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74회)
작천면 토동마을
방복신할머니(83)
“우리도 돈 벌어서 넘좀 돕고 살아보자”
방복신할머니는 9월 25일 제13회 노인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용산구 효창동 대한 노인회 대강당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0년 째 이웃과 지역사회에 헌신 봉사하여 주위에 잔잔한 감동을 주며 살아왔던 공로를 인정받는 상이었다. 토동마을 윗부분 산자락 아래 작은 집에서 혼자 거주하고 계시는 방할머니집 마당에는 가을걷이한 메주콩과 깨가 널려져 방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몇 일간 병원에 입원 후 어제야 퇴원했다는 방할머니의 얼굴은 매우 수척하여 눈이 움푹 들어가 있어 매우 안스러워 보였다.
“나 60때 영감이 돌아가셨어요. 나랑 7년 차이 나요.”
장흥읍이 친정인 방할머니는 18살에 토동마을로 시집왔다. 시집에는 여덟살짜리 남자아이와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남매를 홀시어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형제만 둘이었던 시댁은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며느리도 살길을 찾아 재혼해서 떠나버렸고 아이들만 덜렁 남겨졌다.
“우리영감을 마흔다섯살에 낳았다요. 늙은 시어머니와 우리 영감이 남매를 키우고 살더라고요. 내가 와서 남매를 키웠어요.”
가난한 시댁은 하루하루 노동으로 품 팔아서 그날그날을 먹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어서 일할 곳만 있으면 달려갔다. 그나마 숙달되어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품삯을 잘 받아가지만 남들 따라서 하려하니 힘만 들고 좋은 품삯도 받지 못했다. 남편이 머슴살이로 받아온 나락 몇 섬을 아끼고 또 아끼어도 금방 떨어지고 나면 다시 끼니 걱정에 살림은 고달프기만 했다. 고부끼리 길쌈을 하면 시어머니는 물레를 잡고 방할머니는 올을 뽑아 정리하면서 밤새도록 베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 10필할 때 20필을 하는 양은 되었다.
“내가 복이 없응께 가난한 집으로 시집왔제. 친정은 밥이라도 묵고 살었는데 친척이 하나도 없었어롸알. 달랑 아부지 혼자였어. 그런디 요집이도 온께 성하나 있는 사람 그렇게 되아불고 성수도 떠나불고 아무도 없어······.”
“하루하루 품팔어도 죽님도 못 먹이고 키웠소. 그런시상에는 학교도 못 보내요. 조금커서는 넘의 애기도 봐주고, 머시매는 넘의 깔도 비어주고 소 풀 뜯겨주고 그랬제.”
방할머니는 6남매를 두었다. 가난 자체가 부끄러워 자식들만은 가난으로 인해 부끄럽게 살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어서 늘 자식들에게 우리도 돈 벌어서 남 좀 돕고 살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큰아들은 가르치도 못혔는데······ 아들들이 어떻게 공부를 할라고 헌거 너무 없응께 마음이 무겁고 뻗쳐요. 빛내서 쓰고 한도없이 갚으면서, 그러고들 대학까지 나왔어요.”
아무것도 없던 집에서 어느 누구에게 모진 소리 한번 안하고 이만치 이루고 살아왔으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는 방할머니다. 그러나 한양대 법대까지 나온 막내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애절함을 어린 손자사랑으로 쏟아냈다.
“우리가 하도 없응께 우리도 언제나 돈 벌어서 넘도 좀 도와보고 살어보자. 주고 좋은 소리 좀 듣고 살어보자 이런마음으로 살었어요.”
가난해도 마음은 늘 주고 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는 방할머니다. 그래서인지 가난한 집안에서 유독이도 공부를 하려고 하는 아들들이었다.
“너하고 나하고 나무하자. 오죽 죽겄으먼 나무하자고 그랬겄소.”
공부는 하려고 하나 돈은 없는지라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초등학교에서 납부금을 가져오라하면 언제까지 꼭 해주마 하고 아들들과 약속을 했고, 언제나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얻어먹었으면 하는 생각보다는 언제나 주고 살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다는 방할머니다. 어떤 사람들은 벌어서 남들도 주고 저렇게 편안히 가르치고 그러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처럼 부끄럽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언젠가 꼭 돈 벌면 도와주고 살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 부끄러움을 덜었으니 죽어도 한풀이를 했다고 생각한다는 방할머니다.
“내 속으로는 별 일도 안했는디 높은 상을 주었어요. 나는 꿈에도 못헐 상을 받았어요.”
역시 좋은 마음은 좋은 씨앗이 되었고 비옥한 마음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좋은 열매와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왔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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