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울린 총리의 호소문
인간에 대한 여러 고찰의 결과를 살펴보면, 인간에게는 이기심만이 아니라
이타심의 DNA도 잠재해 있다고 합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인간의 내면에 숨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면부지의 어린아이가 길에서 넘어져 울면, 그 아이를 일으켜 달래주는 마음,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사람의 편에 서서 도와주는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2017년 9월 21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2017년 9월 21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는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 설립문제’였다. 이 총리는 신문에 실렸던 한 장의 사진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주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 사진은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이 특수학교 설립 예정지의 지역 주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대상자는 8만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득수학교 설립은 서울의 경우를 봐도 2002년 한 학교가 개교한 이해 한동안 정체된 상태였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도 2013년부터 추진되어온 프로젝트였지만 지역 주민들의 민원 제기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장애 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를 지어달라며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총리는 이 사진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웠다면서 사진 속 어머니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이 엄마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고통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애아가 조금 가깝게 다닐 만한 학교를 지역 사회가 수용하지 못해 그 아이와 엄머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과 고통을 또 한 번 얹어 드렸습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그 무엇이 그 아이와 엄마를 이 지경으로까지 몰아넣고 있습니까?”
총리는 국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특수학교를 설립하려면 국민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각종 통계와 신문 보도 내용, 그리고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오스트리아의 간호사들, 그리고 아이의 교육을 대한 여러 기관의 연구 결과 등을 언급했다.
“통계를 보면 학교에 가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학생의 비율이 일반 초중고교는 3.2퍼센트이지만 특수 초중고교는 11.6퍼센트입니다. 장애아들이 더 먼 학교를 다녀야 하는 세상은 거꾸로 된 세상입니다. 신문들이 조사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특수학교가 들어선 곳이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집값 변동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내 아이를 장애아부터 멀리 떼어놓는 것이 내 아이를 좋은 사회인으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리라는 교육이론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 아이가 장애아를 배려하고 함께 사는 경험을 갖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훨씬 더 좋다는 것이 세계 공통의 상식입니다.”
대국민 호소를 하면서도 총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하는 절제력을 발휘했다. 지나치게 감정에 기대는 호소는 이 현안의 또 다른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총리의 균형과 절제를 갖춘 호소는 듣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총리가 한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SNS에서 국민들의 지지와 응원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이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은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2020년 3월에 개교했다.
이낙연 총리의 말과 글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지만 감정을 건드린다. 그 정체가 물까. 연설문을 쓰면서 처음에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일단 그의 언어는 단단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유하자면 겨울나무 같다고 할까. 잎이나 잔가지 같은 게 없다. 그러나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생명력이 느껴진다.
내가 이낙연 총리의 연설문을 쓰기 시작한 2017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회식 축사의 초고를 보고 그는 특유의 저음으로 말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골을 넣거나 탁구공을 넘기거나 달리기는 하는 게 어떨 건지요. 타인의 삶에 대해 상상을 하면 남 얘기하듯 쓸 수가 없을 거예요.”
이 총리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장애인들이 운동하고 땀 흘리는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들의 삶을 섬세하게 살피지 않은 미안 반, 장애인들에 대한 공감 반,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보고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의 말과 글이 왜 따뜻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장을 꾸며서 될 일이 아니었다. 현실을 치밀하게 살피는 관찰력과 타인의 삶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생명력을 길어 올리는 비결이었다.
글: 이제이 <다름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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