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나무에 生命을 불어넣는
강진읍 덕남리 원목공예사
목공예가 김중곤 씨
나무뿌리로 만든 좌탁(탁자)이 일품
1백년이나 2백년, 혹은 5백년의 세월동안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온 노목(老木)이 있다고 치자. 그 노목이 그 많은 세월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뿌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뿌리의 크기나 얽히고설킨 뿌리의 조화로움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 뿌리가 통째로 바깥세상에 드러났을 때 우리는 뿌리의 크기, 견고함,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그 뿌리를 잘 손질해서 작품으로 내놓았을 때 더욱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강진읍 덕남리, 그 유명한 만덕산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원목공예사 주인인 김중곤(66세)씨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유독 얼굴이 50대로 보일만큼 혈색이 너무 좋고, 두 팔의 근육과 굵기는 씨름 선수와 비교될 정도다.
그가 바로 거대한 노목의 몸통이며 뿌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목공예가다. 목이 뎅겅 자린 뿌리가 별아 별 이물질이 섞인 채 던져졌을 때 그의 손을 타기 시작하면 그 뿌리는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된다. 그래서 번지르르하고 친근감 있고 편안하고 단단한 예술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김중곤씨는 본디 목수였다. 지금도 살아 생존해 계시는 부친 김종기(93) 대목수로부터 전통한옥 짓는 법을 배웠다. 열다섯 살부터 큰짜구질, 대패질, 끌질을 하기 시작했으니 떡잎부터 천상 목수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옥을 짓다가 홀로 목수노릇을 해왔다. 해남 대흥사의 요사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한옥을 지었다. 대개가 사찰의 건축이었다. 그러다가 사양길로 접어드는 한옥 목수 노릇을 그만 두고 강진에서 5년 남짓 양계업을 해보기도 했다. 전혀 양계에는 문외한이었던 그가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거리가 먼 얘기였다. 아까운 돈만 억대 이상을 잃어버리고 다시 끌과 망치를 잡았다. 그래서 고향인 완도군 군외면 대창리에서 시작했던 원목, 뿌리공예를 이어가게 된 셈이었다.
“내가 주로 만드는 것은 좌탁(큰탁자)이 많아요, 나무 뿌리를 가지고 만드는 데, 크기에 따라 3일 정도에서부터 1주일 정도 걸리지요. 먼저 나무를 세척한 다음 뿌리에 낀 돌 등 이물질을 제거한 후에 썩은 부분 역시 제거하지요. 그리고 면을 칩니다”
면을 친다는 말은 뿌리의 윗부분인 좌탁의 넓은 면을 말한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면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중요한 면을 만들어놓고 다른 부분을 나중 생각해야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좌탁은 넓은 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너른 면을 어쩌면 반듯하게 톱질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기계로 해요. 원목이 들어오면 기계틀에 원목을 들여놓고 상하좌우 맘대로 움직이는 전기톱이 반듯하게 면을 만들어 주지요”
김중곤씨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어린이 손바닥 크기의 톱이 위잉~ 돌면서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때 손바닥크기의 톱은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되 가로 세로가 반듯할 수밖에 없도록 이미 짜여진 틀 속에서만 움직였다. 그러므로 면을 만들어갈 때 울퉁불퉁하거나 고르지 않는 면이 나올 수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면이지요. 우리가 원목이나 뿌리공예를 하는 것은 면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조각을 하지요. 뿌리의 생김새에 따라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친근감 있게 나무의 성질에 따라 조각을 하고나면 나무결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빼빠질을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칠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김중곤씨는 그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좌탁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나무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하면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단번에 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하나의 돌덩이를 보는 순간 하나의 작품이 대번에 그려지듯이 김중곤씨 또한 마찬가지다. 나무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판단에 의해 나무는 조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보자는 자르지 않아야할 뿌리를 잘라내고, 잘라 내야할 뿌리는 뇌둔 채 완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작품은 그래서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김중곤씨가 주로 사용하는 나무는 일단 1백년 이상 된 것을 구한다. 그래야 뿌리의 오묘한 형태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롱개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을 사용하는데, 인도네시아산 수입목을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나무를 사용할 경우 그에 따르는 운반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지요. 요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오래 된 단풍나무가 있으니 베어가라고 연락이 왔지만 엄두를 못냈어요. 길도 없는 곳이어서 포클레인으로 길을 만들어야 하고 엔진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등 일이 많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산 나무는 어느 정도 다듬어진 상태로 오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용이합니다. 인도네시아산 피나무, 마디카, 알마디카 등을 주로 재료로 활용하고 있는데, 물론 국내산이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재 구하기가 힘들고 값 또한 무시를 못할 만큼 비싸지기 때문에 외국산을 사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김중곤씨의 작업실 옆에는 도구 창고가 있었는데, 그 내부에는 별아 별 연장이 정리되어 있었다. 크고 작은 끌이며 톱이며 이름도 모를 연장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힘든 일은 나무뿌리에 박힌 돌을 빼내는 작업이어서 연장을 많이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연장이 없이 맨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또 나무공예가 아니겠어요?”
