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소나기를 만나도 종종걸음 하지 않을 것 같은 선비 중의 선비-
“여자는 그저 남자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그말이여”
-김이진(98) 현춘자(81)
주소:강진읍 송현마을
송현마을은 강진읍에서 국도 2호선을 따라 성전방면의 구 길을 따라가면 나온다. 마을의 사방이 송림으로 울창하여 일명 ‘솔치’라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마을의 동쪽으로는 우두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봉덕마을이다. 월출산의 한 줄기인 비래봉 아래 옛 흙집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고 있는 김이진 할아버지.
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아마 200년이 넘었을 거라는데, 부자 집을 뜯어낸 기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늙은 것을 뭐하게, 나보다 더 모냥 늙어부렀어. 저그 웃묵에 가서 자라고 하제.”
할아버지보다 훨씬 적은 나이의 할머니에게 같이 있어 고맙다기는커녕 아무 쓸모없는 할망구라고 몰아 부친다.
“영감탱이 성질이 꼬라지가 있어갖고, 저 양반하고 맞은 사람 있돨? 맞을 사람 하나 없어.”
“저런 저런 저란게 못써. 여자는 남자가 그렇다 하면 그러냐고 해야한디 그러들 안해. 여자라고 하는 것은 남자 하는 대로 따라야한다 그 말이여.”
두 분이 주고받는 말을 봐서는 금방 싸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표정은 다르다. 연신 웃음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김이진 할아버지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한다. 그러나 등 너머로 배운 한문 실력은 대화 중에 수시로 튀어나온다. 소나기를 만나도 종종걸음 하지 않을 것 같은 조선시대의 꼿꼿한 선비정신이 배어 있는 철저한 유교인인 김이진 할아버지. 알고 있는 지식이 넘쳐서 한 가지를 이야기 하다보면 끝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도강김씨가 도강골을 만들었어. 고려 공민왕때부터 5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이여. 도암면 둔덕사에 시조가 모셔져 있는디······”
도강김씨에 대한 자부심을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손짓으로 쉴 틈 없이 말씀하시던 할아버지는 일제치하에 나락한말 나오면 7되는 가져가고 남은 3되로 먹고 세금 물며 쌀밥은 부잣집 제사때나 구경했던 시절 이야기, 6,25전쟁 때 겪은 지긋지긋한 고생이야기로 이어진다. 또한 이승만대통령과 이기붕 신익희 장면 등의 정치적 이름을 운운하며 장면박사가 강진에 왔었던 일화를 이야기 했다.
“그때 여러이 왔는디 우익정당이라고 해서···, 하루저녁 30만원씩 없어진다고 했었어요.”
어려서 남편을 여의고 평생 아들만 믿고 살아온 어머니도 105살까지 장수하신 집안이다. “첨에는 마음이 맞었는디 지금은 안 맞아요,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뒤로는 절대 내 말을 안들어요. 내 생전 그 말을 안 할라다가 작년에사 처남 매부에게 첨으로 말했고만요.”
할아버지는 아직도 할머니에게 당당하다. 할머니는 25살 때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두 번째 결혼이었으며 자녀는 모두 3남3녀를 두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지금도 차버릴 수 있으며, 할머니 없으면 아들들한테 가면 되고 며느리가 더 잘해줄테니 걱정없다며 큰소리 뻥뻥친다.
“며느리가 오라고도 안해요. 알도 못허고는 저 소리여. 아버지는 못 모신다혀요, 어머니는 모셔도.”
그러다가도 자식 애기가 나오면 두 분이 한 목소리가 된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해 많은 기업체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손자까지 공부를 잘해 이번에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며 재주 좋은 손자가 잘 되는 것을 보고 가야 되니 더 오래오래 살 생각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담배는 안 피웠으며 평생 밥 한 그릇을 다 비워 본적이 없다. 음식은 어떤 음식이든지 맛있다며 고기 밥 술은 많이 먹고 갈 생각이란다. 그러나 내 몸은 내가 아는 법이 아니냐면서 아무리 좋은 것도 넘치지 않게 하는 것이 평생에 신조라고 하신다.
“우리는 한 번 마음먹으면 그대로 쪽 나가 버려요. 지금도 죽고 싶은 맘은 전혀 없어요.”
작년까지도 읍 수성당까지 걸어서 다녔다는 김이진 할아버지는 지금도 장작 패는 일과 집안일을 돕는다. 일이라고 하면 젊어서부터 사흘 걸릴 일을 이틀에 끝내버리는 성격이라 새벽부터 밤까지도 일하곤 했단다.
“평생을 혼자 잘났다고 하고 산 사람이요. 성질대로 일도 해요.”
라고 할머니가 말하자 대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집안은 참 좋은 사람이요. 영암 현진사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집안인디, 그 집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그란디 저 사람은 안 좋아요. 여자라는 것은·······.”
할머니가 손수 담은 아카시아주를 내오시자 할아버지가 따라주셨다. 두 분은 회관 앞까지 나와 기자가 멀리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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