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제목 : 첫사랑 감촉의 기억속에서
강진경찰서 조만종
봄 향기가 훈풍을 타고 주위를 맴돈다. 새소리처럼 재잘거리는 듯한 벚꽃은 터질 듯 말듯하더니 운동회 복주머니 터지듯 한꺼번에 터져 나와 사방으로 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요즘 이러한 풍경은 봄 처녀가 조그마한 바구니 하나들고 봄나물을 캐러 나가는 모습처럼 내 마음도 색동옷을 입은 기분이다.
이러한 내 마음을 살짝 누가 엿보기라도 하였을까. 며칠 전 아침 학창시절 첫사랑이 주는 애틋한 추억을 들추어내게 하는 문자 메세지를 받았다. 여승이 된 그녀의 문자메세지. 갑자기 받아본 비구니 여승의 문자 메시지에 하루 종일 마음이 설렌 날이었다. 그래서 편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렴풋이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서로가 사랑하는 순간, 아니 서로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이 어느 사이 깨져가고 있다고 생각되던 순간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마저 지워버리고 싶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스쳐지나갔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세월 속에서 묻혀버리지만 왜 그리도 더 까마득하게만 느껴지고 있었을까. 그런 의구심도 새삼 가져보았다. 너무도 소중했지만 그 소중한 것을 한 순간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또한 소중했던 것일까. 사랑을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단어하나를 추억 속에 담아 두는 것. 그것일까. 처음부터 생김새부터 완전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게끔 만든 신의 섭리자체가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 내가 너를 또는 네가 나를 기억하는 한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고 열정적인 사랑이 부드러운 선을 그릴 때, 사랑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틈이 생겨날 때, 쉽게 내뱉게 되었던 말.
‘그래, 우린 처음부터 맞지 않았어!’
2004년도쯤에 개봉되어 보았던 영화 이텨널 선샤인에서 남자 조엘(짐캐리)과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했던 장면들도 떠올랐다. 어느 날 그렇게 좋아했던 사랑의 감정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던 장면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고통이라고 생각한 남자 주인공은 자신과 지냈던 여자와의 모든 기억을 정신과 의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지워버린다. 이런 남자에게 배신감을 느낀 여자 또한 남자의 기억을 지우려고 애써간다. 그러나 행복했던 순간과 괴로웠던 순간들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때였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영화였다. 지울수록 특별하게만 느껴지는 기억들. 그래서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한때가 내게도 있었다는 것이 이 나이에 소중하게 느껴진다. 버릴 수가 없어서 너무 많이 아파했던 기억들······너무 아픈 상처는 참 오래도 갔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나니 말이다. 미웠던 만큼 간절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으로 파고들어 곪아 있었던 것일까. 이 지독한 사랑과 배신의 흔적을 지금도 지워버리고 싶은 또 하나의 마음은 그렇다면 무어라고 말해야할까.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로 나누었던 삶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기억하며 고이고이 간직하는 것도 사랑의 일부분이라고 그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좋은 기억을 꺼내보기 쉬운 곳에 두고 싶어졌다. 또한 나쁜 기억들은 되도록이면 먼 곳에 감추어 두면서 말이다. 살다보면 어느 날 이처럼 오래된 사랑의 기억을 꺼내보고 싶은 때가 생기니 말이다. 그러나 더 오래 생각할수록 첫사랑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 함께 한 시간들 그 시간들이 그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잊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금 사랑을 하는 사람이나 헤어짐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언제나 앞날은 있으며 그 앞날에 다가올 행복한 시간들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가져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보자. 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을 고이접어 너른 바다의 포용력으로 또 다른 큰 사랑으로 맞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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