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객의 마음은 다정다감의 얼굴
박양배 (시인․수필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돌아온다, 예부터 전해 온 명절의 의미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옛날에는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손들이 조상들의 산소에 성묘 하는 것과 생존해 계신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 친척들을 찾아 뵈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절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들이 나들이를 설계하여 해외로 관광을 떠나거나 시골의 부모들이 서울 등의 도시에 있는 자녀들을 찾아가는 풍경이 생겼다. 이런 것은 변해도 너무 변한 명절 풍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명절을 기하여 고향을 방문하는 날이면 길가에 보이는 묘소가 깨끗이 벌초 되어있으면 후손들이 정성을 다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지만 무성한 잡초와 잡목이 자라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씁쓰레하게 느껴진다.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하면 지난 시간 속에 깃든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짙은 색으로 풍경화를 그려주고, 그 시절에 함께 뛰어 놀던 죽마고우들이 그 그림 속에 머물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도 높아 뛰어 내리기가 무서웠던 큰 바위들이 오랜 세월에 깎아 버린 듯 작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지만, 고향 동네에 사는 사람도 아는 이가 몇 사람에 불과 해 때로는 타향에 온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도 하고 성묘를 하려고 동생과 함께 며칠 전에 고향 선산을 찾았었다, 지난 장마에 선산 입구의 길이 많이 패이고 나무들이 많이 넘어져 차가 들어갈 수 없어 넘어진 나무들을 베어내서 길을 찾아 겨우 갔었다. 벌초는 고향에 계신 형님이 이미 해 놓아 힘을 덜게 되었는데 형님으로 들었던 뜻밖의 일은 산소 양쪽에 세워 놓은 망주석 하나가 빗물 때문인지 아니면 멧돼지의 공격을 받았는지 넘어져 있었다. 세우는 일을 한다고 하기에 나무에 묶어놓고 당기는 도르레를 매제 철공소에서 빌려 가지고 가서 세워보려고 두 사람이 있는 힘을 써 보았지만 도저히 불가능 했다. 왜 넘어지게 되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동생은 ‘우리가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 찾아오도록 저 세상의 부모님이 넘어뜨린 모양입니다’ 하고 웃긴 소리를 했다. 당긴 도르레도 있고 두 사람이 합심하면 쉽게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자신 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다. 최소한 성인 네다섯 사람이 있어야 함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겨우 세우려다가 힘이 부족하여 제자리로 가버린 것이 수십 차례 단단한 잡목을 베어 만든 통나무를 받침대로 삼아 망두석과 씨름 한지 두 시간 만에 겨우 세워 놓았지만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 좀 서운한 대로 세워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산소에 차려 놓으려고 간소하게 마련한 음식을 상석에 차려 놓고 형제는 인사를 드리고서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담소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 세대까지는 힘들어도 찾아와서 산소 관리를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례 제례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으니 다음 세대에서는 별초 문제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산에 갈 때는 사람이 벌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화장품 냄새를 제거하듯이 무덤이 멧돼지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차례 지난 제물을 무덤 주의에 놓지 않고 잘 처리해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
산소 등에 꽃이 피면 자손이 잘 된다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내려오니 농업 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조성한 작은 저수지에는 여름 장마로 물이 많이 담겨 있고 그 곳으로 들어간 산간수는 그냥 먹어도 좋을 만큼 깨끗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었다. 망주석 하나 때문에 온 몸에 흐른 땀은 옷을 적시고 말았기에 간단히 몸을 씻으니 순식간에 더위가 달아나는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주위에 지천으로 자란 자연산 쑥을 뜯었고 지난봄에 뜯었던 취나물과 고사리는 크게 자라 꽃가루를 날리고 있었다. 내년 봄에 산채를 채취하기로 하고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고향 선산은 지금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것이 오랜 산길이지만 옥차재를 향해 가는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옛날에 다산 선생의 제자 1호인 치원 황상이 살았던 곳, 현 용문동을 찾아가기 위해 다녔던 산길이었다. 산방을 알리는 리본 표찰이 나무에 매달려 안내하고 있지만 그 이름이 일속산방(一粟山房)과 일률산방(一栗山房) 두 개가 표시 되어 있어서 미확실 명의 산방임을 알 수 있었다. 두 개의 한자 차이는 조와 밤의 차이인데…….
점심은 고향 바닷가에 자리 잡은 매자리 식당에서 옛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면서 간단히 하였지만 마음이 풍부해 진 추억의 시간은 어린 시절 달 밝은 밤에 망둥어를 함께 낚았던 옛 친구들이 그리워졌었다. 명절은 옛 추억과 함께 고향의 냄새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고 인간의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이기에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명절이 아니어도 고향을 찾아가는 시간을 자주 갖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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