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병영면 동성마을
강아례(90)할머니
“예전에 밝은 녘에 쪄놓릉 모를 보면 뱀이 모와 함께 꿈틀대기도 ...
영암이 친정인 강할머니는 열다섯 살 무렵에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어찌된 일인지 위 아래로 있었던 형제간조차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강할머니는 남의집에서 살았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자주 보게 되는 총각이 있었는데, 장흥에서 온다는 그 총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총각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마음에 있었는디, 말수도 적고 든든하게 뵈이고혀서 괜찮겄다 싶었는디······어느날 싸게싸게 웃음서이 말을 걸어오더랑게.”
친해진 두 사람은 달밤에 몰래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횟수가 늘어났다. 결국 동네에는 소문이 나돌았고 열아홉 살 처녀는 스물다섯 살 그 총각을 따라갔다.
“애가 안생긴게 어매가(시어머니) 아들이 미와서 못살어.”
애가 쉽게 안생기자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로 심해졌다. 때로는 중매도 들어오는가 하면 며느리를 앞에 두고 각시를 새로 얻으라며 아들에게 소리를 쳤다.
“애를 못나는 사람도 옆에서 나먼 시샘해서 난다고 어매가 늘 각시를 들이자고 혀도 영감이 마다혀.”
시어머니의 구박은 어찌나 야박한지 며느리가 입는 것 먹는 것 까지도 아까워하더니 나중엔 ‘밥값도 못하는 년을 뭣에 쓸것이냐’ 며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다.
“아들이 말을 안들은 게로 어매가 아들이 미와서 못살어, 손없이 뭣 할거냐고, 그래서 나도 하나 얻으라고 했지, 그러면 일도 같이 나눠서하고 그라재 뭐가 성가시요허고.”
시어머니는 손주가 안생기자 어느 날 점을 보고 와서는 타관 물을 먹어야 애를 낳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후 장흥을 떠나 병영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이가 생겨 2남 2녀를 두었다.
“살림이 보당보당헌게 뭐 하다못해 너물을 뜯을라고 산은 산은 다 더듬고 다녔재.”
먹을 식량도 없는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먼 산까지 다니며 나물을 캐어 팔기도 하지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해서 그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생활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아이들을 아침밥도 먹이지 못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 또한 40이 되던 해부터 시난고난 아프기 시작하면서 도무지 일을 하지 못했다.
“남자가 서둘러야 될 것인디 거시기 헌게 내가 포도시 허고 살았재.”
건강이 나빠진 남편은 술로 살았고, 힘에 부치는 일은 조금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게 밤에도 잘 오도 안허재. 넘들 말 들어보먼 옆에 자주 온다는 사람도 있더만, 그랑가 어쩐가 통 안옵디다.”
타고난 팔자가 자신의 힘으로 안하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팔자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어떤 일도 무섭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하루 내 시키는 대로 일해 왔기에, 오히려 내 살림을 하기 위해 닥치는 일은 어떤 일이고 힘든지 모르게 했다. 며칠동안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일해 줄 것을 담보로 돈을 빌려다 썼고, 사람들은 일 잘하는 것을 알기에 두 말 없이 돈을 빌려주곤 했다.
강할머니는 놉의 생활을 하다보니 대전모드 서슴치 않고 해냈다. 대전모는 새벽 3시-4시에 나가서 당일 심을 모를 찌눈 것 부터 시작해야했다. 꼭두새벽, 사방이 캄캄하다보니 물뱀과 함께 지푸라기기묶는 일도허다 했다. 거머리도 많았지만 그 만큼 뱀이 흔한 세상이었다. 밝은녘에 보면 물뱀이 모와 함께 감겨있는 것을 보아도 섬뜩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번은 대전모를 하러 새벽3시에 나가다가 미끄러졌어. 넘어짐서 허리가 삐긋허더니 인나들 못허게 아파와······눈물이 핑 나오고 일어나들 못허겄는디 앞에 간 사람들은 저만치 감서 안온다고들 허더만. 포도시 찌댄폭 잡고 기어서 갔는디······.”
한 사람에 한 마지기씩 다섯 마지기를 끝내야 하는 일이었다. 기어이 심고 가라는 말에 하루 종일 엎디어서 모심기를 끝내고나니 허리가 펴지지 않았고 눈도 떠지지 않았다.
“사주가 그런가 넘어져 무릎에 독이 받혀 다리가 끊어지게 아픈 적도 있고, 늘 넘어져서 다친 데가 많으요. 그란게 지금은 사방이 아픈데요.”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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