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원 황상의 일속산방(一粟山房) 생활
안경순(전 초등학교 교장)
치원 황상은(1788-1870) 다산이 가장 아끼는 제자로서 15세였던 임술년(1802)에 강진 동문 밖 매반가에서 처음 다산 선생님을 뵙고 文史(학문)를 닦도록 권면을 받고 삼근계(면학문)를 내려 주심으로 그로부터 한시도 헛눈 팔지 않고 밤낮으로 경학과 시문에 몰두하며 스승님의 가르침에 한치도 멀어지지 않고 정진하여 경지에 이르렀다.
1805년 보은산방에서 정학연과 함께 주역을 배우던 중 이괘(履卦)九二에 나오는 유인(幽人-숨어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물었다. 다산은 제자를 위해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또 이를 글로 써 준 것이 바로 「제 황상 유인첩」이다. - 명나라 황주성의 「장취원기(將就園記」가 있는데 장차 나아가 살고싶은 상상 속의 정원이다. 다산이 황상에게 써준 「제 황상 유인첩」도 다산이 꿈꾼 이상적 상상 공간에 대한 설계이다. 또 유인의 청복(淸福)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벼슬아치들이 누리는 복은 열복이고 유인의 삶은 청복이다. 유인의 삶이야 말로 아무나 누리기 힘든 청복의 삶이다. 과실을 심고 채소를 가꾸며 도리를 지켜 안분자족하는 것이 바로 유인의 삶이다. 이어서 다산은 은자의 이상적 거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시냇물을 끼고 있는 산 자락에 마을의 위치와 집의 방향이며 방의 내부와 마당의 배치며 화초의 종류 등 정원을 꾸미는 일까지 자세한 절목을 두어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제시했다. 황상은 자신이 티끌세상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스승께서 산중 생활의 취미에 대하여 말 해 주시며 「장취원기」를 적어주셨다고 했다.
다산께서 1808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실 때 황상은 여러 가지 가정 형편으로 함께 가지 못하고 홀로 남아 찾아다니며 10여 년을 수학하였다. 어느날 황상이 스승께 일속산방(가칭)을 짓겠다는 말을 하자 스승께서는 놀라시며 “그대가 어찌 내 마음을 말하는가”라며 기뻐하셨다. 이로부터 치원은 천태산 백적동에 자리를 잡아 스승의 말씀에 따라 집을 짓고 물을 끌어와 원포를 경영하며 하나하나 「장취원기」의 기틀을 잡아갔다.
「노규황량사(露葵黃梁社)」의 일화가 있다. 황상이 머물고 있는 대구 항동의 「백적산방」을 다산과 추사가 찾아가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그때 기장으로 지은 밥에다 아욱(葵)국을 아침 밥으로 먹고 나서 ‘남쪽 밭에 이슬 젖은 아욱을 꺾고 동쪽 골짜기 누른 조를 찧는다’라는 시를 다산이 지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추사가 ‘로규와 황량’을 가리고 社자를 붙여 제액(題額)으로 써 준것이 저 유명한 「노규황량사」로 고결한 선비의 거처로 표상되어 강진과 해남의 선비들은 앞 다투어 조각하여 거실에 걸고 음미해 오게 되었다. 그러나 제7회 다산 유물전에서 보았듯이 「노규황량사」나 「보정산방」의 작품은 그 제액에 서부금계(書付琴季)라는 부전지로 보아 추사가 제주에서 해배된(1848)이후 어느 때 추사를 방문하였던 금계 윤종진 편으로 황상에게 써 보낸 것으로 짐작되어 다산께서는 이미 타계한(1836)후이다.
황상은 1818년 스승의 해배 이후 백적동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스승의 장례시(1836)에 두릉에 한번 다녀오고 30년간에 스승의 말씀에 따라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제 황상유인첩 내용) 일속산방의 원림을 일구었다. 백적동 살림집 외에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 곳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이 「일속산방」(일속산방도의 좌측 위 외딴 집)이다.
- 백적동 「일속산방」은 현재 항동 저수지에 수몰된 옛 용운초등학교의 뒷 산골짝(현재 감나무 한그루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함(지역민들-옛황선비 집터) -
황상은 1848년 「일속산방」을 완성하고 백적동 살림집에서 거처를 옮기고 정학연에게 산방의 이름과 산방기를 부탁하였다. 1853년 운포 정학유가 타계하여 문상차 두릉에 들렸다.
1853년 3월 30일 소치의 「일속산방도」가 그려졌는데 소치작 초의정이라 하였으니 초의가 심정(審訂)했음을 밝혀 초의의 설명을 듣고 소치가 그린 것으로 이후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1855년 정학연이 산방의 이름을 「일속산방」이라 하고 「일속산방기」를 써 주었다. 왜 「일속산방」인가? 일속(粟)은 좁쌀 한 톨이다. 그러나 불가에서 ‘겨자씨 안에 수미산이 들어 있다’고 하였듯이 비록 작은 방이지만 그 방에 들어서면 양편에 도서와 각종 문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 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그러니 좁쌀 한 톨 안에 광대무변의 자족의 세계가(小天下) 있음을 기렸다.
산속 한 칸 암자였던 일속산방은 흥미롭게도 四면에 각기 다른 이름을 내 걸었다. 동쪽은 석영옥(石影屋) 북쪽은 만고송실(萬古松室) 남쪽은 일속산방(一粟山房) 서쪽은 노학암(老學菴)이라 썼다. 노학암이란 추사가 직접 지언준 것으로 황상이 늙어서도 배움을 그치지 않았으므로 이를 기려 노학암이라 이름을 주었고 일속산방은 정면에서 바라볼 때 이 집의 눈동자에 해당된다. 정학연과 황상은 이 「사호암」에 대한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황상의 치원이란 호도 다산이 직접 지어 주며 치자나무처럼 겨울에도 푸르고 하얀 빛깔에 언제나 향내 짙고 씨앗의 속이 노랗다 하여 ‘자중(子中黃)’이란 호도 주었다.
황상은 자탄(自歎)과 암야(菴夜)란 작품에서 스승이 내려준 「장취원기」와 「일속산방」을 경영하게 된 계기를 장문의 시로 술회하였다.
일속산방은 다산이 황상에게 써준 「제황상유인첩」즉 「장취원기」의 내용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재현한 은거 공간이다. 원포를 만들고 꽃나무를 심고 벌을 치며 차 생활을 허면서 초서와 시작과 강학 활동을 하였다. 75세가 되어서도 초서(鈔書)를 계속함으로 주변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하여 만류하면 “우리 선생님께서는 귀양살이 20년 동안에 날마다 저술만 일삼아 복송씨 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고 하면서 저 유명한 과골삼천(踝骨三穿)의 고사를 소개하면서 죽는 날까지 스승의 삼근계 교훈을 실천하며 깨끗한 선비로서 경화거유들에게도 손색이 없는 문장과 시학에 대성을 하였다.(치원유고)
일속산방은 다산과 치원, 추사와 유산, 초의와 소치의 문화가 함께 어울려진 종합적 문화와 역사의 공간이다. 양이정 전망대에서 미산포구로 청자박물관을 지나 항동저수지의 일속산방과 정수사까지의 역사 탐방 코스는 또 하나의 강진의 명승지로 거듭날 것이다.(스토리텔링) 그러기 위해 일속산방은 꼭 복원되어야 하며 항동 저수지변의 적송림을 정비하고 그곳에 일속산방의 전망 광장을 조성하고 부적절한 건물과 시설을 자제시켜야 할 것이다.
자료: ① 제7회 다산 학술세미나집(2010년 12월)
② 제7회 다산 유물전 도록(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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