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병동에 가면 한(恨)많은 부모님들 뿐
지금의 6,7,80대 이상 분들은 효친사상(孝親思想)이 몸에 밴 나이라서 오직 가족제도 속에서 부모공경과 자식들의 장래만을 걱정하며 살아온 마지막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니만치 현대사회가 너무 살기가 버거워지다보니 한 가족이 한 지붕아래 함께 오순도순 살다가 여생을 마칠 수 없어 자식들과 어쩔 수 없이 뿔뿔이 떨어져 그리워하며 살아가야하는 그런 아쉬운 시대가 돼 버렸습니다. 더구나 살기가 힘들어지다보니 부부간에도 가정 싸움이 잦아지고 가정이 파괴되는 이혼율이 OECD나라 통계수치 가운데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하는데 더구나 노인들의 경우까지 황혼이혼이 최근 지상발표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4,800쌍이나 된다는 뉴스를 들으니 기가 찹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인데 오직하면 황혼이혼까지 해야 하는가? 금전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등 서로에게 얽힌 일들로 갈라서야 한다니 참으로 남의 일이 아니듯 가슴 아픈 일입니다.
노인 병동에 가면 그런 한(恨)많은 노인들로 가득 차있지요. 젊어 뼈 빠지게 농사짓고, 장사하고, 노동하며 자식새끼들 잘되게 만들려고, 갖은 수모 다 견디며 피땀 흘려 일해 출세시켜 놓다보니 몸은 망가지고, 인생 마지막 종착지가 복지병원(福祉病院) 침대 신세라니……
마음은 훌훌 날아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부자연스러워 의탁할 곳이라야 노인 병동요양원 뿐. 죽지 못해 질긴 목숨 끊지도 못하고 6년째 누워있어도 자식새끼들 나 몰라라 팽개쳐두고 죽을 날만 바라는 신세가 되었으니 한 많은 이 세상 뉘를 잡고 호소해 보리오.........
같은 병실에 함께 누워있는 곁에 여든아홉 살 할머니의 호소 같은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들 다섯 딸 넷 모두 아홉을 낳아 딸 셋만 초등학교 졸업시키고, 아들 둘은 대학 나머지 넷은 고등학교를 보내고 다 장가 시집보냈다나요. 아들놈 중 작은놈은 박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지만, 문병을 처음 한 달은 아홉 자식이 다 잘 오더니 긴 병에 효자 없다고 5년이 지난 지금은 가뭄에 콩 나듯 그것도 한두 놈뿐, 반년이 다 지나야 한 번 정도 얼굴을 내보인답니다.
이 노인이 파킨스병과 중풍에 황혼이혼까지 해 홀로 머리와 손 등 고개가 흔들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답니다.
혼자 살던 고향 시골집이 좋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차라리 거길 가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는 이 할머니....... 이제 다시 가기는 틀린 것 같은데 90이 다된 나이에도 아직껏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희망을 거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더구나 작은 검사아들놈이 꼭 데리러 온다고 굳게 언약했는데 그 자식은 전혀 얼굴도 못 보겠고, 가끔씩 일흔 두 살 장남 아들놈만 어쩌다 한번 씩 들린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복지사에게 휠체어에 좀 앉혀달라며 바깥바람을 쏘이고 싶다면서 아! 봄이 됐네. 고향집 돌담 벽에 노란개나리도, 홍매화도 많이 피었겠고, 농사준비도 할 때로구나....... 올 봄 뒷산 언덕에 고사리도 많이 났겠지....... 자식들 키우며 살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리운 양 마냥 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손과 함께 흔들며 웃는 낯으로 혼자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 인생살이 모두가 다 헛짓을 하고 산 것만 같다며 양 볼 가상에 눈시울이 가득 젖어 힘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복지사에게 하는 말이 “먼저 가버린 남편이나 자식보다 이젠 나 걱정해야 하는데 어디 부모마음이 그리 된답디까?” 결국 이 할머니는 외로이 초봄을 지나며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아홉 자식 중 한 자식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지요.
이 노인은 평소에 머리를 흔들흔들하면서도 흥얼거리던 노래 말이 생각난다는군요.
“이승에서 나 죽으라고 등 떠밀고, 저승에서는 나오라고 손짓하는데 나 이승에 무슨 미련이 이리도 아직 남아 저승에 가기 싫어 발버둥 치는가? 가면 그뿐인데 왜 망설이는가!!......”
그 할머니가 소원대로 죽으면 고향 뒷산에 묻어달라는 말에 병원에서 자식들에게 연락하니 아홉 자식이 다와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저런 자식 열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대로 효도하는 한자식만도 못하는 걸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낳아주신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는 것보다 먼저 더 좋은 인간교육(人間敎育)이 돼야한다는 뜻이지요. 그 이유는 부모란 어린 핏덩이를 다 크게 성장하도록 키워주셨기에 그 은혜갚음이야말로 살아생전 다하여도 부족한데 자식들은 그 깊은 참뜻을 모르고 불효하다 돌아가신 후에야 깨우치게 됩니다. 필자도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불효만 했던 과거를 뉘우쳐지고, 끈끈한 정이 회상되어져 제일(祭日)때만 되면 선친의 영전 앞에 엎디어 눈시울을 적히며 시 한 수를 지어 바쳤던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님의 영전(靈前)”
이 애도(哀悼)의 밤에 살아 떨어지는 것은/오직 눈물뿐입니다./ 헌 옷가지 고리타분한 내 육신이/산 같은 대죄(大罪)로 엎디어/ 깊고 진한 눈물을 흘립니다./
내 부실한 현실에 하필이면 부음(訃音)이 전해졌는지?/ 아니면 뼈마디마디 고통에 못 이겨 안락사를 바랐던/사흘 뒤 말날소시 그날을 택일하여 가신 당신/박석고개너머로 넘어간 먼 아득한 바다./하늘빛으로 살아남은 당신/날마다 불러도, 빌어도, 울어도 올 수 없는 당신./전생에 허무한 모습만이 남았다 헤어진 인연이야 가히 없지만,/불효자는 “현고학생부군 경주 이(李)씨 재혁“님의 영전에/끝없는 한(恨)이 되어/ 향불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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