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여연스님의 茶 고전강의(15회)
투다(投茶)
지난 포법장을 정리하면서 세심한 주의를 했는데도 한 두 군데 그릇된 의역이 있었던 것 같다. 다름 아니라 "兩壺後 又用冷水湯"부분이다. 두 번 차호를 사용한 후가 아니라 두 번 차호를 쓸때 다시 말해 '후(後)'자를 '때'자로 고쳐써야 했다. 또한 '영시포음(令시?布飮)'부분에 장원의 [다록]을 인용했는데 [만보전서]에는 '令布?飮'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布'자의 해석 즉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의 뜻인 나누어 마시는 의미를 놓쳐버렸다. 혼자 마시지 않는 찻자리라면 나누어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세심한 뜻을 지나쳐 버린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주 미세한 해석이 자칫 전체의 문맥을 그르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고전의 문장이나 토는 얼마나 미묘한 것인가. 아무튼 눈밝은 선배들의 지적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 많은 질정을 바랄 뿐이다.
물을 끓여서 찻잎을 넣는 투다는 사실 포법장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인데 이 장에서는 찻잎을 넣는 순서만 간략하게 나오고 있다. 투다장에서 차 분량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그 적당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됐든 본문에 의하면 찻잎을 차호(다관)에 넣는 순서가 있는데 그 차례의 마땅함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다.
차를 먼저 넣고 끓인 물을 뒤에 붓는 것을 '하투(下投)', 끓인 물 즉 탕수를 절반 붓고 찻잎을 넣고 다시 탕수를 붓는 것을 '중투(中投)', 반대로 탕수를 먼저 붓고 뒤에 찻잎을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하고 있다. 봄, 가을에는 중투의 방법으로 차를 울궈 마시고 여름에는 상투, 겨울에는 하투의 법식으로 찻잎을 넣는다는 예기다.
여기서 더 세심하게 덧붙일 의미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찻잎을 넣어 마시는 풍속이랄까 습관이 거의 투다의 법식을 지키지 않고 하투의 방법인 찻잎을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법식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왜 옛 차인인 선인들은 굳이 이런 세심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헤아려 보면 중요한 일일 것 같다. 포법장에 찻잎의 많고 적음, 탕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의 향, 맛, 색의 차별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귀중하게 얘기하고 있던가. 그러하듯이 찻잎 넣는 순서에 따라 차의 향기, 색상, 미묘한 맛이 천차만별로 드러난다. 물을 먼저 붓고 찻잎을 뒤에 넣는 상투의 법식은 차향기의 독특함이 젖어 날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더운 여름철에는 뜨거운 차맛보다 싱그럽고 가벼운 차향기를 선호하는 것이 우리들의 오랜 전통문화의 향유가 아닐까. 반대로 겨울철에는 차뿐만 아니라 마시는 탕 종류의 음식물은 대부분 질은 맛을 더 선는 것이 동양사람들의 음식문화의 패턴이라 할 수 있겠다. 찻잎을 넣고 탕수를 붓는 일이라면 굳이 그 차례가 아니라도 차를 을궈내는 시간에 따라 짙고 옅은 찻물이 나오겠지만, 더 세련되고 미묘한 차의 삼기(三奇)인 색, 향, 미를 얻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가을과 봄에는 계절의 리듬, 라이프 사이클의 순후한 조화에 적의한 방식인 것 같다. 아무래도 색,향,미의 독특함보다 중후한 차의 중정이 우리 차 생활에 어울리기 때문이리라.
늘상 얘기했듯이 차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현묘함이 있어 어떤 것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다도의 모든 것은 버리게 되는 복잡함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아니 각자 개인이 이끌어 가는 삶의 색과 인생의 맛과 인격의 향기를 어떻게 지녀서 그 품위를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노력처럼 차 생활 또한 같은 노정(路程)의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
차 마시는 일(음다)
차를 마시는 일에서는 사람이 적을수록 귀하다고 말하고 있다. 찻자리에 사람이 많으면 소란스럽고, 시끄러우면 아취가 없다. 그래서 혼자 마시는 찻자기를 신성하다고 하고, 두사람이 마시면 그 분위기가 승(勝)하다. 다시 말해 뛰어나다고 하고 서넛이면 그런대로 원만하여 취향대로 괜찮고, 다섯 여섯이면 덤덤하고 차라리 일곱은 보시하듯 나눠 마시는 찻자리로 간주하라는 뜻이다.
차는 아무래도 홀로 마시는 자리에서 최상의 운취가 배어나오는 게 아닐까.
연못에 수련이 피는 날, 이른 봄 산아지랑이가 어리는 날, 비오는 저물어 가는 가을, 하얀 눈송이가 함박꽃으로 쏟아지는 초겨울 산기슭에 낙엽이 지고 호수에 단풍잎 그림자 던지는 날 청자빛 가을 하늘 아래의 찻자리를 생각해 보라. 가슴이 메이지 않는가!
이별의 회한을 안고, 죽음의 길섶 멀리 그리운 이들을 떠나 보내고, 아니 생의 기쁨으로 오는 축제, 그런 날에 생의 열락과 슬픔이 모두 존재의 미학 아니리. 그럴 때 홀로 찻잔에 그 모든 것의 사물을 받아 차를 마신다고 생각해 보자. 가 없는 살아 있음의 확인 아니던가.
그래서 초의 스님의 찻자리는 신선의 꿈으로 펼쳐진다.
明月爲燭兼爲友 白雲鋪席因作屛
竹賴松濤俱蕭凉 淸寒瑩骨心肝惺
惟許白雲明月 爲二客 道人座上批爲勝
밝은 달 불러 촛불로 삼고 아울러 벗으로 하여
하얀 구름 방석 깔고 병풍으로 둘러치니
대숲 스치는 소리와 소나무 파도치는 소리 서늘하게 잦아들면
맑고 청아한 마음 속 저 끝까지 사무침이 간절하여
오직 흰 구름과 가득한 달빛만 차벗이 되니
도인의 찻자리 이보다 더함이 있으리
이런 절절한 풍광의 찻자리에 무슨 언어의 티끌을 묻혀 속되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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