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물이 되던 겨울, 불현듯
홀로 카메라 빌려 메고 올라 탄 열차
창마다 한 컷씩 점멸하는
아늑한 동화 속 눈발로 스며들어
천지를 잠재운 설경에 셔터를 눌러대다
고즈넉한 청보랏빛 강마을을 발견하고는
어딘지도 모른 채 낯선 역에 훌쩍 내렸다
마른 풀들 희끗희끗 미소 짓는 포근한 강나루
언젠가는 다가올 해맑은 미래를 그리며
시린 시간의 옆구리에 기대어 오래 펄럭이고 있었다
뜻 모를 눈물은 애써 돌서덜에 묻어두었었나 보다
그렇게 처음 탄 춘천행 열차는
나를 춘천까지 데려다 주진 않았지만
영혼의 건넌방에 눈부신 액자로 오롯이 걸려있다
그 후 또 스무 해가 한참 더 흐르고 나서도
하늘의 입김 가득찬 강물을 따라
눈꽃 터널을 숨막히게 지나가던
춘천행 열차를 다시 꿈꾸곤 했다
잠포록한 사진 몇 장 속에 꼼지락대는
북한강변의 어설픈 발자국들과 함께
여전히 덜컹거리며 기적 소리를 울려대는
뜨겁고 서늘한 불빛,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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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열차가 지난 해 12월 21일부로 운행 중단 되었다. 남도를 통하는 경전선도 곧 중단될 처지다. 불가피하다지만 세상살이가 경제효과로만 평가되는 삭막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 아직도 작은 시골역, 간이역에서 열차를 이용해야 하는 서민들이 많고 최근에 떠오른 웰빙, 슬로우시티 관광을 위해서라도 어지간하면 국민들의 애정과 추억이 담긴 전국 곳곳의 열차 노선들을 없애는 일을 자제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런 정서를 감안해주지 않는다.
부산에서 순천, 보성을 거쳐 광주로 가는 경전선 열차도 해묵은 계획대로 장흥, 강진, 해남, 무안, 목포로 이어지는 노선이 조속히 신설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강진역, 이름만 떠올려도 얼마나 아름다운 역이겠는가? 그 역들을 따라 의미 깊은 남도 문화 답사 여행이 빈번해지고 영호남은 물론 전 국민이 편리하고 자연스레 더 많이 교류하게 될 것이다.
오래전 춘천행 열차를 통해 간직한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 그런 따뜻한 감동을 남도에서도 모두가 누리게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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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녹향월촌 21 > 시와 산문
춘천행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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