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윤민화 기자가 보는 세상읽기1
다시, 마중물을 기다리며
몇 해 전, 학생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시, 소설, 영화 속 구절이 있으면 찾아오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학생이 찾아 온 시가 기억난다.
“우리 어릴 적 펌프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 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후략)” <임의진의 「마중물」 중에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평균 연령이 사십 전후였으니, 다들 할 말이 많아진다.
“맞어. 맞어.. 우리 집에 그 펌프가 있었어. 물 넣고 막 하다보면 물이 나오고..., 어휴 난 잘 못해가지고 손에 물집만 잡히고 잘 안되던데.... 타이밍이 중요하다니까 타이밍이... ”
정말 그랬다. 지금은 오간데 없어졌지만, 어릴 적 집 뒷마당에 펌프가 있었다. 물이 차 있을 때도 있었는데, 마를 때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물 한 바가지가 필요했다. 반 넣고 펌프질하고 또 반 넣고 펌프질 하다보면 어디서 그 물이 올라오는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시인이 말한 대로, 부지런히 펌프질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손 끝에서 낭창한 무게가 느껴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더욱 부지런 떨면 어김없이 그 때부터 물이 터져 나왔다.
그 기억이 있었던 나 역시 이 시가 참 깊이 가슴에 와 닿았다.
발표한 학생은 마중물 시를 읽으며, ‘사회복지’가 마중물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곁들어 이야기 한다.
그렇다.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만해도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참 생소한 말이었다. 이제는 이 곳 저 곳에서 복지라는 말을 자주 쓰고, 어디를 가도 복지라는 말을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두루두루 쓰이다 보니 아무렇게나 쓰일 때도 있고, 그 참 뜻을 알기가 어렵기까지 하다. 누구는 복지가 그냥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마냥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도 하다. 그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수원(水原)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요. 다시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이다. 이것이 진정 복지의 참 뜻이기에 사회복지가 마중물과 같다고 표현한 그 학생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다.
얼마 전부터, 6.2지방선거 예비 후보자 얼굴이 건물마다 걸려 있어 눈에 띤다.
“경제를 살리는 힘. 새 시대 새 일꾼!. 희망을 노래하는 일꾼...” 앞으로 4년 동안 새롭게 지역을 책임지겠다는 예비 후보자들이 지역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공약들로 넘쳐난다. 고향에도 한창이겠지.
생각해보니, 선거도 마중물과 같겠구나!
공약을 보더라도 그렇다. 잔뜩 많아 번지르하다 하더라도 백화점에 전시된 물건처럼, 우리가 뻗어 집기에 너무 멀면 무엇하리. 거창하고 원대해도 하늘로 올라가버릴 고무 풍선이라면 또한 무엇에 쓸 것인가!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우리가 손으로 잡을 수 있고, 우리들 삶으로 다가와 위안이 되고,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그런 마중물과 같았으면 한다. 처음에는 비록 한 바가지 물처럼 적어 보이지만 쉼없이 솟구쳐 나오니 더욱 깊고 야무진 샘물과 같을 것 아닌가.
일꾼도 그러할 것 같다. 우리 지역 일꾼들이 기꺼이 우리를 위해 물이 나올 그때까지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일꾼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마음 속 깊은 속내를 알아 가뭄 끝 단비처럼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 줄, 우리 목마름을 해갈해 줄 오랜 벗 같이 편안한 일꾼이라면 더욱 좋겠다. 공약을 입으로 끝내는 명사(名詞)가 아니라 손과 발로 애써 움직이는 동사(動詞)라는 것을 아는 그런 일꾼이면 또한 좋겠다.
잠깐 상상해본다.
바로 그 지역 일꾼과 함께 우리 지역민이 온 힘을 합쳐 하나 둘 하나 둘 한 목소리로 펌프질을 하다보면, 바로 그 순간이 오겠지. 낭창~ 낭창~하게 손 끝에서 그 무게가 느껴지는 그 순간, 강진의 보물들이 쉼없이 봇물 쏟아내듯 꽐꽐 터져나오는 그 순간이 오겠지.
이렇게 또, 다시 우리 지역의 마중물을 기다리며, 봄이 물고 올 희망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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