손수 제작한 기계틀, 그리고 각종 연장을 동원해 이미 죽어버린 마른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김중곤씨는 자신의 땀방울과 혼이 들어가기 때문일까. 작품을 하나하나 만들어낼 때 소장하고 싶은 것이 많단다. 자신이 만들었어도 오랜 세월동안 땅 속에서 이리 비틀어지고 저리 비틀어진 나무뿌리의 오묘함에 취하다보면 언제까지고 곁에 놔두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뿌리공예의 백미는 뿌리의 생김새에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땅 위의 나무를 자라나기 위해 더욱 땅 속을 파고들며 용틀임하듯 이리저리 꼬이고 비틀어지고 제멋대로 뻗쳐나간 뿌리의 오묘함은 일을 할 때도 신명을 느끼게 한다. 흙을 털어내고 잘라내고 다듬고 끌 끝으로 뿌리의 섬세한 부분까지 작업을 하다보면 김중곤씨의 손에 의해 뿌리는 다시 살아나는 듯 생명을 얻는다.
“앞으로 5년 정도 이 노릇을 더 할까 해요. 아직 힘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런데 후계자가 없는 것이 아쉽네요.(웃음)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누구나 언제든지 여기에 와서 배운다면 가르쳐줄까 해요. 문하생이 되면 모든 연장이며 도구를 빌려줄 수 있고, 또 작업과정을 일일이 코치해 줄 생각입니다”
그런데 김중곤씨의 솜씨는 좌탁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목공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귀담아 둘만도 할 성 싶다. 뛰는 말, 동자승, 포대화상, 독수리, 김삿갓 등 별아 별 소품을 만드는 솜씨도 그렇고, 특히 양각과 음각, 평각 등으로 현판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위 서각의 세계도 접근하기 때문에 목공예로써 그 진폭은 넓다.
“그동안 사찰을 많이 짓기도 했지만 현판도 해왔지요. 수작업을 통해 현판을 만드는데 그야말로 끌 하나로 글자를 새기는 일이 현판입니다”
그이 말대로 전시장에는 완성된 두 자 일곱 자 크기의 현판도 보였다.
“한평생 나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었지요. 그러나 조금도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이 나이에도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합니다. 요즘 들어서는 젊은 사람들이 좌탁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사람은 친자연적인 나무를 선호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4-50만원이면 좌탁을 구할 수 있고, 무게가 있고 모양이 좋은 것은 1백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매끈하면서도 뿌리의 오묘한 생김새를 보노라면 당장 구매충동이 일어날 만큼 좌탁은 제마다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쉽게 발걸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밖에서는 완도에서 왔다는 사람이 제법 큰 소나무 뿌리 하나를 트럭에 싣고 와서 좌탁을 만들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취재 송하훈
김중곤씨 사진 : 김중곤씨는 하루라도 나무를 만지지 않으면 몸이 근지러울 정도다. 그가 해온 작품은 도무지 기억을 못할 만큼 많기도 하지만 경상도까지 작품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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