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란 TV 프로그램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시청자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자연이 주는 신비와 분위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인기가 있었던 ‘전원일기’가 재방송되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시골생활의 향수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강진은 산과 수가 뛰어난 고장일 뿐만 아니라 청정지역이다. 그러므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기에 아주 적합한 고장이다. 더구나 강진은 월출산의 백운별서정원, 보은산의 영랑생가, 만덕산의 백련사, 여계산의 청자도요지 등의 문화유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성이 살아 숨 쉬는 땅이기도 하다.
특히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선생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 권의 위대한 작품을 쓴 까닭으로 다산과 연계된 시설이 많다. 다산청렴연수원이나 다산박물관 등이 그렇다. 강진박물관에서 자비로 대형 정약용 선생 동상을 세운 것도 일반인의 관심 또한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으나 1호 제자였던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인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며 부지런하라는 삼근계(三勤契)를 평생 지켜 나중 조선문단에 이름을 날렸다.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정신으로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그의 작품은 <치원유고>로 남아 있어 현재 다산박물관에 보관 중에 있거니와 이러한 황상의 연구는 일찍이 강진의 향토사학가 양광식 선생의 <다산 제자 황상의 일속산방길>과 다산제자1호 치원 황상이 받은 편지>가 있다. 또 정민 한양대 교수의 <다산의 재발견>과 <삶을 바꾼 만남>이 있으며 필자가 쓴 장편동화 <치원 황상>이 있다.
이렇듯 학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서적을 낸 후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황상의 일대기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이고, 그의 삶이 당시 유명한 사람들과 씨줄날줄로 엮어지면서 훌륭한 황상시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황상은 다산이 일러준 유인(幽人숨어서 사는)의 삶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청복(靑福)을 받은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오롯이 실천한 점이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황상은 자연에 파묻혀 30년간 논밭을 일궈가며 예순둘이 되던 해 비로소 홀로 공부할 수 있는 일속산방을 짓게 되는데, 자신이 살던 집에서 몇 마장 떨어진 곳이었다. 일속산방은 좁쌀만한 방이라는 뜻이지만 일속의 의미는 불가의 수미산과 비유되고 좁쌀 그 안에는 광대무변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의미가 있다. 어쨌든 황상의 일속산방은 당시 많은 시인들과 화가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청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유인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황상은 스스로 채마밭을 가꾸고 약초를 캤으며 밤이면 일흔 다섯이 되도록 중국의 4대 시인의 시를 초서로 베껴 쓰는 열정으로 살았기 때문에 귀농 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롤모델도 될 수 있고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다산학을 공부하는 수많은 학자들과 학문을 추구하거나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도 일속산방을 하루빨리 복원해서 다산의 제자가 어떻게 가르침을 실천해서 황상시를 완성시켰는지 그 역사적 현장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황상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매우 희귀하면서도 보기 드문 학문적 장소가 될 것이고 또 하나는 이색적인 관광 상품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진에 백운동 별서정원도 다산 정약용이 다녀가기도 했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그림도 전해지고 있어 역사성이 있다. 역시 담양의 소쇄원도 조경물과 함께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소였다. 두 정원에 비교해볼 때 황상의 일속산방은 정각 하나 세운 것 밖에 되지 않은 초라한 조형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속산방의 의미는 오히려 두 정원보다 그 진폭이 크다 할 수 있는 것은 정약용의 1호 제자이면서도 추사를 비롯한 당대 큰 인물들과 교류하고 인정받았으며 그에 따른 그림 및 서간 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강진의 향토사학가 양광식 선생도 수십 차례 일속산방의 복원을 주장했거니와 정민 교수 역시 책자를 통해 복원을 적극 희망한 바 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황상과 일속산방이란 관광상품 개발과 함께 귀농 귀촌의 동기 부여와 다산 정약용 재발견의 학문적 속살을 내보일 수 있는 일속산방의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속산방의 복원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 마을마다 세워지는 정각 수준의 건물과 함께 일속산방에 관련된 시와 그림을 배치하고, 황상의 일대기를 요약한 안내판과 일속산방의 의미 등을 소개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옥차령을 통해 자동차로 갈 수 있도록 임도를 만들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산 유배길에 일속산방을 포함시킨다면 특별히 정약용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비록 일속산방의 조형물이 어쩌면 정각 수준의 조악한 조형물일지 몰라도 강진에서 가장 산세가 웅장한 천태산, 저두산, 백적산, 불용산, 여계산 등 수십 만평의 외원(外苑)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일속산방의 의미처럼 가장 큰 바깥 정원을 가진 셈이다. 그러므로 조금도 초라하거나 졸속하지도 않다.
황상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인물이다. 일속산방의 복원을 통해 황상의 삶을 조명하는 가운데 <유인의 삶>의 진정한 가치와 황상의 학문적 업적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두 마리의 토끼를 얻는 셈이 된다. 강진군에서는 복원을 적극 추진해서 강진에 황상과도 같은 인물이 있었음을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 그가 쓴 <치원유고>를 어렵게 구입해서 다산박물관에 배치하는 일 보다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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