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불의차(井水不宜茶)
《다경》에 이르되
산물은 차 끓이는 물로서 제일 좋은 물이고 그 다음이 강물 속의 물이요 그중 최하위가 우물물이라 말하고 있다. 그 지방 삶의 거처에 가까운 산이 없고 샘물(泉水)이 없으면 봄애 매우(梅雨)를 받아 저수(貯水)해 두어 차 끓이는 물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
‘第一方不近山 卒無泉 惟當春積梅雨’
매우(梅雨)의 물맛은 감화(甘和 · 감미롭고 부드러움)하여서 만물을 길러주는 자양분이다.
‘其味甘和 乃長養萬物之水’
눈이 녹는 설수(雪水)는 맑기는 하나 눈이란 성품이 너무 차가워서 비장(脾臟), 위(胃)에 냉(冷)이 어리고 그래서 그 냉기(冷氣)가 쌓이면 기능이 상하게 된다.
‘雪水雖淸 性感重陰 寒入脾胃 不宜多積’
원문을 있는 그대로 풀어 보면 산천초목 자연이 생성하고 그 생명들이 다투는 땅의 형질에 따라 얼마나 다름 삶의 의식주가 형성되는가를 다시 한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우물물은 최상의 찻물
우리나라에서는 으뜸으로 삼는 물이 우물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다신전》의 내용에서는 ‘정수불의차(井水不宜茶)’라 하여 우물물은 차 달이고 끓이는 물로서는 최하등품이라 적고 있다. 수천 년 이어온 우리 겨레의 삶의 터전에 가장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 우물물인데 말이다.
《다신전》이 원래 중국의 백과사전격인 《만보전서》에서 추출한 문헌이어서 중국의 차문화 풍토일 뿐 우리의 차문화하고는 상이하다. 중국은 산이 깊고 큰 땅이어서 또한 들판이 넓고 광활하다.
그러다보니 넓은 들녘에 수백 리에 걸쳐 산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산이 없는 곳에서 어찌 냇물이 있으며 내(川)가 흐르지 않는데 또한 강물이 있겠는가. 그래서 넓은 들판에 나무판자(널빤지)나 그 밖의 다른 물질로 네모 반듯하게 막아 물을 고이게 하여 여과해서 식용수로 음용하고 있다. 바로 그 모습이 우물 정(井)이고 그러한 물 즉 ‘우물물은 차 달이고 끓이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광활한 노오 가운데 어찌 맑고 깨끗한 생명의 원천인 샘물을 얻을 수 있으리. 만약 우리 나라에서 나오는 우물물이 찻물로서 하등품이라면 그러면 과연 어디서 나오는 물이 좋다는 것인가? 어불성설이다. 우리 나라에서 샘(泉)은 우물물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다신전》의 ‘정수불의차(井水不宜茶)’ 절목 뿐만 아니라 문헌의 여러 곳에서 우리 차문화 풍습과 그 의식들 속의 차 생활이 중국차문화 풍습의 전통과 많은 부분에서 상당히 다르게 표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주거공간인 삶의 터전 가까운 곳에 산이 없어 샘물을 얻을 수가 없으면 봄에 내리는 빗물(梅雨)을 받아 찻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방을 둘러 산이 없고 샘물이 없는 곳이 없다. 매우(梅雨)물에 대해서도 대부분 해석한 문헌에 매실 즉 매화열매가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를 모아 찻물을 쓰고 그 매우(梅雨)물은 만물의 생명을 길어내는 감화의 물이라고 적고 있다. 매실이 익을 무렵이면 봄도 한창 지나 5월이고 늦봄의 계절에 내리는 비가 어떻게 신의 물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매우(梅雨)물은 우기 절기로 우수, 경칩이 지난 새봄이 열리는 때의 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만물이 열리는 이른 봄이 꽃비를 일러 매우(梅雨)라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우물물은 차 달이는데 최상의 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주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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