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들어서는 남편의 어깨가 축 쳐져 보였다. 햇빛에 검게 그을려 초췌한 얼굴이 땀에 찌들다 못해 남루하다. 터진 작업복 사이로 하얀색의 팬티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남편이 민망해하지 않을까 나름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너스레를 떨며 박장대소를 했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입버릇처럼 하는 남편의 평소 핀잔소리가 푸념처럼 날아오는 것 아닌가.
“팔십이 코앞인 마누라가 속아지가 없어.”
“뭐가 저렇게 좋을까나 아이고 언제나 철이 들까. 쯔쯔쯔.”
작년까지도 의욕이 가득 넘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 당당함을 언젠가부터 찾을 수 없다. 저녁을 먹은 후 과일 몇 조각을 담은 접시를 들고 가니, 남편은 벌써 코를 골고 있다. 그 소리가 드르렁 드르렁 온 집안에 가득차서 모든 살림살이들이 숨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가하면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잠꼬대를 하면서 이상한 신음소리까지 내는데, 그 모습이 무척 괴로워 보이는 것이다. 순간, 남편에 대한 연민과 동시 위로 말 한마디 못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고생했다고, 수고 많이 하셨다고 먼저 말해줄 걸 그랬구나. 아, 내가 그런 말도 못해 준 바보 천치구나!’
이런 따뜻한 말을 놓치고 말았구나 싶었다. 남편의 잠은 우렁찬 코코는 소리와 잠꼬대, 신음소리로 뒤덮였다. 잠든 남편이 알거나 말거나 나는 검게 그을린 그의 손목을 잡고 하루의 노고에 감사의 답례를 보냈다.
“당신! 쉬엄쉬엄 하세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어요.” 혼자말로 중얼거려보았다.
매일 매일 틀에 박힌 톱니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에도 종종 평상심을 잃는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던 남편과 나의 지난 세월의 자화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색깔이 없다.
윤곽이 흐릿한 꿈을 쫒는 아지랑이 같았던 우리들의 반복된 일상에서 기를 쓰고 소망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던가. 내용과 색깔을 알 수 없는 소망을 그저 멋진 포장지로 둘러싸서 결국 볼 수도 없었나 싶다. 적당함이라는 모양과 크기에는 만족하지 못했던 삶이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포장된 소망들이 허망함이고 헛된 욕심이었음을 이 나이에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여보! 이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일부터 시작해 봐요. 조금만 더 사랑하고 조금만 더 이해하고 당신과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귀하고 복된 길을 천천히 걸어봅시다. 머지않은 우리의 해 저문 모습에서 멋진 노을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런 날이 오면 하늘은 우리에게 무어라 하실까 생각해봅시다. 잠든 남편, 코고는 소리를 답으로 들으며, 나는 두 손 모아 다시 기도드려 보았다.
“사랑하는 남편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내 마음속에 평화의 나침반이 자리 잡게 하소서. 나의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향하게 하소서. ”
고요한 밤,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했다. 하나님을 부르는 시간,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사랑합니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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