 표장리에서는 4시 방향으로 바다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어서 우리는 정일이배로 쉽게 가우도엘 갔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파도도 잔잔했다. 가우도에서 한참 놀고 돌아가려니까 날씨가 사나워지면서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거룻배는 조그만 목선인데 6명이나 탔으므로 몹시 흔들렸다. 또한 이리저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게다가 바닷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으므로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일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노를 저었다. 바다 중간쯤 다달았을 때였다. 아뿔싸! 노가 꼽히는 통이 그만 조각나버린 거였다. 노를 저을 수 없자 거룻배는 흔들리면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몇 사람의 혁대가 천으로 되어있어 정일이가 혁대천으로 노젓는 통을 동여맸다. 근옥이와 몇 사람은 벌써 훌쩍훌쩍 울고 있었고, 그래도 덩치가 좀 커서 리더격이었던 재상이가 “울지 마, 이 새끼들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겁질린 우리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기도를 미처 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해주셨다. 다행히 표장리로 돌아왔지만 그 후 다시는 그 곳에 가지 않았다. 그 후로 수 없이 많은 어려운 질곡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은혜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내 목숨까지 구해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감사할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무래도 하느님에게 매를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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