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만햇발
잠자는 언론
김현철(한국시문학파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 전 서울문화방송기자)
내가 지난 반평생을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서 도시 건물의 간판들을 보고 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말 중에 너무 많은 영어 단어가 섞여있음을 알고 급속도로 우리의 고유문화가 바래가고 있음을 느꼈다. 고유한 우리 것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강대국들의 것으로써 한민족으의 자존심이 많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Globalize)란 이렇게 우리 고유문화까지 버리면서 이뤄지는 작업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고유한 우리 것들이 과연 얼마동안이나 보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따랐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변한 것도 많지만 오늘은 신문 및 방송 등 언론 매체에 나서서 잘못된 점을 부각시켜 관련 인사들에게 시정을 촉구함이 더 뜻이 있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일부 방송인 및 아나운서를 비롯해 대학 교수 등, 이 나라의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또 국민들에게 가르쳐야 할 위치에 있는 지식층 인사들이 경쟁이나 하듯 앞장서 우리말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단어까지 굳이 영어로 표현하는데다 그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영어 단어를 엉터리로 발음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을 오도하는 예가 너무 흔해서 어리둥절해 진다. 꼭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유식한 인물로 비쳐지는 것일까? 그러한 여파 때문인지, 오히려 외국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보존할 수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의 문장을 보면 마치 자신이 유식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요소요소에 영어 단어를 집어넣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게는 이러한 모습이 '유식'이 아닌 '허영심'의 발로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교수님 등 일부 유식한 분들이 '긴 의자'(소파=Sofa)를 "쇼파"라고 발음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것인가? 영어사전 어디를 봐도 'Shofa' 또는 'Shopa' 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고 특히 '소파'(Sofa) 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 중 가장 쉬운 명사에 속한다.
또 그 흔한 단어인 '골프'(또는 '꼴프' = Golf) 를 '콜프'라고 발음하는 수준을 보고 이런 인사들을 강사로 초빙하거나 글을 쓰게 하는 언론사 관련 인사들이 원망스럽다. 'Sofa'가 "쇼파"라면 왜 'Golf' 는 '굘프'라 발음하지 않는 것일까? 결국 '소파'를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가리킨다'(지시한다)와 '가르친다'(교육한다)의 차이도 몰라서 '가르킨다'(가르친다의 잘 못)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함으로 써 시청자인 일부 국민들은 그것이 바른 표현인 것으로 받아들여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심각성을 과연 이 분들이 언제나 깨달을까?
또 '잊어버린다'와 '잃어버린다' 를 구별 못할 뿐 아니라, '새벽'이라는 단어는 '동이 트기 전의 이른 아침'을 뜻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한 밤중 '12시 5분'도 '오전 12시 5분'이라 하지 않고 '새벽 영시 5분', 또 '오전 1시'는 '새벽 1시'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제 우리 국어사전에서도 '새벽은 밤 12시부터 이른 아침까지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그 뜻을 바꾸어 실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최근 상영되고 있는 새 영화 안내를 하면서 아나운서가 "XX 영화가 오늘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영화 자체가 영화를 상영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도 'XX 영화가 오늘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가 바른 표현법일 것이다. 더구나 입장권을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하지를 않고 "두 매, 세 매, 네 매' 하는 어처구니없는 방송인들을 볼 때 우리 국어교육에 큰 문제가 있음을 실감했다. '장'과 같은 뜻의 '매'라는 낱말을 쓸 때는 '한 매'가 아닌 '일 매'로, '두 매'는 '이 매', '세 매'는 '삼 매', '네 매'는 '사 매'로 표현함이 옳다. 아나운서가 이 정도일 때 일반인들의 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잘 못 된 예가 너무 많아서 이 정도로 그쳐야 하겠다.
언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회는 입법, 사법, 행정, 교육, 종교,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부패할 수도 없고 잘 못 갔더라도 곧 바른 방향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법이다. 방송위원회나 국립국어원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의 문화면에서 마저 이런 것을 못 본 척 지나치기에 이러한 잘 못이 바로 잡힐 겨를이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 우리 고유문화는 변질 되어가도 사회의 목탁(스승)이라는 언론은 잠을 자고 있으니 무슨 구제책이 있겠는가? 우리 고유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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