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나는 황토 집을 지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맛을 보기 위해서였다. 더군다나 잠을 자고나면 피로가 말끔히 가시면서 몸이 훨씬 가벼워지기 때문이었다.
황토 집이 좋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다. 특히 웰빙 바람이 불면서부터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갖가지 공법이 소개되고 있는 형편이다.
황토 집은 일반적으로 황토 벽돌을 사용해서 짓게 마련이다. 혹은 흙벽을 쌓을 때 통나무를 벽 넓이만큼 잘라 흙과 함께 올라가는 공법도 있다. 최근에는 흙 대신 볏짚을 압축시켜 사용하는 방법도 소개되고 있는데, 나는 특이한 공법으로 황토 집을 지었다. 어찌 보면 특이한 공법이라기보다 우리나라 어느 시골 마을엘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흔해빠진 공법이었다. 이른바 토담 공법이었다.
토담은 흙으로 쌓아 올린 담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울타리를 만들 때 즐겨 쓰는 방법으로써 싸리나 대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가(班家)는 물론 여염집 대부분은 토담을 울타리로 하였다. 토담을 쌓는 방법은 먼저 반죽된 흙 위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돌을 쌍줄로 놓는다. 다시 쌍줄의 돌 위에 흙 반죽을 올리고 다시 돌을 놓고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토담이 되는데, 이때 돌의 반반한 면이 바깥으로 가게 하는 것이 기술이요, 요령이다. 그 같은 토담은 정겹고 포근한 느낌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보호하거나 그런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옛날 방식대로 쌓는 경우도 간혹 있을 정도다.
흙과 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올라가는 토담 공법은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헛간이나 측간 따위의 허드레용 집을 지을 때에도 많이 사용하였다. 혹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집을 지을 때에도 그런 방법을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이 토담집이다.
그러나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흘러도 처음과 똑같이 변하지 않는 토담, 무엇보다도 혹염과 비바람과 한설(寒雪)에도 끄떡없이 버티는 단단함은 콘크리트보다 더 강하질 않는가. 노송처럼 자신의 몸뚱어리를 송두리째 풍상우로(風霜雨露)에 내맡기고도 전혀 상하지 않는 토담의 저력은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토담의 주재료는 물론 황토이다. 황토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터전이었고 생명줄이었다. 황토 위에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죽어서도 황토 속으로 귀의하는 생사(生死)를 되풀이해 온 것이다.
지금은 전 국토가 산림으로 빽빽이 채워져서 푸른 강산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온통 산은 시뻘건 벌거숭이였다. 포장되지 않은 길 또한 붉었고, 자드락밭 역시 붉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붉은 황토였던 것이다. 나 역시 태어나고 자란 곳도 황토였다. 황토로 만든 집에서 살았고, 황토에서 자란 농작물을 먹고 자랐으며, 황토에서 자란 나무로 땔감을 하며 1970년대를 넘겼다.
김동인의 단편 가운데 <붉은 산>은 주인공 ‘삯’이 만주에서 붉은 산을 그리워하며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붉은 산은 일제에 의해 침탈당한 삼천리 조국 강토의 헐벗음을 나타내려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탯줄이 묻힌 산천을 간절히 보고 싶다는 염원이 더 크게 담겨져 있다. 김동리의 단편<황토기>는 황토골에서 억쇠와 득보라는 두 장사가 무모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줄거리인데, 구전적인 설화에 밑바탕을 둔 작품으로써 황토에서 빚어진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시인 한하운의 대표작 <전라도 길>에서 “가도 가도 황토길···”이라고 노래한 것도 황토야말로 곧 우리가 살아온 땅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렇듯 여러 문학 작품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리 민족은 황토에서 긴 역사의 바퀴를 굴려온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황토를 소재로 집을 지어 보자. 그래서 일차적으로 15톤 덤프트럭 10대 분의 황토를 집으로 가져왔다. 이물질 하나 섞여지지 않은 황토는 그 색깔부터 치자처럼 붉었다. 그런 황토에 호오스로 물을 뿌려가며 포크레인으로 밀가루 반죽처럼 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선 차곡차곡 쌓은 뒤 대형 비닐로 덮어 두었다. 한두 달은 전혀 마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돌은 미리 수년에 걸쳐 구입해 놓았는데,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포크레인으로 모아 보니 집채만 한 부피였다. 돌담 허물어진 곳, 대밭이나 텃밭 석축에서 나온 돌 등을 함부로 않고 모아둔 것을 한군데에 집합시킨 것이다.
하지만 막상 황토 집을 지으면서 그 어려움이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황토 집 짓는 일이 이토록 힘들고 고된 줄 알았더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물론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 온 토담 공법이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흙벽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려웠던 것은 반죽된 흙덩이가 돌덩이보다 무거웠기 때문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황토 집을 짓던 그해 6월에는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멀쩡한 마른하늘에서 가자기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질 때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쌓아 올린 흙벽을 비닐로 덮기 위해 불과 몇 초 만에 일을 마쳐야만 했다. 한옥을 지을 때처럼 아예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고 지붕을 만든 다음 차분히 쌓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었다. 비가 올 때마다 행여 무너질까 봐 난리를 피웠던 것도 고생스러웠지만, 결국 놉까지 사서 빠른 공기 안에 완성하려는 내 욕심이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흙벽이 거의 다 쌓아 올라간 지점에서 세 차례나 무너져 내렸으니 참으로 허망한 노릇이었다. 오죽하면 게으른 사람이 흙집 짓는다는 말이 있었겠는가. 쌓다가 쉬고, 쉬다가 쌓는 것이 흙집이었던 것이다.
흙은 1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마른다는 사실. 그래서 하루에 두세 뼘 정도만 쌓아야 하는데 흙이 덜 마른 상태에서 어리석게도 계속 쌓아올린 우를 범한 결과였다.
우여곡절 끝에 황토 집은 완성되었다. 도배를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별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 손으로만 하는 일이 황토 집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당연히 총 건축비는 80퍼센트가 인건비였다.
그 뒤로 황토 집은 지방신문이나 지방 TV에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주 황토 집을 구경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런데 막상 황토 집이 완성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다는 사실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조립식 같은 공법으로 쉽게 집을 지어 버리지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다. 더군다나 토담 공법으로 짓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옛날부터 황토 집은 몸에 좋은 집이여. 술을 아무리 많이 먹고 자도 아침이면 몸이 거뜬하당께.”
“내년에 나도 슬슬 시작을 해봐야 쓰것구마. 더군다나 황토 집에 불 때는 구들장을 놓으면 온 방바닥이 설설 끓는 맛이 그만 아니더라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특히 쇠죽 쑤는 방은 더욱 방바닥이 끓어서 발바닥이 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찜질방 정도였다고나 할까. 구수한 여물 익는 냄새와 함께 설설 끓는 방에 앉아 있으면 북풍한설인들 두려울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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